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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가볍게 살고 싶어서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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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로컬을 바꾸는 시간’이라는 행사의 강연자로 경북 상주시에 다녀왔다. 양양에서의 삶을 책으로 쓴 덕에 지역의 행사에 종종 초대받는다. 특산품이 곶감인지 참외인지 헷갈리는 상주(곶감이다. 참외는 성주의 특산품)처럼 처음 가 보는 지역일 때도 있다. 지역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가다 보니 그 지역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는데, 인구수와 면적을 살펴보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상주는 인구가 약 9만 명인데, 면적은 1254.64㎢로 매우 넓다. 이 면적은 서울의 두 배 정도이다. 넓은 면적으로 인해 경상북도 시 중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다. 그리고 전국 시 단위 중 유일한 인구소멸위기 지역이다. 경상도의 어원이 ‘경주’와 ‘상주’일 만큼 유서 깊은 도시였다는 게 어색할 정도로 위상이 달라진 셈이다. 쌀과 곶감이 특산품인 대표적인 농업 도시이고, 일차 산업이 쇠퇴하면서 인근 공업도시인 대구와 구미로 인구가 많이 유출되었다. 당연하게도 지방소멸과 인구절벽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고, 내가 참여한 행사 역시 그 일환이었다. 나를 비롯해 공주와 인천에서 활동하는 로컬 명사들과 상주, 의성, 문경에서 성장하고 있는 청년 창업가들이 각자의 경험과 통찰력을 나누었다.



과감하게 행사를 기획한 상주의 ‘이인삼각 협동조합’부터 토종 곡물을 기반으로 다양한 식경험을 나누는 공주의 ‘곡물집’이나 명확한 컨셉과 뚝심으로 지역 상권 활성화의 성공 사례가 된 인천 ‘개항로 프로젝트’는 행정에 의한 도시재생의 한계를 고민하는 상황에서 역량 있는 민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했다. 고향에서 사업을 일구어 나가고 있는 의성·문경 청년 창업가의 씩씩한 행보가 멋졌고, 연고가 없는 상주에서 전통주를 빚으며 세계 무대를 바라보는 서울 출신 청년의 솔직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상주뿐 아니라 김천, 울진 등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진지한 눈빛과 관심도 기꺼웠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상주에서 양양까지 4시간의 여정 동안 이유를 계속 찾았다. 생각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한 마디로 ‘무거워서’였다. ‘소멸’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절박하고 비장한 표정까지는 아니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하고 좁혀 보면 조금씩 다른 고민을 안고 지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진지한 얼굴과 마주할 때면 우리가 좀 더 가볍게 지금, 이곳에서의 삶과 대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여행 중 충동구매로 집을 샀던 시작점을 돌이켜보면 가볍게 살고 싶어서 서울을 떠날 결정을 했고, 그 정도로 가벼운 결심이기를 바랐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고 익숙해서 계속 살 수도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 사는 삶도 가능할 듯해서 떠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5년 뒤, 10년 뒤에는 양양도 서울도 아닌 곳에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내 삶의 무게가 유난히 가벼워서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이미 소멸이라는 바다로 서서히 가라앉는 타이태닉호 위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자의 마음이랄까.



지방에 살면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가능한 가벼운 상태가 되고 싶다. 현실의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도 힘을 내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얼굴에서 어쩔 수 없는 피로감의 흔적을 만날 때면 마음이 심란하다. 지역 대신 로컬이 범람하면서 비즈니스나 라이프스타일의 도구로 소환되지만,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쓰는 마음은 간과된다. 지난해 태어난 25만명 중 53%가 수도권 출생이라고 한다. 이들에게는 ‘지방=고향’이 아니다. 이 물길을 거슬러 오르려 애쓰는 이들도 흐름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가는 이들도 조금 더 가벼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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