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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말과 신뢰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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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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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의 좋은 점 하나는 말을 멈출 수 있다는 것. 우리 일상은 언어가 만든 질서와 규율의 감옥이다. 무술은 말의 감옥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몸의 가능성과 한계를 대면하게 한다. 무술뿐이겠는가. 말을 멈추고 날것 그대로의 자기 육신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언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운동이 몸에 대한 신뢰라면, 인간 사회의 시작점은 말에 대한 신뢰이다. 사람은 ‘말에 대한 신뢰’라는 얄팍하고 변덕스러운 감정으로 살아간다. 말을 신뢰하지 않으면 앎과 경험을 주고받을 수 없다. 우리는 타인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는 편이다. ‘지금 밖에 비가 온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로 지금 비가 내리겠거니 생각한다. 누군가가 하는 말을 믿을지 말지 매 순간 달라지겠지만, 대체로 믿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모든 말을 똑같은 무게로 신뢰하는 건 아니다. 누구 말은 신뢰하지만 누구 말은 결코 믿지 않는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는다. 신뢰하는 사람의 말은 ‘메주에 물을 주면 꽃이 핀다’고 해도 믿는다. 신뢰는 사적인 인연과 감정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사회적 공통 감각, 배경지식, 직업 지위 성별 지역 나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집단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리고 차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법정이나 청문회는 내가 무엇을 근거로 타인의 말을 신뢰하거나 불신하는지를 되묻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국처럼 뜨겁다 못해 ‘들끓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참사나 권력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 일어났을 때 불신과 분열은 더욱 극단적으로 깊어진다. 다들 멀쩡한 얼굴로 자기 말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데, ‘저 거짓말쟁이들!’ 하며 소리 지르면서도 나는 왜 저자들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는지 되묻기도 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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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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