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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연구실에서 나온 1.4억 돈다발…검사도 혀 내두른 감리 뇌물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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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서 돈 버는 시대 지났다"…연구 대신 '뇌물' 선택한 심사위원

1등 3000·꼴등 2000만원…감리업체-심사위원 유착 드러나

뉴스1

심사위원 사무실, 주거지에서 발견된 현금 뭉치.(서울중앙지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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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황두현 김기성 기자 = 5700억 원 규모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감리 입찰 담합에 가담한 일당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민간업체와 공무원·교수 간 수년간 이어진 '유착 카르텔'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감리업체는 입찰에서 최고점을 준 심사위원에게 수천만 원을 제공했고, 이를 받은 일부 위원들은 업체끼리 경쟁을 붙여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레이스' 등의 방법으로 금품을 제공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뒷돈을 받은 심사위원들은 가족에게 "일해서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 "죽으라고 심사하고 돈 벌어야지"라고 말하는 등 도덕적 해이도 적지 않았다.

이런 카르텔이 형성되면서 민간업체는 낙찰비로 마련한 비자금을 다시 심사위원에게 지급하고, 또다시 낙찰을 따내는 구조적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30일 서울중앙지검은 전국 각지의 공공·임대아파트와 병원, 경찰서 등 주요 공공건물 감리 입찰 과정에서 담합하고 금품을 주고받은 감리업체와 교수, 공무원 등 68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 입찰 심사에 참여해 금품을 수수한 교수·공무원도 18명에 달했다.

◇ 감리업체-심사위원, 4단계 걸쳐 조직적·체계적 유착

검찰에 따르면 감리업체와 심사위원 간 유착은 4단계에 걸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업체들은 우선 사전에 확보한 심사위원 명단을 기준으로 지연·학연·근무 인연 등을 고려해 관리 대상으로 삼았다. 이후 상품권 제공, 경조사 관리, 술·골프 접대 등의 방식으로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

심사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특정 감리업체의 제안서에는 '상상e상' '불만제로' '+ a' 등 특정 표식이 추가됐다. 심사위원들이 평가 대상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심사 당일에는 전국에 영업사원이 배치돼 텔레그램 등으로 청탁과 금품 제공을 약정하고, 1등 점수와 폭탄(최하점)을 주는 심사위원에게는 각각 3000만 원과 2000만 원이 '인사비'로 제공됐다.

이 돈은 반드시 현금으로만 거래됐다. 검찰에 따르면 한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쓰레기봉투에 약 1억4000만 원을 보관했고 또 다른 심사위원은 자택 화장품 상자 안에 현금 1억 원을 은닉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유착이 횡행하면서 일부 심사위원들은 업체 간 경쟁을 붙여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거나(레이스), 여러 업체로부터 동시에 돈을 받는(양손잡이) 등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 조사 결과 한 심사위원은 "앞으로 9년 8개월 남았는데 죽어라고 심사하고 돈 벌어야지"는 메시지를 아내에게 보냈고, 다른 이는 영업담당자에게 심사가 끝나면 다시 집으로 태워달라며 '픽업'을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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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과정에서 확인된 심사위원들의 도덕적 해이 사례.(서울중앙지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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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H 전관 네트워크 활용…2020년 발주계획 70% 수주

감리업체들은 2019년 국토교통부 주도로 종합심사낙찰제가 도입되자 이같은 입찰 담합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종합심사낙찰제는 최저가 낙찰로 인한 품질 저하 등 폐해를 막고 기술 중심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심사위원 정성평가 비중이 늘어 악용이 용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업체들은 LH의 연간 발주계획을 기준으로 낙찰받은 업체를 나누고, 서로 들러리를 서주는 방법으로 담합을 시작했다.

낙찰제도가 바뀌면서 낙찰가가 상향되자 로비를 벌이고, 상위업체 간 컨소시엄이 제한되자 입찰 담합으로 대응했다. 또 심사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위원 명단이 공개되자 전방위 로비를 실시했다.

이 결과 2020년 LH 연간 발주계획의 약 70%를 담함에 관여한 감리업체들이 나눠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담합·유착관계가 장기화하면서 입찰로 따낸 용역 대금이 감리업체 비자금으로 조성되고, 이 돈이 다시 심사위원에게 뇌물로 전달돼 비자금을 마련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감리업체들은 또 LH 출신 인사를 채용해 '전관'으로 이루어진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심사에 앞서 일사불란하게 위원들에게 고액의 현금을 지급하고 입찰 심사 점수를 흥정했다.

그러나 업체들이 고액의 뇌물 비자금을 조성하면서 감리 현장에 충분한 자금을 투입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기술력이 없는 업체가 용역을 낙찰받음으로써 현장 감리부실과 안전사고 발생 개연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게 검찰 지적이다.

실제 2022년 1월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사고, 지난해 4월 이른바 '순살 자이'로 불린 인천 검단 자이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에 이 사건 수사 대상 감리업체들이 관여하기도 했다.

한편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현행 낙찰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국토부·조달청·LH 등과 심사위원 명단 비공개, 심사위원 간 업체 간 사전접촉 금지, 종합심사낙찰제도 대상 용역 재검토 등 개선 방안을 협의했다.

ausur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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