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당초 31일 ‘2023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지난 26일 오전 10시쯤 교육부가 내놓은 ‘7월26일∼8월2일 주간 보도계획’ 초안에는 해당 자료를 ‘보도참고자료’로 배포하겠다는 계획이 담기기도 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초·중·고생에게 학교폭력 피해 경험 등을 묻는 조사로, 1차 조사(상반기 실시)는 전수조사, 2차 조사(하반기 실시)는 4% 표본조사다.
김유나 사회부 기자 |
통상 교육부는 교육청이 시행한 조사 결과를 취합해 1차 결과는 그해 9∼10월, 2차 결과는 다음 해 4월쯤 발표한다. 교육부는 지난해 1차 조사 결과 발표 브리핑에서 “2차 조사 결과는 내년(2024년) 3월 이전에 발표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별다른 이유도 없이 차일피일 미루다 끝내 7월에 ‘지각 발표’ 계획을 잡았다.
제때 냈어야 할 통계를 뒤늦게 내는 것만으로도 비판의 소지가 크지만, 교육부는 그마저도 몇 시간 만에 뒤집었다. 기자들이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대한 브리핑 등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4시간만인 26일 오후 돌연 ‘발표를 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교육부는 그 이유로 “2024년 1차 조사가 9월 말에 발표될 예정”이란 점을 들었다. 같은 주제의 통계를 두 달 만에 연달아 내기보다 한 번에 발표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2023년 2차 조사와 2024년 1차 조사는 학년도 자체가 달라지는 별개의 통계란 점을 고려하면 납득이 가지 않는 설명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은 ‘교육감이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연 2회 이상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표해야 한다’고 규정해 법 위반이기도 하다.
교육부는 또 “보완 정책을 설명하기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도 들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단순히 통계자료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를 분석하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이번에 그렇게까지는 준비가 안 돼서 9월에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교육부의 보도계획 초안에 따르면 2023년 2차 조사는 ‘보도자료’가 아닌 ‘보도참고자료’로 제공될 계획이었다. 통상 보도참고자료는 통계에 대한 교육부의 설명·해석 등이 빠지고 통계만 제공되고, 교육부의 홈페이지에도 올라가지 않는다. 보도자료보다 중요도가 낮은 자료를 ‘비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의미가 크다.
설명을 종합하면, 교육부는 2023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 없이 교육청이 제출한 통계를 취합만 해 기자단에 제공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는 얘기다. 학교폭력 문제의 무게감을 고려하면 안일한 판단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자단이 브리핑 등 추가 설명을 요구하자 부담을 느끼고 통계 발표를 취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브리핑 요구 때문에 계획을 바꾼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자료 배포 계획을 ‘4시간’ 만에 바꾼 이유로는 “내부 판단이 바뀐 것”이란 해명만 되풀이했다. 자료 배포 계획은 몇주 전부터 준비한다는 점에서 군색한 설명이다. 기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보도참고자료로 슬쩍 밀어 넣고 넘어가려다 일이 커지자 그냥 통계를 쥐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교육부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통계는 이런 식으로 조용히 넘어가려던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다. 이달 초 ‘서이초 사건’ 사망 교사의 기일을 앞두고 낸 교권 관련 통계도 마찬가지다. 시기상 주목도가 높은 자료였지만, 교육부는 해당 자료를 보도참고자료로 냈을뿐더러 브리핑 계획도 잡지 않아 기자들의 요구 끝에 겨우 성사됐다.
이런 자료들을 배포할 땐 ‘어쩔 수 없이 내지만 가급적 관심을 받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자신들이 치적으로 홍보하고 싶은 사안은 먼저 기자들에게 사전 설명회까지 하며 요란하게 홍보하면서, 정작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안에 대해선 설명에 소극적인 것이다.
이번에 발표를 미룬 2023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의 결과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1차 조사보다 크게 좋아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조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다면 교육부가 앞장서서 통계를 홍보하려 했을 것으로 보여서다.
교육부는 이번에 발표를 안 하는 것이 ‘통계를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9월에 발표하기 때문에 은폐는 아니다”라고 항변했지만, 발표 연기로 교육부는 일단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비판에서 최소 2달의 시간을 버는 효과를 얻었다. 9월에 두 통계를 한 번에 발표하면 2023년 2차 조사는 상대적으로 묻힐 수도 있다. ‘어차피 욕먹을 거면 한 번에 먹자’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교육부가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제때 필요한 정책을 내놓기 위해서일 것이다. 학교폭력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일단 통계를 숨기는 데만 급급하다면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해진다. 교육부가 진정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이다. 교육부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지, 당장의 언론의 비판이 아니다.
김유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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