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새 대표 누가 되든, 대통령 강하게 설득해
여사 문제 “법대로” 엄정 처리케 하고
대통령과 여사·비선세력 완전 분리시켜야
판은 깨지 않되 대통령 大변화 이끌어야 희망
이기홍 대기자 |
대다수 국민이 새 국민의힘 대표에게 바라는 건 무얼까. 친윤인지 반윤인지는 핵심이 아니다.
국민이 오로지 바라는 건 보수의 재건이다. 더 이상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 차라리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방법은 선명하다. 그것은 윤석열 대통령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그 핵심은 ‘김건희 수렁’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번 김 여사 문자 파동으로 가장 심각한 대미지를 받은 사람은 누굴까. 전당대회를 흔들기 위해 문자유출을 기획한 이들은 한동훈 후보에게 타격을 줬다며 희희낙락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가장 심하게 대미지를 입은 사람은 대통령이다. 왜일까.
김 여사의 문자 및 평론가와의 통화 내용은 명품백 사과를 안해 총선 참패로 연결시킨 장본인이 대통령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자신은 사과를 꼭 하고 싶었지만 반대 때문에 못 했다고 주장하는데, 대통령 말고 누가 여사의 뜻을 좌절시킬 수 있겠는가.
그동안 윤 대통령은 부인 문제에 대해 공정과 상식을 실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곳에는 좌파와 야당의 온갖 저열한 공작과 공세에 시달리는 심약한 부인을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지 못하는 애처가의 처지가 동의는 못 해도 짐작은 된다는 동정론도 혼재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사과를 못 하게 한 게 대통령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시 사과를 하는게 옳은지 아닌지는 찬반이 엇비슷하게 갈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상식을 가진 사람 백에 아흔아홉은 사과하는게 옳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대통령 부부 주변 비선 라인들은 자꾸 ‘박근혜 사과’를 거론하며 사과하면 인정하는 게 돼 더 깊이 끌려간다며 ‘사과 부작용론’을 주장했다는데,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일방적 의혹이나 침소봉대된 공세에 밀려 사과하면 사실로 인정해주는 역효과가 생길지 몰라도, 명품백을 받는 장면은 촬영돼 온 국민이 본 것이다.
대통령 주변의 인식이 국민 상식과는 동떨어진 섬나라, 극단적 강경 음모론이 지배하는 외계 행성에 머물고 있음을 김 여사가 드러낸 셈이다.
역사는 권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멸의 길로 유혹하는 강경파의 발호를 보여준다. 1979년 10·26 직전 부마사태 때는 탱크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차지철이 있었고, 1987년 6월 항쟁 때는 명동성당에 진입해 다 끌어내자는 강경파들이 있었다. 간신배들의 강경론은 심기가 불편한 권력자에게 바치는 최고의 아첨이며, 동시에 자신들의 지위와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보신의 수단이다.
김 여사가 반대 때문에 사과를 못했다고 주장한 결과 세간에는 민심을 읽는 판단력이 여사가 대통령보다 나은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돌고 있다. 사과를 거부한 채 어이없는 KBS 대담 발언으로 중도 보수 마저 등돌리게 만든 게 여사의 감정적 반발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본인의 고집 때문이라고 폭로한 셈이기 때문이다. 주군(主君)을 기쁘게 해주겠다며 꾸민 계략이 결과적으로 주군을 욕보인 것이다.
또는 만약 김 여사가 실제 사과할 의향도 없었으면서 주변 반대 핑계를 댄 거라면 자기 체면을 살리기 위해 남편을 깎아내리는 비겁한 일을 저지른 셈이 된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깝든 결론은 같다. 김 여사와 비선 세력을 대통령에게서 분리시키지 않으면 정권의 추락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총선 참패는 보수 진영에 국민이 내린 마지막 경고였다. 전당대회는 그 쓴 약을 마시고 처절히 다시 태어나야하는 장(場)이다. 그런데도 여사 문제가 문틈으로 연기 스며들 듯 다시 등장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여사 문제의 수렁에서 허우적일 것인가. 대선 선거전 초기부터 지금까지 3년 넘게 잊혀질까 싶으면 터지는 일이 반복돼 왔다. 상당부분은 좌파 공작과 선동의 결과물이지만, 김 여사 스스로 야기한 것들도 수두룩하다.
그동안 국민은 여사 문제가 터질때마다 막연하게나마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렇지만 그 기대는 점차 실현 불가능 쪽으로 기울었다.
정권 성공과 국가를 위해 사적인 모든 걸 버릴 수 있다는 그런 의지도 공직관도 결단력도 대통령이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제3자의 힘을 통한 해결밖에 방법이 없다. 그래서 여론을 수렴해 반영해야 하는 집권당 대표에게 기대를 걸게 되는 것이다.
물론 보수의 판을 깨서는 절대 안 되며 윽박질러서 될 일도 아니다. 설교하듯 교육해서도 안 된다. 밤새 술잔을 앞에 놓고 설득해야 한다.
“정권이 살고 나라가 살고 보수가 살고, 역사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법대로 하는 것입니다. 일반인처럼 여사도 소환돼 엄중한 조사를 받게 하고 만약 죄가 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정권 재창출이 되고, 다음 대통령이 제일 먼저 여사를 구해 낼 것입니다.”
고집 센 사람이 생각을 바꾸는 건 상대 의견이 옳다고 여길 때가 아니라, 자기 힘이 현저히 뒤져 불리하다는 걸 절감할 때다. 권력자를 설득하려면 눈물로 호소하되 등뒤에는 압박할 수 있는 칼자루를 갖고 있어야 한다.
지금 정권이 처한 사면초가의 상황이 그 칼자루다. 야당은 특검을 계속 압박할 것이고, 곧 레임덕으로 관료조직도 안 움직이게 된다. 보수층 다수도 등을 돌렸다. 야당은 여사와 관련해 뭔가 폭탄이 터지는 게 시간문제라고 고대하고 있다.
온갖 인사나 논공행상과 관련해 직간접 관련자들이 그동안은 쉬쉬했을 것이다. 자리라도 하나 구할까 해서다. 그러나 임기 중반을 넘어 자리들이 다 채워지고 나면 여기저기서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여사 라인의 국정 조언, 인사 개입 의혹도 소지 자체를 제거해 놓아야 한다. 백번양보해 친윤 그룹과 여사 라인의 내부 조언자 역할을 인정한다 치자. 그런데 그들이 그럴 수준과 능력이 되는가부터 의심스럽다. 대선 때 전두환 관련 발언 논란 당시 ‘개 사과’ 사진을 내놓는 수준을 보라. 취임초 연예인 개인 SNS 홍보용 같은 여사 사진들을 내걸던 홍보마인드를 보라. 당 대표를 쫓아내는 방식, 연판장 돌리기도 마찬가지다. 남의 눈으로 내 행동을 바라보는 능력의 결핍, 한 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 사냥감만 물어뜯는 단세포 수준 전략 능력의 결과물들이다.
새로 선출될 집권당 대표에게 나라가 처한 중대한 국가적 주제에 천착하라고 하기 앞서 우선적으로 대통령 부인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문하는 것 자체가 참담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대한민국을 지켜가야 하는 자유민주주의 진영 전체에 참으로 절박한 우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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