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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국민이 어려우니 돈 풀면 된다?… 너무 단기적이고 나이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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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경제가 만난 사람]

김홍기 한국경제학회장 인터뷰

“15년 등록금 동결로 대학 손발묶여… 초중고 예산은 오히려 급격히 늘어

극단 갈등의 정치, 구조개혁 못해… 韓 ‘지금이 가장 잘사는 때’일 수도”

동아일보

김홍기 한국경제학회장은 1일 대전 대덕구 한남대 연구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대한 구조 개혁을 빨리 실행하지 못하면 ‘피크 코리아’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전=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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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인 격변 속에 잠재 성장률까지 크게 떨어지면서 ‘피크 코리아(Peak Korea)’의 위기감이 큰데도 진영 논리에 갇힌 정치는 중요한 구조 개혁에서 전혀 역할을 못 하고 있습니다.”

1일 대전 대덕구 한남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홍기 한국경제학회장(64·한남대 경제학과 교수)은 글로벌화처럼 유리한 세계 질서에 오랫동안 올라타 있었던 한국 경제가 유례없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극단적인 갈등과 포퓰리즘에 빠져 있는 정치가 노동·연금·교육 개혁 같은 구조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면 한국은 ‘지금이 가장 잘사는 때’일 수 있다는 것이다.

● “포퓰리즘이 15년간 등록금 묶으며 혁신 막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 회장은 올 2월 제54대 한국경제학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한국은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탈세계화, 미중 갈등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라며 “위기를 넘어서려는 고민의 중심에 서야 할 정치는 포퓰리즘과 극단적인 갈등에 헉헉대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한국 사회가 포퓰리즘에 휘둘리면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15년째 지속된 대학 등록금 동결과 방만한 초중등 예산 문제를 꼽았다. 그는 “한국에서는 어떤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에도 없었던 15년간의 대학 등록금 동결이 이어지고 있다”며 “미국 혁신기업의 뿌리는 대학인데 우리는 이런 대학의 손발을 묶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같은 교육 예산에서도 초중고교의 예산은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급격히 늘어나는 문제를 같이 짚었다. 김 회장은 “‘반값 등록금’처럼 포퓰리즘적인 구호와 교육 예산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가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0년 55조9000억 원 규모인 교육교부금이 20년 뒤에는 113조90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내국세의 20.79% 등으로 조성해 초중고교 교육에 쓰는 교육교부금이 학령인구 급감에도 오히려 늘어나는데 정치적인 문제로 이를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직선제 교육감들이 자신의 득표율이 더 높은 지역에 더 많은 목적사업비를 지출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이날 김 회장은 정치권의 포퓰리즘 논란 중심에 놓여 있는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서는 “폐기하지 않고 실제로 추진하는 것이 맞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국민이 어려우니 돈을 풀면 된다’는 것은 너무 단기적이고 나이브한 생각”이라며 “과도한 재정 지출은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고, 그 피해가 결국 취약계층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부동산 안정돼야 내수 부진-저출산 문제 해결”

지난 국회에서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을 논의하다가 중단된 연금 개혁과 관련해 김 회장은 “최대한 신속하게, 구조 개혁을 포함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후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으로는 연금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얼마 전 KDI가 제시한 것처럼 연금을 신연금과 구연금으로 분리하고 신연금은 ‘기대수익비 1’을 보장하는 완전적립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포함하는 개혁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근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수출이 호조를 보여도 내수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상황. 한국의 고질적인 수출-내수 불균형에 대해서는 가계의 자산이 부동산에 과도하게 쏠려 있다는 문제를 짚었다.

부동산 투자와 전세 대출 때문에 가계 부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내수가 늘어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국민들이 빚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데도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캐피털 게인’(자본이득)을 위해 대출을 내고 이자를 부담하는 상황”이라며 “부동산 가격 안정이 내수 활성화와 저출산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청년들의 대출 이자를 깎아주면서 집을 사도록 하는 대신에 민간의 힘을 활용해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전=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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