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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5 (일)

“게임 질병코드 등록, 왜 한국만 서두르나… 기준‧근거부터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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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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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학계‧산업 전문가들이 게임의 질병코드 도입과 관련해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일각의 섣부른 국내 도입 움직임을 경계했다. 게임산업 침체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미칠 파급 효과가 큰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국제질병분류(ICD) 리스트에 게임이용장애라는 명칭의 질병코드를 등재했다. 우리나라는 2025년 예정된 질병사인분류(KCD) 개정에 앞서 이를 도입할지 결정해야 한다.

정부는 게임이용장애 도입 여부를 놓고 의료계와 게임산업계가 대립하자, 국무조정실 주도로 민관 협의체를 꾸리고 저울질을 해왔다. 그러나 각계 의견이 엇갈리며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의료계에선 도박 중독과 게임 중독자의 유사한 뇌 구조 등을 언급하며 사전 치료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산업계 등에선 현재의 중독 진단 도구로는 중독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고, 게임을 중독 물질로 분류할 만한 관련 학술 연구도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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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 협의체에서 질병코드 도입 논의를 이어온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1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토론회를 통해 현재의 협의체 구조로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11회에 걸친 회의를 진행했지만 주요 활동은 연구용역 관련 검토와 자문 정도였다. 치열한 토론도 없었다”면서 “한 정신의학계 위원은 질병코드 도입을 기정사실화 한 채 회의에 임하기도 했다. 현 상황에서 2026년 KCD 도입은 사실상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 교수는 “협의체는 2026년까지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목표인데, 그러려면 내년까지는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진단 도구를 만들어 실태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파급 효과에 대한 정량적인 수치를 기반으로 사회적 합의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질병코드에 대한 해외 연구 동향 분석,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한 공개 토론회 및 공청회 등이 필요하다. 학술적인 연구 보완도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박종현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도 질병코드의 섣부른 도입을 경계하면서,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선 ICD-11에 대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너무 섣부른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라며 “WHO는 ICD를 권고할 뿐 강제하지 않는다. 맹목적으로 구속되기보다는 한국 사회 실정에 맞는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질병코드는 다른 영역과 다르게 단순 통계 작업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정책적으로 재정을 소모해 예방해야 할 질병을 규정하는 것이기에 민주적 정당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며 “행정부처가 자의적으로 결정하거나 국제기구 기준을 따르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법적 권리 침해 우려도 제기했다. 그는 “국가 후견주의 강화는 개인 자율성을 위축시킬 수 있고, 특정 행위를 법적으로 질병화 하는 것은 개인의 자기결정권 및 일반적 자유권 전체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관련 내용의 법규제 창설은 엄격한 비례의 원칙에 따라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게임을 물질 중독과 동일 선상에서 얘기할 수 있는지, 임상위가 다른 진단 없이 게임 장애 증상만을 갖고 명확한 진단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들이 충분한지 의문이다. 후견적 개입의 법적 개입이 추구하는 목적의 정당성도 넘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교수는 “게임산업법에 따르면 게임은 예술 활동으로서 국가 최고 규범인 헌법의 보호 대상이 된다”며 “질병 코드 도입은 게임 이용자 집단이 잠재적 중독자 집단이 된다는 점에서 게임 향유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게임의 예술적인 표현 가치가 인정되지 않고 헌법의 비레 원칙 등도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헌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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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용장애를 질병화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회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도 짚었다. 박 교수는 “담배나 주류 사행산업처럼 게임이용 관련 부담금이 신설되거나, 게임 광고에 중독 부작용을 나타내는 노골적인 문구가 삽입될 수도 있다”고 점쳤다. 지난 2013년 국회에서 발의됐다 폐기된 ‘인터넷 게임 중독 치유 부담금’을 부과하도록 한 법안이 적합한 사례라는 것이다.

그는 부담금이 생길 시 관련 기준 마련에도 갖은 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험적 치료가 만연해 의료급여 지출이 많아지고 불분명한 질병에 대한 임상실험이 빈번해 국가 재정이 불필요하게 소모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질병 코드가 도입되면 국내 게임산업은 갈라파고스화가 될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철수로 이어져 결국은 국내 게임에만 질병 코드가 적용되는 역차별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폐지된 강제적 셧다운제가 다른 형태로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임산업협회 최승우 정책국장 역시 “2022년 3월 미국정신의학회가 3가지 이유를 들어서 게임이용장애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WHO에서도 게임 중독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게임이용장애를 판단해야 한다. 정부의 명확한 입장 발표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선 게임의 질병화는 산업의 자연스러운 선순환 구조 속에 점진적으로 해결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육학부 초빙조교수는 “특정 행위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은 게임을 떠나서도 많다. 쇼츠나 틱톡, 인스타그램 모두 특정 행위에 중독되게끔 한다”며 “결국 중요한 건 게임이 아니라 반복 행위를 유도하는 내재된 디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게임 이용자들은 이런 행위 유도 디자인에 염증을 느끼고 게임을 선별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에 있다. 문화적인 반발로 ‘자연 정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병리학적이나 법적인 구속 치료 등 중독 해결 방법이 꼭 제도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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