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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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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출신 하원의원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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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2010년 5월부터 2016년 7월까지 6년 넘게 집권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찬성 의견이 과반을 얻은 데 따른 결과다. 캐머런은 EU에 부정적인 보수당 소속이지만 브렉시트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총리 사퇴 후 7년이 흐른 2023년 11월 뜻밖에도 캐머런이 외교부 장관으로 보수당 내각에 복귀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영국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혼란을 감안할 때 중량급 인사가 외교를 맡는 게 옳다는 리시 수낵 당시 총리의 결단에 따른 조치였다. 당시 그는 “11년 동안 보수당 대표, 6년 동안 총리로 일한 경험이 수낵 총리를 돕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최근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노동당에 참패해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총리 출신 외교장관’은 약 8개월의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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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17년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프랑수아 올랑드가 7일(현지시간) 실시된 프랑스 하원의원 총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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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집권당인 자민당의 아소 다로(麻生太郎) 부총재는 현재 83세다. 한국인 다수는 그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밑에서 오랫동안 부총리 겸 재무성 장관을 지낸 ‘2인자’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1인자’인 총리를 역임한 인물이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일본은 원내 과반 의석을 가진 다수당의 총재가 자연스럽게 총리를 맡는 구조다. 아소는 자민당 당권을 놓고 오랫동안 아베 등과 경쟁하다가 2008년 9월 가까스로 승리를 거머쥐고 총리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공식 석상에서 실언을 되풀이하는 등 자질 논란을 빚은 끝에 딱 1년만 재임하고 낙마했다. 2009년 치러진 총선에서 자민당이 야당에 대패하며 정권을 내줬기 때문이다. 이후 2012년 자민당이 재집권에 성공해 아베 내각이 탄생하며 부총리로 입각했으나, 그에게 다시 1인자 자리에 오를 기회는 끝내 주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이나 의원내각제 국가의 총리를 지냈으면 더는 ‘정치적 미래’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다. 위에 소개한 캐머런이나 아소는 무척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미국에선 대통령에 당선돼 임기를 마친 뒤 연방대법원장으로 공직에 복귀한 사례가 있다. 윌리엄 태프트(1857∼1930)가 주인공이다.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각각 묵인한다는 내용의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 체결 당사자로 한국에서 악명이 높은 바로 그 인물이다. 1909년 1월 미국 제2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태프트는 연임에 실패하고 1913년 1월 물러났다. 그러나 8년 뒤인 1921년 대법원장에 임명돼 1930년까지 재직했다. 과거 한국에선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을 ‘3부 요인’이라고 불렀는데 우리 식으로 따지면 혼자서 3부 요인 중 두 자리를 꿰찬 셈이다. 오늘날 대통령으로서 태프트의 존재감은 희미하지만, 대법원장으로서는 미국 사법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후한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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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17년 5년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에서 물러난 올랑드는 최근 실시된 프랑스 총선에 출마해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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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프랑수아 올랑드(69)가 최근 실시된 프랑스 하원의원 총선거에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프랑스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출신 하원의원’이 탄생한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오랫동안 의원 생활을 한 지역구에서 승리한 것인 만큼 ‘이변’이라고 부를 일은 아니다. 다만 대통령까지 역임한 인사가 의원직에 도전한 전례가 없어 많은 이들이 당혹감을 느끼는 듯하다. 올랑드 본인은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는데, 좌파가 원내 1당에 오른 총선 결과만 놓고 보면 일단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그런데 세계적 강대국인 프랑스 대통령까지 했던 인사가 무려 577명이나 되는 하원의원 중 한 사람이라는 별 볼 일 없는 지위에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곧 70세가 되는 전직 대통령 겸 하원의원이 펼칠 의정활동에 눈길이 쏠린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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