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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돈 있으면 건강한 노년 11.3년 더…우울한 초고령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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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4일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가 주최한 시니어 올림픽이 열려, 참가자들이 공굴리기 게임 등을 즐기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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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활동의 중요한 특징은 끊임없는 변화에 있다.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통해 형성된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어 배아가 발생하고 태아로 발달한 뒤 한 개체로 태어나고, 성장을 통해 유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에 이르면 생리적 차원의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중년기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쇠퇴 이후 노년기의 급격한 쇠퇴를 끝으로 개체는 주변 환경과 평형을 이루며 그 일부로 돌아간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예외를 허용하지 않고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따르는 듯 보이기도 한다. 가령 시간을 축으로 생애주기 동안 벌어지는 변화가 인체 내외부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모종의 프로그램을 상정할 수 있다.







평균 건강수명, 11년간 제자리





노화 역시 그러한 변화 중 대표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노화 과정에서 유전체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세포 속 단백질이나 소기관의 품질 관리에 문제가 생기고, 영양분에 대한 감지 및 통제 기전에 문제가 생긴다. 이처럼 누적된 문제들로 인해 세포 분열은 정지 상태에 이르고, 세포 재생능력이 사라지며 만성염증이나 장내 미생물 불균형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노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인체 내부의 내재적 프로그램과 더불어 사회적 프로그램이 교묘하게 연계되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운동, 섭식, 스트레스 조절, 빈곤도, 오염도 같은 사회적 프로그램이 내재적 프로그램을 조절해 노화의 감속이나 가속이 이뤄진다. 노화 자체가 질병이라기보다는 노화 과정이 어떤 임계치를 넘어서 근감소증, 장기적 염증 상태, 신경변성 및 인지저하 상태에 처하게 되면 질병으로 진단하게 된다.



우리나라 노화 상황을 성찰하기 위해 수명에 대해 살펴보자.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1970년 62.3살이었지만 2023년에 21.3년이 늘어난 83.6살이 되었다. 이는 오이시디(OECD) 전체에서 세번째로 긴 것이다. 이처럼 기대수명이 늘어난 이유는 의료·교육·소득 수준이 증가하면서 노년층의 사망률이 크게 감소한 데 있다. 이렇게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한편 출생률이 감소하면서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65살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 노화 문제는 빠르게 핵심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얼핏 우리의 기대수명이 세계 최상위인 것은 노화의 내재적 프로그램에 사회적 프로그램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막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노화와 관련된 사회적 프로그램의 중대한 문제점들이 보이게 된다.



우선 우리 사회의 기대수명은 꾸준히 증가하는 데 비해 건강수명은 계속 정체되어 있다. 특정 연도에 태어난 출생자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 연수를 기대수명이라 한다면, 건강수명은 개체의 기대수명에서 질병으로 인해 일상생활의 기능이 제약되는 기간을 제외한 것이다. 2012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0.8살, 건강수명은 65.7살인 데 비해 2023년 기대수명은 83.6살, 건강수명은 65.8살이다. 11년 사이 기대수명이 2.8년 느는 동안 건강수명은 0.1년밖에 늘지 않았다. 건강수명을 산출하기 위해선 복지, 사회참여, 여가, 소득·소비, 노동, 가족, 교육·훈련, 건강, 범죄·안전, 생활환경 등 10개 부문에 걸쳐 조사가 이뤄지는데 이 부문에서 눈에 띄는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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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받기 전부터 아픈 노인들





평균 수명의 증가를 바탕으로 노화에 미치는 사회적 프로그램에 대해 판단할 때는 통계의 이면을 살피는 주의가 요구된다. 그 이면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두가지 현실은 수명의 양극화와 박탈지수로 표현되는 ‘지역의 붕괴’에 있다. 건강수명을 소득계층별로 나눠 살피면 참혹한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상위 20% 소득 수준을 지닌 소득 5분위 노인의 경우 건강수명이 72.2살이지만 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소득 1분위 노인의 건강수명은 60.9살에 불과하다. 무려 11.3년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의 노화는 결코 평등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저소득층 노인은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4년 전부터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노년을 시작한다. 이러한 수명의 양극화는 소득 격차뿐 아니라 지역 격차에서도 드러난다. 집과 차의 소유 여부, 주거 환경의 열악한 정도, 노인인구 비율과 독거가구 비율, 이혼과 사별 비율, 아파트 비율 등을 통해 ‘박탈지수’를 산출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수가 가장 낮은 지역과 가장 높은 지역의 수명 격차는 남성의 경우 2.7년, 여성의 경우 0.7년에 이른다. 이는 우리 사회의 노화에 작용하는 사회적 프로그램이 지극히 차별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웅변하는 지표들이다.



이러한 사회적 차별은 우리 사회의 압도적인 노인자살률을 통해 부각된다. 2023년 기준 한국의 65살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39.9명으로 오이시디 1위이다. 이 수치는 오이시디 가입국 평균인 17.2명의 두배를 넘기고 있다. 특히 70대의 경우 46.2명이고 80살 이상은 67.4명에 이른다. 노인 자살의 주된 원인은 빈곤과 질병이다. 노년기의 빈곤과 질병은 자력으로 극복되거나 회복할 가망을 찾기 어려워 자살과 깊은 인과관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노화를 질병이나 형질의 저하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노인들이 사회 속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생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회를 바꾸는 것은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광범위한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하여 돌봄을 고르게 확대하고, 고령자의 강점을 살린 노인 일자리를 만들거나 발굴하여 노인의 사회적 활동이나 참여의 기회를 늘리며, 노인기초연금의 확대나 기본소득 등을 통해 수명 양극화를 완화하는 일은 사회의 건강한 노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생명의 역능은 노화를 통해 감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피어난다. 그 진가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사회에서라야 우리는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서울대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생화학·면역학 등을 공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수용체 개발, 노화와 면역 사이의 연관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부단히 모색 중이다. ‘탐구한다는 것’, ‘이타주의자’, ‘소년소녀, 과학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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