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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 (화)

자충수 된 한동훈의 ‘캐비닛’…국민들에겐 사과 왜 빼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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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18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 간담회에 참석하기 전 ‘패스트트랙 투쟁 폄훼 한동훈 후보 당대표 자격 없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이희원 서울시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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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사회, 국제 분야를 두루 취재하고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권태호 논설실장이 6개 종합일간지의 주요 기사를 비교하며, 오늘의 뉴스와 뷰스(관점·views)를 전합니다. 월~금요일 평일 아침 8시30분, 한겨레 홈페이지(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7.19) 아침신문 1면에는 △중부 물폭탄(6곳)이 가장 큰 뉴스이고, 이어 △대법, 동성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3곳) △부동산 공급대책(2곳) △한동훈 사과(2곳) 등이 주요하게 실렸습니다.



① 차이의 발견 : 한동훈의 사과



② 시선, 클릭!
- 장마 뒤, 말라리아 주의
- 한국판 산티아고 2026년 개통
- 한쪽에선 자산 늘고, 한쪽에선 실업 늘고
- 건망증 예방하려면 외국어, 악기 배우라



③ Now and Then :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현철, 1982)



① 차이의 발견



# 한동훈의 사과



-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공소 취하 부탁받았다’는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의 폭로에 대해 한 후보가 어제(18일, 목) 하루만에 사과했습니다.



1. 한동훈, “아차 했다”



- “(전날 발언은) 저도 말하고 아차했고, 괜히 했다는 생각을 했다. 신중하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조건 없이 사과한다. 제가 대표가 되면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재판에) 법률적 지원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겠다”(국민의힘 서울시의원 간담회 뒤 기자들과 만나)



- “어제 ‘공소 취소 부탁 거절 발언’은 ‘왜 법무부 장관이 이재명 대표를 구속 못 했느냐’는 반복된 질문에 아무리 장관이지만 개별 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는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예시로서 나온,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말이었다.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은 공수처법 등 악법을 막는 과정에서 우리 당을 위해 나서다가 생긴 일이다.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폄훼하려는 생각이 아니었다”(페이스북)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2. 한동훈, 토론회에서도 자세 낮춰



- 어제 밤 KBS 토론회에서 후보들이 이 문제를 놓고, 한동훈 후보에게 공세를 펼쳤는데, 한 후보는 전날과 달리 자세를 낮췄습니다.



- (나경원-한동훈)



“패스트트랙 사건 기소가 맞는다고 생각하냐?”(나)



“신중치 못한 발언이었다고 사과드렸다. 그때 그 기소를 한 검찰총장이 (윤석열) 대통령이다. 법에 따라 기소된 것”(한)



“헌법 질서를 바로잡아달라는 요청을 개인적 청탁인 것처럼 온 천하에 알리는 자세를 가진 분이 당 대표는 커녕 당원으로서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후보가 대표가 되면 누가 의회 민주주의 폭거에 나가 싸우겠나”(나)



“일반 국민들은 그렇게 개인적인 사건, 본인이 직접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한)



“개인적 사건이요? 제가 저를 해달라고 그런 것인가. 우리 27명이 기소됐다. 개인적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나)



“개인적 사건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잡겠다. 비공식적으로 요청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취지다”(한)



- (원희룡-한동훈)



“당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없어서 걱정을 많이 하는 것이다. 자기가 책임질 일이 있을 때는 남 탓, 시스템 탓으로 돌려 동지 의식과 책임 의식을 느낄 수 없다”(원)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고 (그때는) 당 동지로서 업무를 할 수는 없(었)다”(한)



“지금도 부당한 부탁을 한 것처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야기를) 꺼냈다. 법무부 장관으로 수많은 정치인과 당원들과 대화했을 텐데 나중에 불리해지면 캐비닛 파일에서 꺼내서 약점 공격에 쓸 것인가”(원)



“사과한 것은 그 말을 꺼낸 것 자체가 부적절했던 것 같아서다. 다만, 법무부 장관으로서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거절하는 것이 맞다”(한)



- (윤상현-한동훈)



“어느 정부에서도 2인자가 대통령 임기 3년 남겨놓고 차별화한 예가 없다”(윤)



“대통령과 굉장히 오래된 사이고 신뢰할 수 있고, 신뢰하는 사이”(한)





3. 한동훈은 왜 하루만에 사과했나?



- 오늘(19일)부터 당원 선거인단 투표가 진행됩니다. 선거인단은 83만9569명인데, 영남권 40.3%, 수도권 37.0%, 충청권 14.1%, 강원권 4.1% 등입니다. 선출방식은 알려진대로 당원투표 80%, 일반 국민여론조사 20%입니다. 따라서 ‘영남권 당원’이 결정권을 지닌 셈입니다.



- 당원 투표에서도 전반적으로 한 후보가 우세하나, ‘공소 취하 폭로’는 국민의힘 내부 시각으로는 ‘선을 넘었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신의가 없다’. 둘 사이에 나눈 대화를 이렇게 갑자기 공개적 자리에서 ‘폭로’하는 식이라면, 어떻게 당대표로 신뢰하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점입니다. 두번째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볼 때는, 당시 2019년 ‘패스트트랙 충돌’은 검경수사권 조정 등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공세에 저항하는 성격이 컸는데, 이를 공격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점입니다.



- 친윤계 의원들이 많은 영남권 당원들 중심으로 분위기가 심상챦다는 보고를 받았을테고, 이는 한동훈 후보답지 않게 발빠른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4. ‘공소 취하 부탁 거절’, 사과할 일인가?



- 지금 다시 돌이켜 봐도, 나경원 후보가 한동훈 후보에게 ‘공소 취하’를 부탁한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나 후보가 당시 원내대표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을 위해 희생한 기소된 27명’을 대표해 부탁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후보의 말처럼, 법무부 장관이 개별 사건에 대해 검찰에 ‘공소를 취하하라, 말라’는 식의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 나 후보 부탁은, 한동훈 법무장관이 수사검사에게 연락해 ‘공소 취하하라’는 식의 요구인데, 이는 해당 검사가 ‘다 뒤집어쓰라’는 얘기를 법무부 장관이 지시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사건에 대해 재판에서 유·무죄를 다툴 수는 있겠으나, 검찰 단계에서 공소를 취하한다면, 당연히 야당 공세가 거세게 나올텐데, 그때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법무부 장관 지시가 있었다’, ‘국민의힘 부탁이 있었다’고 할 수도 없고. 해당 검사가 ‘못하겠다’고 하면,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수 있을까요.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나경원 후보와 생각이 같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 나 후보가 어떤 식으로, 어느 정도로 요구를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사적 통화에서 ‘개인 의견’을 밝히는 수준이었다면 양해할 수도 있겠으나, CBS 토론회 당시 한동훈 후보 표정이나 말투를 보면, 당시 요구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 부탁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나경원 후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랬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취임 초부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야당과 워낙 강하게 날을 세우며 싸워왔습니다. 그러니 나 후보도 ‘우리 식구’라 생각하고, ‘패스트트랙 사건은 명백한 민주당 잘못 아니냐.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그러니 당신이 지금 야당과 하듯이 이 문제에 대해서도 나서서 적극 싸워달라’는 식의 주문을 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라면, 나 후보 입장에선 한 후보에게 말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국민의힘 내부적 시각에서. 그러나 그랬다면, 나 후보가 한 후보를 잘못 본 것입니다. 한 후보가 국회에서 야당과 거친 공세를 벌인 것을 보면, 주로 자신에 대한 공격에 대한 역공이었지, 남(?)을 위해 대신 싸워준 경우는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5. 한동훈 후보는 누구에게, 무엇을 사과해야 하나?



- 법무부 장관과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의 입장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동훈 후보는 누구에게, 무엇을 사과하고 있습니까?



- 대략 ‘국민의힘 당원들에게’, ‘이 문제를 꺼내 당을 어렵게 만든 것을’ 사과하고 있습니다.



- 지금은 한 후보에게 ‘당원 투표’가 우선이겠지만, 대통령을 꿈꾸는 대중정치인이라면,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때 불법적인 청탁 요구를 받고도 왜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다소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수사·재판 등의 위법한 처리 청탁’을 받고서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불쑥 꺼냈습니다. 이것도 공익제보자처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차원도 아니었습니다. 자기보호 차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드러난 이상, 국민들에게 그동안 이런 사실이 있었던 것에 대해 법적으로 위법이냐, 아니냐를 또 현미경 들여다보듯 따지기 전에 우선 사과해야 합니다.



- 그래서 한 후보의 잘못은 전날 CBS 토론회에서 ‘아차’하고 꺼낸 ‘2024년의 말’이 아니라, 부정청탁을 받고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고 ‘자신의 캐비닛’에 쟁여두기만 한 ‘2022년 또는 2023년의 행동’입니다.



- 그래서 ‘당원들에 대한 사과’와 별도로 ‘국민들에게', `이런 점을' 사과해야 합니다.





6. 사과로 끝날 수 있을까?



- 야당이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 “반드시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불법이 드러날 경우 엄정하게 사법처리해야 한다”(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 “범죄 집단의 ‘자백 쇼’를 보는 것 같다. 이 정도 사안이면 사법당국에서 수사에 나서야 한다”(조국 조국혁신당 당대표 후보)



- 야당이 나경원·한동훈 후보를 고발하면 수사기관 및 권익위는 `명품백 사건'에서 봤듯이 또 오랫동안 기상천외한 논리 개발하느라 오랫동안 쥐고 있겠지요. 하지만 모두에게 계속 부담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 또 조국혁신당이 준비중인 ‘한동훈 특검법’에 항목 하나가 추가될 것이고, 더욱이 그동안 ‘한동훈 특별법’에는 정무적 이유로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던 민주당의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7. ‘한동훈 대표’ 되면 다 없었던 일 될까?



1) ‘사람’을 잃었다



- 지금 판세라면, 한동훈 대표와의 격차를 이번 일로 온전히 뒤집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 후보가 대표가 되더라도, 없었던 일로 되진 않을 것입니다. 이번 일은 국민의힘에 겉으로도, 안으로도 상당한 충격을 줬습니다. 한동훈이 어떤 사람인지 당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이번 일로 경계심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이재명과 잘 싸울지는 몰라도, 믿을 순 없다. 내 속을 드러내선 안된다. 위기가 오면 자신을 희생하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을 집어던질 사람이다. 책잡힐 말 굳이 할 필요없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될 것입니다.



- 전당대회가 끝나면, 패한 후보들이 ‘힘을 합치자’며 웃는 낯으로 악수하겠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동지’가 되긴 힘들 것입니다. 공동 과제에 당장은 힘을 모으겠지만, 결정적 순간에 언제든 돌아설 것입니다.



2) ‘캐비닛’에 더 있다



- 그리고 또 하나, 영화 ‘더 킹’처럼 ‘한동훈의 캐비닛’에 무엇이 더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검찰 특수수사가 오랫동안 지적받아온 점이 있습니다. ‘사건’을 쟁여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쓴다는 점, 그리고 수사가 벽에 부딪히면 ‘별건 수사’로 피의자를 압박해 실토하게끔 하거나, 설령 이때문에 거짓자백을 해 나중에 재판에서 무죄가 되든말든 일단 기소부터 하고 보는 점 등입니다.



- 동질비교를 할 순 없겠지만, 한동훈의 ‘나경원 역공’ 과정을 보면, 검찰에 있을 때 한동훈 후보가 어떻게 수사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갑자기 다른 논점을 끌고 들어와, 피의자의 멘탈을 흔드는 방식입니다.



- 한동훈 후보는 국민의힘, 그리고 민주당 정치인들의 여러 약점들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보고를 받았을 수도 있고. 이를 또 필요할 때마다, 꺼내쓰려 하는 걸까요. 이번 건이 있으니, 다음에는 본인이 직접 하지는 않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3) ‘용산’에 대한 경고?



- 한동훈 후보가 당대표가 된다면, 겉으로는 ‘화해 제스츄어’를 취하겠지만, 앞으로 계속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김옥균 프로젝트’ 등 황당한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김건희 여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나경원 후보의 ‘청탁’ 수준이겠습니까.





8. 사설



- 크게 2가지 형태로 나눠집니다. ‘공소 취소 부탁 사실을 수사를 통해 규명하라’는 쪽과 ‘당내 다툼으로 자해하지 말라’는 염려입니다.



한겨레 = 나경원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청탁, 수사로 밝혀야
경향 = 법치 흔든 나경원의 '공소 취하 청탁', 검찰은 당장 수사하라
동아 = 與 ‘댓글팀’ ‘여론조성팀’ ‘공소 취소’ 논란…주워 담을 수 있겠나
조선 = 108석 소수당 된 것도 모자라 아예 쪼개지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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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시선, 클릭!



# 장마 뒤, 말라리아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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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판 산티아고 2026년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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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Now and Then



어제(목) 가수 현철씨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첫 대한민국 가수장으로 치러졌습니다. 현철은 1989∼1990년 2년 연속 KBS ‘가요대상’을 받고, ‘4대 천왕’(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의 맏형으로 1988년부터 시작된 90년대 트롯트 부활의 선두주자로 수많은 히트곡을 낸 가수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지금, 길고 길었던 그 ‘무명의 세월’이 더 다가옵니다.



1942년생인 가수 현철은 늦은 나이인 27살인 1969년에 데뷔했습니다. 그러나 10여년 간 무명가수로 지내왔습니다. 트로트로 출발했으나 인기를 얻지 못하자, 1974년에는 ‘현철과 벌떼들’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외국 번안가요를 주로 불렀습니다. 레이프 가렛의 ‘I was made for dancing’(1978)을 ‘다함께 춤을’(1979)로 번안해 불렀는데, 트롯풍 목소리가 깊게 배어 있습니다.



월세 1~2만원짜리 단칸방에 살며 나이 40이 넘도록 무명가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함께 했던 7인조 ‘벌떼들’의 멤버들도 하나, 둘씩 떠나가고 오직 ‘현철’만 남게 됐습니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가 연상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현철도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여겨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낸 노래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1982)입니다. 친구가 아내와 사별한 이야기를 듣고, 곡을 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계속 가수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까지도 ‘사랑은 나비인가봐’, ‘청춘을 돌려다오’ 등의 노래가 라디오에서만 종종 들릴 뿐 방송 출연은 거의 없는 ‘얼굴없는 가수’ 수준이었습니다.



대중들 앞에 우뚝 서게 된 건 1988년 ‘봉선화 연정’에서부터입니다. 길게 보면, 거의 20년을 무명가수로 지내온 것입니다. 1988년 46살에 연말 가수대상을 받으며 펑펑 눈물을 쏟으면서도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등 선한 품성을 지닌 분 같습니다.



가수나 영화배우 중에 무명 생활을 오래한 분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최정상에 오른 뒤에도 마이너리티적 감성을 유지합니다. ‘국민 MC’ 유재석이 오랫동안 최정상급 연예인으로 각광받으면서도, ‘무한도전’ 멤버와 같은 ‘찌찔함’을 자신의 브랜드로 계속 지닐 수 있는 점도, 10년 넘는 무명생활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 유재석을 저 하늘의 ‘별’이 아닌, 어디서나 흔히 봤던 ‘동네 바보형’ 같은 친근함을 대중들에게 줄 수 있는 비결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뜨고 난 뒤, 위기나 슬럼프에 깊게 빠지지 않습니다. 슬럼프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거쳐왔기 때문입니다.



비단, 연예계 뿐 아니라 다른 분야, 그리고 일상에서도 이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온갖 시련을 겪고 자리에 오른 사람과 어느날 갑자기 돌풍처럼 등장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불쑥 나타난 사람은 겉으론 별 차이 없는 듯 보여도, 속은 비어 있습니다. 깊이와 맷집, 내공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그래서 저는 ‘참신’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을 떠난 현철씨의 수많은 히트곡 중 그가 가수를 계속 할 수 있게 지탱해 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1982)을 1987년 흐릿한 방송 화면으로 전합니다. 경직된 ‘중고 신인’의 모습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이때 이미 ‘20년 가수’였습니다.



(*일부 포털에서는 유튜브 영상이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시려면, 한겨레 홈페이지로 오시기를 권합니다. 기사 제목 아래 ‘기사 원문’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끝)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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