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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토)

14년 동안 ‘돼지 9마리’ 잡아 1억 기부...그가 이 방법 고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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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기 시공업체 운영 박성일씨

조선일보

희망친구 기아대책 장기 후원자 박성일씨가 지난달 후원한 9번째 돼지 저금통. 책가방 크기 이 저금통에는 2400만원(지폐 2318장·동전 5930개)이 들어 있었다. /희망친구 기아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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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 280장, 1만원권 752장, 5000원권 77장, 1000원권 1209장, 그리고 동전 5930개.

2400만원이 가득 찬 돼지 저금통이 지난달 7일 서울 강서구의 희망친구 기아대책에 도착했다. 기아대책 장기 후원자 박성일(63·서울 관악구)씨가 보내온 아홉 번째 돼지 저금통이었다. 가로 32cm, 세로 35cm, 높이 26cm. 어지간한 책가방만 한 이 저금통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최대 크기라고 한다.

박씨가 기아대책 사무실에 저금통을 보낼 때마다 직원들은 최대 50kg가량 무게를 감당하느라 낑낑거려야 했다. 2010년부터 돼지 저금통으로 기부해온 박씨의 후원액은 이번에 1억원을 돌파했다.

박씨의 저금통 기부는 과거 경기 군포의 한 교회를 같이 다니던 신도로부터 ‘밥그릇 저금통 후원’을 소개받으면서 시작됐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남는 잔돈을 모아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자는 운동에 박씨는 ‘이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승강기 시공 업체를 운영하는 박씨는 사무실 책상 밑에 돼지 저금통을 두고 주머니에서 남는 잔돈을 넣었다. 경북 안동에서 보낸 어려운 유년기, 빠듯한 살림에도 더 어려운 동네 사람들을 돌보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조선일보

박성일씨


저금통에 돈을 넣다 보니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음료수나 껌을 살 때도 일부러 1만원짜리 지폐를 내 잔돈을 만들었다. 아내와 두 딸도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썼다. “하루라도 돈을 넣지 않으면 우리 돼지가 배고프겠다고 생각하니 의외로 정이 붙더라”며 “마지막 돼지 저금통을 보낼 때는 잘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듯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도 “돼지 한 마리 키우라”고 말하고 다니는 저금통 전도사가 됐다.

현금 이용이 날로 줄고 결혼식·장례식 부조금도 계좌 이체하는 시대. 박씨가 돼지 저금통 기부를 고집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돈을 손으로 만지면서, 몸으로 선행을 느끼기 위해서였습니다.” 저금통에 일일이 돈을 넣고 저금통을 들어보며 무게를 들어봐야 ‘내가 어디까지 왔구나’ 체감됐다고 박씨는 말했다. “손으로 느끼고 눈으로 볼 수 있어야 다시 동기 부여를 받을 수 있지요.”

박씨가 후원한 1억원은 지금까지 케냐 리무르 재봉기술학교 설립, 자카르타 빈민촌 무료 급식 등 외국 취약 계층 아동을 위해 쓰였다. 박씨가 지난달 보내온 저금통 후원금은 오는 9월 열리는 기아대책의 ‘호프컵(Hope cup)’ 개최에도 쓰인다. 호프컵은 전 세계 결연 아동들이 한국을 찾아 축구 경기를 비롯한 문화 체험, 교류 활동 등에 참가하는 행사로 박씨를 비롯한 많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아동들이 한국을 찾아올 수 있게 됐다.

박씨는 “1억원이란 금액을 채웠으니 1차 목표를 달성했다”며 “새로운 기부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조만간 교회 신도들과 함께 필리핀 취약 계층 가구 130가구를 방문해 기부와 선교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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