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찰스 3세 접견으로 취임…17일엔 킹스 스피치 통해 첫 정부 청사진
변화 요구 민심 부응 과제, 국제정세 혼란·극우 돌풍…"대내외 환경 녹록지 않아"
FT "우파 포퓰리즘 약진 속 영국 정치, 국제적 중도좌파 정당으로 되돌아가"
2022년 버킹엄궁에서 만난 찰스 3세와 스타머 |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4일(현지시간) 영국 총선에서 14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루게 된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총리 취임 후 내각을 구성해 산적한 현안을 점검, 대응하고 정상외교 무대를 오가는 숨가쁜 일정을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집권당 심판론에 기댄 압도적 여론의 지지를 발판으로 국정의 키를 쥐게됐지만, 그만큼 변화를 바라는 민심의 요구에 부응하며 집권 능력을 입증해야 할 시험대에 올랐다. 여기에 대외적 환경도 녹록지 않다.
5일 총선 최종 결과가 발표되면 보수당 리시 수낵 총리가 찰스 3세 국왕을 만나 사의를 표명한 직후에 스타머 대표가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로부터 정부 구성 요청을 받으면서 총리로 공식 취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정부의 공식 명칭은 '국왕의 정부'(His Majesty's Government)이고 의례적이라도 총리 임명권은 국왕의 핵심 권한이다.
이어 스타머는 다우닝가 10번지로 이동, 첫 대국민 연설을 하고 정부 구성 작업을 시작한다. 이미 꾸려진 예비 내각에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총선 기간 보수당 정부의 간판 정책이나 인권침해와 국제법 충돌 논란을 빚은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을 첫날 폐기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날 바로 르완다 정책의 폐기가 발표될 수 있다.
주말 사이에는 미국 워싱턴DC로 향할 예정이다. 9∼11일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서다.
총선 정책공약집 대외정책 부분 맨윗부분에 '나토 및 우리의 핵 억지력에 대한 흔들림 없는 헌신'이라는 공약을 내건 스타머는 이번 나토 회의에서 나토 동맹국과 협력 강화 의지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나토 회의의 주요 의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스타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양자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영국 언론은 관측했다.
2023년 런던에서 만난 젤렌스키와 스타머 |
새 의회 공식 개원식과 국왕의 국정연설(킹스 스피치·King's Speech)은 오는 17일 진행된다.
국왕의 연설은 정부가 작성하는 것으로, 이번 연설로 스타머 정부의 첫 주요 정책 청사진과 입법 계획이 공개된다.
총선 공약으로 유럽과의 관계 재설정 추진을 공언한 스타머는 오는 18일 윈스턴 처칠의 생가인 옥스퍼드셔 블렌하임궁에서 열리는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서 의장으로서 회의를 주재하고 유럽 주요 동맹국들과 동맹 강화를 논의한다.
국내외 환경이 모두 녹록지 않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만큼 스타머 정부는 숨돌릴 틈을 찾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총선이 집권 보수당 참패, 노동당 압승으로 끝나게 된 것은 보수당 정권 14년간 물가 급등, 공공부문 실패, 이민 증가 등으로 삶의 질이 급락했다고 여기는 민심의 분노에 따른 것인 만큼 새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비등하다.
경제 성장 둔화와 재정 압박으로 모두 해결하기 쉽지 않은 사안들이다.
AP 통신은 "스타머는 경제 불안, 제도권에 대한 팽배한 불만, 너덜너덜해진 사회 구조라는 우울한 배경 속에서 변화를 바라는 지친 유권자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타머의 노동당이 지지층 확대를 위해 중도화 전략을 써왔고 이것이 이번 총선에서 먹혀 들어갔지만 진보 정당으로서 선명성과 집권당이 됐다는 현실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도 잦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당이 총선 기간 인권침해 논란과 유럽인권재판소 충돌을 빚은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 폐기를 선언하면서도, 이민이 지나치게 많다는 여론을 수용해 국경안보본부를 신설, 국경을 통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국제적으로도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으로 국제 정세가 혼란스럽고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에서 우파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시기에 중도우파 정부를 제치고 탄생한 중도좌파 정부이기에 더욱 그렇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선거 결과는 영국에도 중대하며 전 세계에 울림을 줄 것"이라며 "많은 국가에서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약진한 시기에 국제적인 중도좌파 정당으로 영국 정치가 되돌아갔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영국 의사당 앞 친팔레스타인 시위자 |
그만큼 국제 무대에서 이목이 쏠리면서 스타머 정부가 출발부터 부담을 안게 됐다는 뜻이다.
대표적 예로 노동당은 총선 공약집에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넣어 주목받았으나 그 시점을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다. 미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인정 시기를 늦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노동당 예비내각 외무장관으로 스타머 정부 첫 외무장관으로 유력한 데이비드 래미는 "우리가 근로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쫓겨나고 민족주의자들이 우리의 뒤를 좇을 것"이라며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교훈"이라고 말했다고 FT는 전했다.
최우방인 오는 11월 미국 대선도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첫 TV토론 이후 인지력 논란으로 거센 사퇴론에 휩싸인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 추가 하락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 가능성을 더 높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 후보 교체가 현실화할 경우 미 대선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시계제로 상황으로 빠질 수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노동당 외교정책 책임자인 데이비드 래미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와 친분이 깊고, 스타머와 미국의 관계는 그리 깊지 않다"며 이를 스타머 정부가 처한 불확실성 요소로 꼽았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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