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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백두산 천지의 기운을 받다 [양희은의 어떤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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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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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양희은 | 가수



백두산에 다녀왔다. 연길까지 비행하고 버스로 이동해 도문에 내려 ‘두만강 나루터’라 쓰인 바위를 보니 이상하게 짠했다. 그곳에 내 또래 아줌마들이 떼 춤을 추고 있어 지나가다 함께 추었다. 춤사위는 쉬웠다. 옷차림이 화사하고 다양해서 조금 낯설었지만 구경하긴 재미있었다. 1950~1960년대생들은 과거 문화대혁명기에 정규교육이 모자란 탓에 개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갔어도 소속이 없었단다. 마음 기댈 데가 필요한 엄마들이 모여 춤추는 곳이 곧 광장이 되었는데 비슷한 신분끼리 함께 우울을 떨쳐낼 연대가 생겼고, 정서적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한 게 광장무였다. 도문→용정→영동의 고 윤동주 시인의 생가까지 가보았는데 지난 연말에 그곳에서 별이 왕창 쏟아지는 하늘을 보며 ‘별 헤는 밤’을 읊조린 얘기도 들었다. 공기가 그럴 수 없으리만큼 투명했고 바람이 가슴 속을 훑고 지나는 듯 시원했다. 길 옆의 목단꽃들이 고왔다.



백두산에 처음 올랐을 때가 2005년 1월1일! 송은이 박미선과 함께 문화방송(MBC)의 ‘행복한 수다’ 녹화 때문에 떠났지만 옷차림에 대한 아무런 상식도 없었다. 이도백하에서 눈길을 뚫고 장백산이라 쓰인 큰 바위를 봤을 때 우리 땅을 밟고 갈 수 없으니 그렇구나, 기분이 묘했다. 그때 이도백하는 영하 20도로 모든 게 쨍하니 깨질 듯 추웠다. ‘내복을 사야 하나? 어디서 마련하지?’ 하다가 노점에서 국방색 두꺼운 털실바지를 사 입고 떠났다. 숙소 거의 도착해서 맹추위에 차 라디에이터는 터져버렸고 어찌어찌해서 너른 호텔방에 짐을 풀었는데 온돌방이 따뜻해서 다행이었다.



이튿날 아침 식당에는 차갑게 식은 밥과 국, 나물들이 차려져 있었다. 뜨끈하게 차려도 금세 식는단다. 자! 천지까지 어찌 갈 거나? 보통 차량으로는 못가니 1톤 트럭에 지붕 덮고 탱크바퀴 달린 차량이 마련되었다. 전철처럼 마주 보는 좌석인데 그 차를 탈 명분은 꼭대기 초소까지 꽝꽝 얼려 비닐로 포장한 돼지 한 마리 배달하기였다. 돼지는 차 밑바닥을 다 차지했고 우리 셋은 발 디딜 데가 없어 돼지 위에 발을 올렸는데 신발 밑창서부터 냉기가 올라와 차 안에서도 이가 덜덜 부딪혔다. 그렇게 동파 쪽으로 올라 땡땡 언 천지 앞에 섰다. 영하 35도 속에 입김이 올라가 눈썹에 하야니 꽃이 피고 콧속도 얼고, 등산모·마스크를 써도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다. 카메라를 대면 렌즈 가운데부터 성에꽃이 피기 시작했고 닦고 다시 카메라를 대면 또 성에꽃이 피고…. 결국 15분 만에 돼지 실어온 그 차를 타고 하산해야 했다. 추위에 정신도 얼은 채 장백폭포로 향했고 물줄기 얼어붙은 폭포를 보고 온천을 한 기억이 새롭다.



6월말 백두산에 야생화가 필 때면 낙원이 있다면 이렇겠구나 싶게 아름답다길래 천지도 보고 꽃도 볼 생각이었지만 조금 일렀다. 우리 팀에는 야생화 전문 사진가도, 야생화 동아리 회원도 계셔서 많이 배웠다. 역시 무언가를 알고 보는 이와, 모르는 이가 얼마나 다른지도 알았다. 만 19년 만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내 발로 걸어 오르기로 하고 서파를 향했다. 2005년 내 나이 54살과 지금 나이 73살의 격차가 있어도 1440계단이야 뭐 한 계단씩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보자! 하지만 그 결정은 무리였다.



도저히 안 되어서 중간에 가마를 불러 탔다. 안개가 짙어 천지가 보이질 않았다. 바람 따라 밀려난 안개 덕에 사진 찍으려 하면 다시금 더 짙은 안개가 가렸다. 그 와중에 천지에 이는 물결이 보이고, 겨우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데 무릎보호대를 안 챙겨 후회가 들었다. 거의 다 내려와서 베테랑인 어떤 분이 아무래도 점심을 포기하고 다시 올라가 봐야겠다고 했다. 그 일행이 그림엽서 같은 천지 사진을 찍어보내는 바람에 다시 오르려니 엄두가 안나 가마꾼을 불러 부탁했다. 중국 가마꾼이 힘들다며 걸핏하면 앉아 쉬니 무안했다. “자고로 팁이란 서비스에 대한 답례지. 강짜 부린다고 주냐?” 그렇게 오른 두번째 서파에서 천지의 맨얼굴을 보았다.



사흘째 되는 날 심한 비가 내릴거라더니 멀쩡해서 북파를 향했다. 엄청난 인파가 능선을 빼곡히 채웠다. 하루 2만명이 들어왔다는데 이 동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여 살리나 보다. 북파 역시 시원하게 얼굴을 보여주었다. 쨍하니 개이지는 않았지만 준수했다. 서파를 두번 오르내린 후 다리가 후들거린다. 집으로 돌아와 아무리 생각해도 백두산을 3번 올라 천지의 얼굴을 4번이나 본 것이 꿈만 같았다. 꿈이 아닐까? 아냐. 사진들이 있잖아? 천지의 기운을 받았는지, 희한하게 며칠은 앓아누워야 마땅한데도 속기운이 팔팔했다. 7월 중순이면 꽃 천지라는데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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