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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유치원서 만나 50년 함께한 부부, 동반안락사로 한날한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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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극심한 허리 통증, 아내 치매 판정에 안락사 선택

세계일보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네덜란드 부부. BBC 보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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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을 다닐 때 처음 만나 50년간 함께한 네덜란드 70대 부부가 동반 안락사로 같은 날 눈 감은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BBC 보도에 따르면, 네덜란드 국적의 얀 피버(70)와 엘스 반리닝겐(71) 부부는 지난달 3일 안락사를 통해 생을 마감했다.

유년기에 만난 두 사람은 친구로 지내다가 20대에 결혼해 아들을 한 명 낳았다. 얀은 네덜란드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하키 선수로 활약했고 스포츠 코치로도 일했다. 엘스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두 사람은 물과 보트, 요트를 사랑했으며 결혼 생활 대부분을 모터홈이나 보트에서 보냈다. 젊은 시절에는 하우스 보트에 살면서 화물선을 구매해 네덜란드 내륙 수로를 따라 상품을 운송하는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부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얀은 오래 지속한 과중한 업무로 인해 심각한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2003년 허리 수술을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그는 진통제를 많이 먹는 것을 원치 않아 결국 복용을 중단, 더 이상 일도 할 수 없게 됐다.

엘스는 2018년 교직에서 은퇴한 후 치매 초기 증상을 보였지만,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버지의 쇠약과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에 의사를 찾지 않았다. 결국 엘스는 2022년 11월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이후 부부는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아들과 함께 동반 안락사를 논의했다고 한다. 얀은 “약을 많이 먹으면 좀비처럼 살아야 했다. 그래서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아내의 병을 생각하면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동반 안락사 계기를 밝혔다.

얀은 또 “저는 제 인생을 살았고, 더 이상 고통은 원하지 않는다”라며 “우리가 살아온 인생은 고통으로 늙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부의 아들은 동반 안락사에 반대했다고 한다. 얀은 “’(아들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더 나은 시대가 올 거다’라고 말해 눈물이 났다”면서도 “나와 엘스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안락사 전날 얀과 엘스는 아들, 손주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들과 어머니는 함께 해변에서 산책했고, 마지막 저녁 식사 자리에 온가족이 함께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부부의 가족과 친구들이 지역 호스피스에 모여 2시간 동안 추억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의사에게 약물을 투여받았고 몇 분 만에 함께 생을 마감했다.

네덜란드는 지난 2002년 4월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요청하고, 의사가 신체적 또는 심리적 고통을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개선 전망이 없을 때 안락사가 가능하다.

다만 얀, 엘스 부부를 두고는 의사들도 안락사 결정을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치매가 합법적인 안락사의 조건인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불분명했기 때문이었다.

2023년 기준으로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로 세상을 떠난 사람은 9068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사망자 수의 약 5%다. 이 가운데 동반 안락사는 33건(66명)이었다.

강나윤 온라인 뉴스 기자 kk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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