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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2 (목)

[기고]세무공무원에게 거짓말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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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화우의 조세전문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흥미진진 세금이야기'

[편집자주] [편집자주] 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the L]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민법 제2조 제1항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규정한다. 여기서 파생되는 것으로 자신이 이전에 한 행위와 모순되는 권리행사를 금지하는 '금반언의 원칙'이 인정된다. 이 두 원칙은 조세법을 비롯한 공법의 영역에서도 일반원칙으로 받아들여진다. 국세기본법 제15조와 지방세기본법 제18조 역시 납세자와 세무공무원 모두에 대한 신의성실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세금을 적게 내려는 건 사람의 본능이다. 그러다 보니 납세자들은 세금을 적게 신고하거나 세무공무원에게 거짓말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절세나 심지어 탈세까지 하려고 한다. 이처럼 납세자가 신의성실에 따라 세금을 신고·납부하지 않거나 기존 언행에 반하는 주장을 했을 경우 이에 대한 응징으로 납세자의 주장을 배척해야 할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사법 영역과 달리 세법 영역에서는 납세자와 과세권자가 대등하지 않다. 오히려 과세권자가 현저히 우월한 지위에 있다. 조세회피나 번복 행위에 대한 비난보단 실제로 세법이 규정하는 과세요건을 충족하는지를 따지는 과세처분의 적법성이 더 중요하다.

이전에 대법원은 납세의무자에 대한 신의성실 원칙의 적용을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해야 하고 확대 해석해선 안된다고 봤다. 세법에서 신의성실 원칙보다 합법성의 원칙이 중요하고, 과세 관청은 실지 조사권·조세 부과 징수권 등 불이익처분권에 기초해 납세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봐서다. 대법원판결에 따르면 납세자 A씨는 실제 토지를 매수하고도 토지거래 허가를 회피하기 위해 증여를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했다. 하지만 증여세가 부과되자 증여가 아니라고 입장을 바꿨다. 대법원은 이에 증여세를 부과할 수 없음은 물론 토지거래 허가를 받지 않아 토지매매계약이 무효인 이상 양도인에게 양도세를 부과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011년 대법원은 입장을 바꿨다. 납세자 B씨는 토지거래 허가구역 내 토지를 매도하고 대금을 수령했으면서도 토지거래 허가를 피하기 위해 매수인 앞으로 매매 대신 증여 받았다는 이전등기를 마쳤다. 이에 대법원은 예외적으로 매도인에게 양도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봤다. 기존 전원합의체 판결을 변경했다는 점에서 우선 납세자에게 신의성실 원칙을 적용한 판결로 평가된다. 다만 매수인이 납부한 증여세의 적법 여부는 쟁점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법원이 납세자에 대한 신의성실 원칙 적용 요건이나 그 범위를 완전히 변경했다고 보기엔 의문이 있다.

한편 납세자가 거짓 진술이나 허위 자료를 제출하거나, 혹은 세무공무원이 성실히 심사했지만 그 허위를 발견하지 못해 과소한 과세처분이 이루어지거나 과세를 면할 수 있다. 이럴 땐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세무공무원이 충분히 확인·조사하지 않고 과세처분까지 간 거라면 범죄가 되지 않는다.

납세자에 대한 신의성실 원칙 적용 문제는 조세법률주의 아래 과세처분의 적법성의 원칙과 과세 관청이 납세자와 형성한 신뢰 중 어느 것을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러나 △납세자와 과세 관청 간 힘의 불균형, △조세는 발생한 소득에 비례해 부과되어야 하는 것이지 납세자의 배신행위에 대한 제재 수단은 아닌 점 △조세법률주의와 실질과세 원칙하에서는 법률상 과세요건 충족 여부를 따져 합법적인 과세처분이 이루어져야 하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르면 여전히 납세자에 대한 신의성실 원칙은 납세자의 '심각한 배신행위'가 있는 경우만 예외적으로 엄격히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 그리고 심각한 배신행위 여부는 위계공무집행방해죄의 성립 여부를 기준으로 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양측에 신의성실 원칙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과세관청의 조사가 부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납세자의 거짓말이나 허위 자료 제출만을 이유로 과세요건을 불충족하는 과세처분을 용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납세자들은 소득 누락이나 무신고, 탈세 등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세금을 신고하고 내는 납세 의식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머니투데이

법무법인 화우 조세팀 정종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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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 화우 정종화 변호사의 주요 업무분야는 조세 및 국제조세 관련 쟁송과 자문이다. 법인세, 소득세, 지방세, 부가가치세, 상속·증여세, 관세, 주세 등 과세처분 및 각종 인허가, 석유수입부과금을 비롯한 다양한 행정처분과 관련한 조세·행정쟁송, 자문사건을 처리했다. 또 서울지방국세청, 기획재정부, 문화관광부, 산업자원부, 산림청 등 여러 행정부처에 대해 조세·행정 관련 자문을 제공해왔다.

정종화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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