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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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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덫 빠진 프로 스포츠… “뉴스 터질 때마다 내팀 아니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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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우선주의·수직적 문화 개선해야”

조선일보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전직 프로야구 선수 오재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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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검찰이 마약 투약과 향정신성의약품을 대리 처방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전 프로야구 선수 오재원(39)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오씨처럼 전·현직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마약이나 음주운전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적발된 사례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일각에선 “프로 스포츠의 실력우선주의와 수직적 문화가 초래한 현상”이라며 “꾸준한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음주·폭행·불륜·낙태…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이면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투수 나균안(26)씨는 선발 등판 당일 새벽까지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나씨는 지난달 2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홈 경기를 앞두고 새벽까지 지인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러다 한 야구팬이 나씨의 얼굴을 알아보고 사진을 촬영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다음 날 경기에서 나씨는 1과3분의2이닝 8실점으로 부진했고, 26일 1군에서 말소됐다. 일각에선 나씨의 술자리 의혹을 알게 된 구단이 ‘벌투(벌을 주기 위한 목적의 투구)를 시킨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구단은 나씨에게 30경기 출장 정지와 사회 봉사 40시간의 중징계를 내렸고, 나씨는 현재까지 1군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나씨가 구설수에 오른 건 처음이 아니다. 올 시즌을 앞둔 지난 2월 스프링캠프 기간 중 불륜 의혹이 터진 것이다. 당시 나균안의 아내 A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나씨의 불륜 내용을 폭로했다. 나씨가 외도를 저지른 것은 물론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했으며 가정 폭력까지 행사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K리그1 FC서울 소속으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 군면제를 받은 황현수(29)씨는 지난 5월 11일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음에도 한 달 넘게 구단에 이 사실을 숨긴 채 훈련을 소화하고 경기에도 출전했다. 황씨의 음주운전 적발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구단은 곧바로 지난달 25일 선수계약을 해지했다.

비슷한 사례가 프로야구에서도 있었다. 전 두산 베어스 선수 박유연(26)씨는 2023 프로야구가 진행 중이던 작년 9월 말 오전 경기도 모처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고, 10월 말 100일 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다. 박씨는 이 사실을 구단에 보고하지 않고 은폐했다. 구단은 박씨를 작년 12월 방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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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프로야구 선수 정수근씨. 사진은 2009년 당시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던 정씨가 연이은 음주 물의 후 사과하는 모습. /연합뉴스


은퇴 선수도 예외는 아니다. 두산 베어스·롯데 자이언츠 등에서 활약했던 전직 프로야구 선수 정수근(47)씨가 대표적이다. 정씨는 작년 12월 21일 오후 유흥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지인 A씨의 머리를 병으로 내리쳐 상해를 입힌 혐의(특수상해)로 지난 2월 불구속 기소됐다. 조사 결과 정씨는 A씨에게 3차 술자리를 제안했으나 거절 당하자 범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그는 지난 1월 20일 오전 5시쯤에는 자택에서 술에 취해 골프채로 아내 A씨의 이마를 친 혐의(특수폭행)로 같은 달 30일 검찰에 불구속 상태로 넘겨졌다. 정씨는 현역 시절에도 음주운전을 하고, 술집에서 난동을 부려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U16 국가대표 출신인 한 전직 축구선수도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에서 교통사고를 내고 달아났다가 경찰에 사고후미조치 혐의로 검거됐다.

이 외에도 프로농구 KCC이지스 소속으로 2023-24 시즌 챔피언결정전 MVP를 받은 허웅(31)씨는 전 여자친구 전모씨에게 두 번의 낙태를 종용했다가 금전 협박을 받고 전씨를 고소했다. 지난 10일 국가대표 출신인 한 프로야구 선수 A씨의 전 여자친구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A씨로부터 낙태 종용을 받았다”는 폭로글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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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전반기 관중 600만명을 돌파한 지난 4일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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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 “프로 스포츠 흥행인데 찬물 끼얹어…뉴스 나올 때마다 ‘내 팀’ 아니길 기도”

이들을 응원하는 팬들은 참담한 심정이다. 올해 역대 최소 경기 600만 관중을 돌파한 프로야구팬들은 “선수들의 일탈 행위가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했다. 프로야구 15년 차 팬이라는 임모(26)씨는 “오재원씨의 마약 사건으로 ‘한국야구의 미래’로 촉망받던 선수들이 졸지에 마약범죄에 연루됐다”며 “두산이라는 한 팀 뿐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했다.

프로야구와 축구를 평소 직접 경기장에 가서 본다는 홍종현(27)씨는 “선수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내 응원팀만 아니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 프로 스포츠 인기가 오르며 직관(경기장에 가서 직접 관람하는 것)을 취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면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아도 흥행은 보장되니 선수들의 간절함이 줄어든 결과”라고 했다.

◇전문가 “프로 스포츠의 실력우선주의·수직적 문화가 초래한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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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서울 종로구 S대 체육관에서 이 학교 체육학과 08~10학번 학생 40여명이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07학번 선배들로부터 얼차려를 받고 있다. 후배들에게 기합을 준 선배들은 “이것도 교육의 일종이고 체육학과의 문화”라고 말했다. /조선DB


전문가들은 이처럼 ‘범죄의 덫’에 빠진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행태에 “프로 스포츠의 실력우선주의와 수직적 문화가 초래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프로야구 은퇴 선수 출신인 A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후배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착잡하다. 선배들이 이들을 잘못 이끈 건 아닌가 가끔은 참회한다”면서 “인성·윤리 등을 배제하고 오로지 ‘실력만 좋으면 된다’거나 ‘술을 먹어도 경기장에서만 자기 실력만 보여주면 된다’는 스포츠 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수직적 문화도 문제로 꼽혔다. 팀의 선배거나, 스타플레이어를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의 일탈을 알고도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프로 스포츠 문화다. 오재원씨의 수면제를 대리 처방해 전달한 선수들이 구단 자체 조사에서 “팀의 주장(主將)이자 대선배라 거절할 수 없었다”고 진술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헌혁 강원대 교수(체육교육과)는 “운동부 특유의 강한 위계 질서로 인해 일탈을 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후배들이 학습하는 경우도 있다”며 “부모들이 나서서 주기적으로 인성 교육을 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KBO(한국프로야구) 관계자는 “현직 검사와 경찰을 초청해 선수 대상으로 범죄 예방 특강을 하고 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범죄 예방 특강을 강화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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