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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중재 노력이 좌초 위기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유가가 빠르게 진정되는 분위기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유가는 올해 연말 안에 1배럴당 100달러를 향할 것이라는 월가 전망이 나온 바 있다. 예멘 반군의 홍해 도발에 이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비회원 주요 산유국) 감산 장기화 여파가 근거다.
다만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OPEC+ 외 주요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이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이번에는 유가가 다시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제 유가는 원유 시세 상승 혹은 하락에 베팅하는 상장지수상품(ETP·상장지수펀드와 상장지수증권 등)에 투자하는 경우뿐 아니라 ‘배당 귀족주’ 엑슨모빌 등 석유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에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제 유가가 올해 80달러를 밑돌며 다시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올해 4월까지만 해도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불안 섞인 예상이 나온 것과 대비된다. 일례로 당시 JP모건은 오는 8~9월 브렌트유 가격이 100달러를 찍을 수 있다고 내다본 바 있다. 홍해 일대 예멘 후티 반군 공격뿐 아니라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하마스 측인 ‘산유국’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무력 충돌로 번지는 등 중동 지역 정세 불안이 깊어졌고, OPEC+ 감산 기조와 더불어 멕시코 정부의 석유 수출 감축 선언 등이 영향을 줬다.
다만 5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단기 에너지전망(STEO)보고서를 통해 올해 국제 유가(브렌트유 기준) 전망치를 기존에 제시한 88달러에서 84달러로 낮췄다. 또 EIA는 겨울철인 올해 4분기(10~12월)에는 계절적 수요가 몰리는 탓에 유가가 87달러로 다소 높은 수준을 기록하겠지만 내년에는 전반적으로 83달러까지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IA와 미국 주도의 국제 에너지기구(IEA) 보고서는 전 세계 원유 수요와 유가 상승에 대해 보수적으로 전망하는 반면,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 보고서는 고유가를 지지하는 듯한 전망을 내는 경향이 있다.
씨티 “내년에 유가 60달러로 밀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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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대형 투자은행(IB)인 JP모건은 지난 4월에는 올해 유가가 100달러를 넘길 것으로 내다봤지만 최근 들어 전망치를 84달러로 낮췄다. 서부텍사스원유(WTI) 전망치는 79달러다. JP모건 역시 내년에는 유가가 더 하락할 것으로 보면서 브렌트유는 75달러, WTI는 71달러일 것으로 제시했다. 이 밖에 씨티 그룹은 올해 유가가 82달러, 내년에는 60달러까지 곤두박질칠 것으로 내다봤다.
유가 전망과 관련해 월가 기류 변화 배경을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는 지정학 리스크가 일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5월 10일(이하 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회의를 열고 미국이 제안한 ‘가자지구 3단계 휴전안’을 지지하는 내용의 결의를 채택했다. 안보리 15개 이사국 가운데 14개국이 찬성했고, 러시아만 기권했다. 러시아는 상임이사국이지만 반대하지는 않음으로써 결의안 가결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식의 소극적인 동의를 취했다.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가결되려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며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로 구성된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하마스 측이 유엔 결의안을 지지한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측은 하마스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결의안 이행 불확실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투자자들은 우선 한 고비는 넘겼다는 점에서 유가에 붙는 지정학 리스크 프리미엄을 줄이는 모양새다. 두 번째로는 원유 공급이 늘어날 가능성이 부각됐다. OPEC+가 내년 이후 감산 기조를 단계적으로 풀기로 한 데다 가이아나와 미국 등 아메리카 대륙 산유국의 원유 생산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2개 산유국으로 구성된 OPEC+는 5월 회의를 통해 “원유 생산량 감산 기조를 2025년 1월 1일부터 2025년 12월 31일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공동성명을 냈다. 다만 오는 10월부터 2025년 9월까지 1년 동안은 기존 감산량인 하루 220만 배럴 규모 감산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자흐스탄, 알제리, 오만 등 8개국은 유가를 떠받치기 위해 사우디 측 요청에 따라 자발적으로 원유 공급 줄이기를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OPEC+ 국가들은 현재 하루 총 586만 배럴만큼 원유를 감산하고 있다. 전 세계 수요의 약 5.7%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 하루 366만 배럴 감산 정책은 2025년 말까지 1년 연장하는 한편 하루 220만 배럴 감산 정책은 올해 9월 말까지 3개월 연장하기로 이번에 합의한 것이다. 이후 220만 배럴 감산 정책에 한해서는 올해 10월 말부터 단계적 폐지가 시작되는데 이는 실질적으로는 원유 공급이 이전보다 늘어나게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한편 올해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가이아나 등은 원유 증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대비 올해 하루 51만 배럴 증산, 캐나다는 25만 배럴, 브라질은 16만 배럴, 가이아나는 25만 배럴 증산이 예상된다고 EIA는 밝혔다.
일각에서는 사우디가 감산 기조를 깨고 증산에 나설 가능성에도 주목하는 분위기다. 5월 7일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가 전체 지분의 0.64%를 매각한 것과 관련이 있다. 아람코는 5월 14일 기준, 미국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에 이어 전 세계 시가총액 4위 기업이다.
아람코의 지분 일부 매각을 두고 업계에서는 회사가 주가 부양을 위해 유가 반등 시점까지 적극적으로 감산한 후 지분을 내다팔아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해왔다. 다만 5월 초 시장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지분 매각이 이뤄지면서 사우디가 더 빨리 공급 늘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상상인증권은 사우디의 재정균형유가 79.70달러로 현재 두바이유 가격과 비슷한 수준인 반면 지난해 감산에도 불구하고 아람코의 2023년 영업이익이 연간 25% 쪼그라들었기에 선제적으로 증산에 나서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수익성 키우기에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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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인증권 측은 “OPEC+ 내에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등 간에 불협화음이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유가가 1배럴당 80달러 선인 상황이 증산을 하기에 매력적인 가격 구간이기 때문”이라면서 “미국이 핵합의 탈퇴와 그로 인한 제재 일환으로 이란의 원유 생산과 수출을 제한했지만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 상승을 염두에 두고 이란 측 행보를 암묵적으로 용인해주는 분위기라는 점도 변수”라고 짚었다.
글로벌 수요가 둔화되면서 유가 상승세를 제한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하이투자증권은 “전기차(EV) 사용이 늘어나면서 휘발유 수요가 둔화되는 추세적인 변화와, 탄소배출과 관련해 신규 설비 투자가 제한적으로 이뤄짐에 따라 생산 여력도 제한될 수 있다”면서 “수요 둔화 예상 탓에 신규 설비 투자가 줄어드는 상황은 2028년까지 중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대표 주가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가 5월 중순까지 기준으로 올해 들어 약 16% 오른 반면 해당 지수에 속한 에너지 업종은 같은 기간 4% 오르는 데 그쳐 12%포인트(p)나 뒤처졌다.
개별 기업별로 보면 ‘석유 공룡’ 엑슨모빌(티커 XOM) 주가가 올해 들어 7.50% 오르는 데 그쳤다. 가이아나 해상 유전 일부를 소유한 석유·가스 탐사기업 헤스를 인수키로 한 엑슨모빌 경쟁사 셰브론(CVX) 주가도 약 2.3% 오르면서 시세 상승률이 저조했다. 이 밖에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이 버크셔를 통해 집중 매수한 옥시덴털페트롤리움(OXY) 시세는 올해 들어 약 0.4% 떨어졌다.
그간 업계에서는 유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이유를 두고 중국과 유럽발 경기 침체 가능성으로 인해 원유 수요가 둔화할 것이라는 예상을 꼽아왔다. 다만 메리츠증권은 “원유 수요는 컨센서스가 나오고 OPEC이나 EIA, 또는 IEA 등 기관마다 구체적인 전망치는 다르지만, 실질적으로 중요한 건 유가를 높이고 싶은 OPEC+와 유가를 안정시키고 싶은 미국 중 누구의 패가 강하고 확실할지다. 결국 이는 원유 생산 여력과 직결된다”고 짚었다.
한숨 돌리는 석유화학업계
유가가 추가 하락하거나 현재 수준에서 박스권으로 움직인다면 국내 석유화학기업들 주가는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미국 엑슨모빌이나 셰브론 등은 석유 탐사부터 정제·가공 등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유가가 뛰면 주가가 오르고, 유가가 하락하면 덩달아 하락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원유를 수입해 가공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의 경우, 일례로 올해 상반기 롯데케미칼이나 LG화학은 나프타분해설비(NCC) 부문 통합이나 일부 시설을 매각한다는 등 소문이 돌기도 했다. 두 기업은 이를 부인했지만 유가가 뛰는 시기에는 이들 기업 수익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주가도 하방 압력을 받을 수 있다. KDB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석유화학회사 비용의 약 70%가 나프타 등 원재료 구입비에 들어간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해 얻기에 유가에 직접적으로 가격이 연동된다.
반면 정유업계는 수요 증가세가 둔화되고 최근 정제 마진이 오르내림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유가가 떨어지면서 안정을 찾으면 오히려 수익성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일례로 업계에 따르면 5월 첫째 주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6.7달러인데, 정유업계가 수익을 보는 정제마진은 통상 4~5달러 수준이다. 이보다는 높지만 올해 1분기 복합 정제마진이 15달러까지 올랐던 것에 비하면 5월 이후로는 약세가 눈에 띈다.
국제 유가 불확실성이 커진 반면 천연가스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시세가 뛸 것이라는 의견이 최근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AI 시대 전력 수요 증가에 대비해 원자력 인프라스트럭처 확충 필요성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경제성 측면에서 원자력보다는 천연가스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천연가스는 계절적 수요 둔화와 재고 과잉 상태가 부각된 탓에 올해 초에는 약세에 접어들었지만 최근 한달 새 18% 가까이 올라섰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 헨리허브(HH) 천연가스 선물은 지난 2월 20일 100만 영국 열단위(MMbtu)당 1.58달러를 기록했지만 5월 중순에는 2.63달러로 올랐고 6월 중순에는 3.12달러를 찍었다.
이런 가운데 마이크 워스 셰브론 최고경영자(CEO)는 “AI와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급증 영향으로 천연가스 수요가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워스 CEO는 그간 AI 수혜 에너지원으로 꼽힌 원자력에 대해 “미국의 경우 원자력 발전은 현재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지열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원보다 시장성 입증 측면에서 갈 길이 멀고, 풍력이나 태양광 에너지는 날씨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안정성 측면에서는 천연가스가 가장 유력한 에너지원”이라고 설명했다.
월가에서는 AI와 데이터센터용 천연가스 수요 증가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JP모건은 최근 전망을 통해 HH 시세가 올해 4분기 4달러 선까지 오른 후 내년 4분기에는 5달러로 더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30년 안으로 천연가스가 데이터센터 신규 전력 수요 중 절반 이상인 60%를 해결하고 나머지 40%는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 에너지가 떠받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웰스파고는 최근 발표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AI와 데이터센터 수요를 감안할 때 미국 전력 수요가 2030년까지 최대 20%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이 중 상당 부분을 천연가스가 충족해야 할 것으로 봤다.
엘리 루빈 EBW 애널리틱스 연구원은 투자 메모를 통해 “올해 상반기 천연가스 굴착장비 수가 감소하는 등 생산활동이 주춤한 정황이 나와 공급 위축 가능성이 떠오른 것도 추가적인 시세 상승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천연가스 상장지수상품 혹은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 단기 수급 리스크를 감안해야 한다. 올해 1월 말 미국 HH 천연가스 선물 시세가 2.39달러를 기록하면서 연초 대비 16% 급락하자 이달 미국 최대 천연가스 기업인 체사피크에너지는 올해 생산을 30% 줄인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시세 회복에도 불구하고 재고량 변동폭과 날씨 상황에 따라 천연가스 시세 또한 등락을 거듭하는 모양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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