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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6 (월)

[MT시평]중고거래 이용 보이스피싱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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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의 심각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많은 예방노력에도 불구하고 교묘히 새로운 형태의 보이스피싱이 생겨나고 거래형태가 다양해지면서 피해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중고거래를 이용한 보이스피싱도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형태다. 직접 현금을 노리는 대신 정상적인 중고거래, 특히 고가의 물건거래를 이용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로 하여금 거래대금을 납부하게 하고 물건을 범죄자가 가져가는 방식이다.

억단위 물건을 중고거래할 가능성은 높지 않으니 피해금액 측면에서는 기존 범죄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중의 피해자를 만들고 선의의 피해자들 사이에서 또다시 분쟁을 일으키게 한다는 측면에서 기존 범죄 못지않게 나쁜 범죄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위와 같은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가 자신이 입금한 돈을 받은 중고거래 상대방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한 사건에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됐다(대법원 2024년 6월27일 선고 2024다216187 판결). 원고는 딸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자에게 속아 자신의 휴대폰에 불법 피싱프로그램을 설치했고 피고의 계좌로 물품대금 2895만원이 송금됐다. 돈을 받은 피고는 중고거래 사이트에 100돈짜리 순금목걸이를 거래물품으로 내놓았는데 돈이 입금된 후 이를 범죄자에게 건넸다.

원심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는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니 부당이득이 성립하고 피고에게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봐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 피고가 수천만 원 상당의 귀금속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매도하면서 상대방의 인적사항을 최소한으로도 확인하지 않고 실제 자신이 만난 상대방이 매매대금을 송금한 것이 맞는지, 상대방과 입금자의 관계는 무엇인지 등을 전혀 알아보지 않았다면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인정되고 원고가 실제 출금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무단으로 원고의 계좌를 이용해 피고 계좌의 돈을 이체한 것이므로 반환청구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봤다.

대법원은 달리 판단했다. 원고가 직접 이체행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휴대폰에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설치토록 원인을 제공했으니 범죄자가 원고로 하여금 피고의 계좌로 이체하게 한 것과 원고를 기망해 원고로부터 얻은 정보로 직접 원고 계좌에서 피고 계좌로 이체한 것과 구별해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으며 피고 역시 다수의 전과가 있는 범죄자에게 속은 것이니 피고에게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사실 원고와 피고 모두 피해자인데 정작 책임져야 할 범죄자는 빠진 상태에서 피해자 간에 법적 분쟁까지 발생하다니 그저 안타까운 일이다. 누구 한쪽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법원도 정말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결국 원심은 보이스피싱의 직접 피해자를, 대법원은 중고거래 시장의 거래질서를 더 보호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의 판단이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원고가 범죄의 원인을 제공했으니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논거를 든 것은 다소 아쉽다. 원고에게 잘못은 없지만 거래안전이라는 가치를 더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었을까. 보이스피싱의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

머니투데이

김태형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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