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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잇달아 애플·마이크로소프트(MS)·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시장 질서를 저해할 요인이라고 판단되는 지점에 대해선 천문학적인 과징금 부과와 함께 서비스 중단과 같은 날 선 대응책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게 EU의 기본 기조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EU는 플랫폼 규제를 넘어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관련된 빅테크들의 신규 사업 영역도 정조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국내에선 이러한 EU의 움직임과 관련해 '불확실성'을 우려하는 기업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빠른 속도로 진화해 나가는 AI 생태계 속에서 한국은 AI 규제나 관련 법 정비에 있어 아직까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원의 이유정 AI팀장 겸 대표 변호사와 오정익 변호사, 김윤명 전문위원(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은 최근 매일경제와의 대면 인터뷰를 통해 "정비된 한국판 AI 무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이들 전문가는 이구동성으로 시장을 부흥시키면서도 사업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첫걸음은 정부의 '명확한 지침'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원에서 AI팀을 이끌고 있는 이유정 대표변호사(가운데)와 오정익 변호사(왼쪽), 김윤명 전문위원(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충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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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AI 관련 법이 부재한 국내 상황과 관련해 이 변호사는 'AI 기본법 자체가 죄초됐다'고 평가하는 목소리는 시기상조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국회에서 긴 논의가 이뤄졌지만 결론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서도 "그러나 규제 방식과 정도, 세부적인 지침 등에 대한 이견이 많았다는 점에서 좀 더 깊은 숙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초기 AI 법안이 수립될 당시보다 더 빠르게 기술이 발전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AI 수준별 위험의 정도나 그에 따른 파급력과 어떤 방식으로 담보할 것인지 등 따져볼 요소들이 많아졌다"면서 "결국 이 시점에선 (규제 추진에 있어) 주도적인 EU의 선례를 충분히 검토하고 우리에게 맞는 핏을 속도감 있게 찾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EU는 2021년 초안 발의 이후 3년 만인 지난 5월 전 세계 최초로 AI법을 승인했다. EU의 AI법은 AI 활용에 대한 위험도를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해 차등 규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개인의 특성과 행동 등의 데이터로 개별 점수를 매기는 관행인 사회적 점수 평가와 폐쇄회로(CC)TV 등에서 얼굴 이미지를 무작위로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행위는 전면 금지된다. 또 고위험 AI로 분류된 AI를 서비스하다 중대한 법 위반을 하면 매출의 최대 7%까지 벌금으로 부과된다.
오 변호사는 "지난 국회 당시 입법 발의된 여러 AI법 가안을 보면 대부분 선언적인 의미가 컸고, 관련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하는 경우에만 벌칙 규정을 두고 있는 등 다른 벌칙 조항이나 과징금 등 규정은 없었다"면서 "따라서 항간에서는 발의돼 추진 중인 AI법을 규제법안이라고 평했지만, 규제 규정은 사실상 없는 선언적인 의미에서 추진된 입법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김 전문위원 역시 "지금까지 논의된 수준에선 명확성이 없다는 것을 시장에서는 가장 크게 두려워하는 지점으로 느끼고 있다"면서 "'선도입 후규제'라는 대명제는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입장에서 다분히 모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고, 이 지점을 해소해주는 것이 정부와 국회의 역할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규제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게 이들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오히려 명확한 지침은 시장을 독려하는 윤활유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변호사는 "규제라는 측면을 너무 부정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일례로 스위스 제품을 고가에도 소비자들이 사는 것은 해당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있기 때문으로, 그런 측면에서 AI 역시 모델이 안전하고 서비스가 신뢰도 있게 구축됐다고 소비자가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면 오히려 경쟁력 있는 시장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견해를 덧붙였다. 이어 그는 "AI 기술의 활용성을 극대화하면서도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관련 법 제정 외에도 계속해서 정부와 국회, 기업, 시민단체가 심도 있는 논의와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법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형 AI 기본법은 기본적으로 EU가 규정하는 형태를 큰 범주에서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내수에만 집중된 기업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기업이 미국, 유럽, 아시아 등 글로벌 환경에 통합된 비즈니스를 이어가기 때문에 결국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법안의 수준을 보이고 있는 EU에 핏을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만 이 지점에서 무조건적으로 EU의 AI법 기준을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게 오 변호사 견해다. 오 변호사는 "EU에 맞춰 우리 법이 만들어질 경우 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물론 대응 차원에서 각국 정세에 맞춘 사업 전략을 기업이 추진해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조력자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법을 재탕하지 않으면서도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기 위해선 총괄 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 변호사는 "AI가 잠깐의 이슈로 지나가는 트렌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기에 부처마다 산발적인 대응으로 이어나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 "따라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AI와 관련된 분야를 총괄하는 곳을 두고 있다는 점을 적극 참고해야 한다"고 전했다. AI라는 분야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심도 있는 정책을 일관성 있고, 효율적이며,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지속할 수 있도록 법에서 총괄기관을 둘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오 변호사는 "AI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구체적인 규제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지만, 이에 대비하는 능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 실현 등을 위한 기관 설립 등을 규정한 AI 기본법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김 전문위원은 "민간이 주도하는 컨트롤타워의 경우 형식적인 형태에 불과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이 밖에 AI 안전과 신뢰성에 대한 논의가 보다 더 진전돼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로 제시됐다. 김 전문위원은 "가령 AI 관련 창업 지원은 기존 법에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영역으로, AI 기본법은 전적으로 신뢰성과 안전성, 명확성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변호사도 "AI 원천 기술만 봐도 투입되는 투자 자금이 조 단위 이상으로 고품질의 고가 산업"이라면서 "따라서 적당한 품질, 적당한 서비스는 더 큰 부작용을 키울 수 있기에 초기 질서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법인 원은 2020년 2월 기업들이 부딪히는 다양한 법률 이슈들을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대응팀을 구성했다. 이 팀은 AI 기술 개발부터 관련 서비스 운영 기업 등 전반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국내외 AI 산업 관련 법제 동향을 파악하고 분석해왔다. 이 팀에선 주로 AI 윤리, 데이터 수집과 가공, 개인정보보호법 이슈 등에 대한 법률 자문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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