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6 (일)

“세금, 이방인에 퍼줘”...뿔난 청년들 극우에 베팅 [유럽 휩쓰는 극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현실 반영 못하는 기성 정치 심판

SNS 소통하는 극우 정당에 친근감

스페인 IE대 아로바 교수 “경고의 신호”

헤럴드경제

조르당 바르델라 프랑스 국민연합(RN) 대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RN이 득표율 1위를 차지했다. [조르당 바르델라 인스타그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정치인들에게 버림받은 기분이었어요.”

프랑스 남동부 도시 생테티엔에 사는 22세 톰은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강성 지지자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의 포스터를 붙인다. RN 전당대회에 참여해 바르델라와 사진을 찍고 그의 연설에 열광한다.

소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톰은 기성 정치에 불만이 많다. 그는 “(기성 정치인은) 농촌 문제에 관심이 없다. 바르델라는 농부에게 불리한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자유무역협정(FTA)을 완전히 없애거나 금지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의 수출입품을 특정 조건 안에서 조절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독일 합작회사 아르테가 지난달 방영한 다큐멘터리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청년들’이 포착한 극우 지지자들의 모습이다.

RN 지지자인 27세 줄리엣은 혼자 아이를 기르며 힘들게 일을 해 세금을 내지만 혜택은 이민자들이 누린다 생각한다. 그는 “매우 불공평한 것들이 많다”며 바르델라가 프랑스를 바꿔줄 것이라 생각한다.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극우 정당의 핵심 지지층은 청년이다. 이들은 국가의 혜택을 받은 적이 없다는 생각에 불만이 가득하다. 이들의 눈에 기성 정치인들은 국내 문제보다 이민자에게만 관심이 많고, 대의명분을 중시하며 현실성 없는 이야기만 하는 답답한 대상이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존 정치에 회의를 느낀 유럽 청년들이 새로운 지지 대상을 찾은 것”이라며 “극우에게 ‘기회 줄게, 한번 해봐’라는 생각으로 표를 던진다. 일종의 정치 실험 중이다”고 지적했다.

헤럴드경제

조르당 바르델라 프랑스 국민연합(RN) 대표. 틱톡에서 18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바르델라는 정치적인 메세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올리며 지지층과 소통하고 있다. 바르델라가 스마트폰을 보는 모습을 담은 틱톡 영상은 조회수 540만, 좋아요 67만을 받기도 했다. [조르당 바르델라 틱톡]


▶유럽 젊은 유권자들 ‘우향우’…SNS 소통, 젊은층에 친근감 =극우 정당이 젊은 유럽 유권자들을 사로 잡았다는 사실은 이미 표로 확인됐다.

지난달 30일 치러진 프랑스 총선 1차 투표 당시 RN의 34세 미만 유권자 득표율은 32%였다. 다른 나라의 사정도 비슷하다. CNN에 따르면 지난달 유럽연합(EU) 의회 선거에서 폴란드에서는 30세 미만 유권자 30%가 극우 법과정의당을 지지했다.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25세 미만 독일 유권자 표 16%를 가져가 2019년보다 득표율이 3배 가량 증가했다.

CNN은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오스트리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18~34세 유권자의 21%는 강력한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 스페인 극우정당 복스(VoX)는 25세 미만 유권자 중 12.4%의 지지를 얻었다. 덴마크에서도 극우 덴마크 민주당이 22~30세 유권자 10%의 표를 확보하며 4위로 올라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소통하는 극우 정당을 친근하게 느끼는 경향도 있다. 틱톡에서 18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바르델라는 정치적인 메세지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올리며 지지층과 소통하고 있다. 독일 AfD도 틱톡에서 “극우가 애국자”라면서 젊은 유권자를 공략하고 있다. 독일 국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독일 기성 정당은 지금까지 SNS 전략에 별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반면 AfD는 다른 모든 정당을 합친 것보다 훨씬 틱톡을 잘한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유럽 청년들이 극우 정당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앙헬 알론소 아로바 스페인 IE대 국제문제 교수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청년들은 기본적으로 (사회 문제에) 급진적이다. 불행하게도 이제는 극우에 의해 사회 변화가 구체화하고 있다”며 “많은 청년들이 연대를 위한 다리를 만들기보다 증오의 장벽을 쌓는 길에 끌리는 것이 비극”이라고 말했다.

▶“고물가, 실업 못 참겠다”...결국 경제에 불만=유럽 주요국에서 극우 정당의 득세는 단순히 자극적인 선동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 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고물가 등 미래가 불안정하다고 느끼는 젊은 유권자들을 파고 들면서 지지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주택가격은 오르면서 젊은층이 특히 경제난에 내몰리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네덜란드 트럼프’로 불리는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는 주택공급 부족과 임대료 상승 문제를 이민자 급증과 연결시켜 청년 유권자의 지지를 얻으며 지난해 11월 하원선거에서 제1당으로 올라섰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벨기에,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 핀란드에서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 수가 노년층보다 많다”고 진단했다.

특히 젊은 극우 지지자들의 상당수를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30.5%를 얻은 AfD의 경우 전략적으로 젊은 남성을 집중 공략한 것으로 알려진다. 막시밀리안 크라 AfD 의원은 “진정한 남자는 우파”라며 이같은 분위기를 북돋기도 했다. 벨기에에선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젊은 남성 31.8%를 기록해 8.9%인 젊은 여성보다 월등히 높았다.

젊은층의 극우 편향에 아로바 교수는 “그 어떤 나라도 극우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경고의 신호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binna@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