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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평생 ‘우정 있는 비판’에 목말라…언론과 거래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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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1년 6월27일 국세청이 조선일보·동아일보·국민일보 3개 언론사 사주를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세청의 고발은 그해 8월, 3개 언론사 사주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전하는 1면 기사에서 ‘언론 민주주의 조종 울려’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정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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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 시민사회에서 주창한 언론개혁은 크게 두 범주로 나뉘었다. 하나는 신문사 소유지분 제한을 통한 족벌의 언론 장악 금지, 다양한 언론 지원을 위한 정기간행물법 개정,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법적·제도적 개혁이었다. 또 하나는 언론의 특권 폐지로, 언론사에 대해서만 면제해준 정기 세무조사 실시가 대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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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언 유착을 뿌리 뽑고 언론의 횡포를 제어하기 위해선 두 방향의 언론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언론 단체들은 주장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 3년 차를 지나면서 언론사의 탈세와 비리 적발을 위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라는 목소리가 시민사회에서 거세졌다.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김대중 정부도 5년마다 하게 되어 있는 정기 세무조사를 하지 않고 그냥 넘겨버릴 거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2000년 12월 초 신광옥 청와대 민정수석은 일부 출입 기자들에게 “언론개혁을 해야 한다는 시민단체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몇몇 언론단체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동아일보는 보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두 번째 길을 택했다. 세무조사를 통해 언론사의 탈세와 비리를 적발했다. 하지만 입법을 통한 제도적 언론개혁과는 선을 그었다. 아시아의 민주주의 지도자로 불리며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디제이는 서구 언론과 지식인들로부터 ‘비판 언론을 탄압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2001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촉구할 때 김 대통령은 이미 입법을 통한 변화보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법에 따른 것이고, 부당한 특권을 제거한다는 명분이 있다고 디제이는 생각했다. 그러나 진보 단체에선 “제도적 개혁으로까지 나가지 못했다”는 비판이 두고두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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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 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국세청 앞에서 언론사 세무조사 실시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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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통령이 직접 언론개혁을 언급하고 뒤이어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들어가자, 여권 내부에선 ‘디제이가 드디어 언론개혁의 칼을 빼 들었다’라며 이참에 언론 개혁입법을 추진하자는 견해가 분출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이런 흐름을 거부했다. 새천년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김성호 전 국회의원의 얘기는 시사적이다.



2001년 초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가 시작된 직후로 김성호 전 의원은 기억했다. 김 전 의원은 청와대에서 열린 주례 당무보고에 참석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어느 고위 당직자가 김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건네고 언론개혁 방안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보고서를 읽은 김 대통령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설명을 중단시키고 자료를 전부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보고서의 제목은 ‘신문사 소유지분 제한 도입방안’이었다. “지상파 방송사의 특정인 소유지분을 제한하듯이 신문사도 40%까지 소유지분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김성호 전 의원은 밝혔다.



그날 김 대통령은 자료 회수를 지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방송사는 전파의 희소성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소유 지분을 제한하거나 허가제를 택하지만, 신문사의 소유 지분을 제한하거나 허가제로 하는 선진국은 없다. 우리나라가 신문사 소유 지분을 제한하면 미국과 유럽에서 어떻게 보겠느냐. 시민단체에선 그런 주장을 펼 수 있지만 집권여당은 정책 추진에 신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고 김 전 의원은 기억했다. 김 대통령이 2002년 12월 노무현 당선자에게 건넨 국정 메모에서 ‘(언론사 세무조사는) 탈세만 취급. 관료의 언론개혁 입법 요청은 거절’이라고 적은 건 바로 이 회의를 가리킨 것이었다. 김성호 전 의원은 “외국 사례와 시선까지 고려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디제이가 철저히 서구 민주주의적 시각에서 (언론사 세무조사) 결정을 내렸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류 언론에 대한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타격은 오히려 언론사 세무조사가 훨씬 셌다. 감시의 무풍지대였던 언론사에선, 특히 개인 또는 가족이 소유하고 경영해온 거대 신문사에선 회계처리 실수뿐 아니라 탈세와 개인 비리 등 수많은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결국 조선일보·동아일보·국민일보 3개 신문사의 사주 구속으로까지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에서 언론정책 핵심에 있었던 박지원 의원은 ‘세무조사가 시작되면 언론사 사주의 구속까지 가리라고 김 대통령이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나는 세무조사가 3개 언론사 사주의 구속까지 갈 줄은 몰랐다. 세금 추징만 좀 많이 당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마 김 대통령도 거기까지 예상하진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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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선 직후인 2002년 12월23일 김대중 대통령이 노무현 당선자를 만나 국정 인수인계를 하면서 전달한 언론 세무조사에 관한 메모. ‘언론사 세무사찰’이란 제목으로 “1. 국민과 언론인의 압도적 지지 2. 모든 언론기관의 탈세처리 예외 없었다 3. 세무사찰 이후 더 한층 비판의 소리 커져 4. 탈세만 취급. 관료의 언론개혁 입법 주장 거절”이란 내용이 적혀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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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적·제도적 개혁 대신에 언론사 세무조사를 택하면서, 디제이가 정말 그 결과를 내다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다만, 세무조사 이후의 정치·사회적 논란과 파장이 그 정도로 거셀지는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을 수 있다. 언론 지형은 진보와 보수로 뚜렷하게 양분됐고, 민주당 정권을 향한 보수 언론의 적대감과 사활을 건 공세가 이때부터 본격화했다. 김 대통령은 나중에 자서전에서 “(세무조사와 사주 구속 이후) 해당 언론사들이 나와 정부를 거칠게 몰아붙였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대통령으로서 회피할 수 없었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 사실 나는 일생 동안 ‘우정 있는 비판’에 목이 말랐다. 그렇다고 언론과 흥정하고 거래할 순 없었다. 언론과 타협하려 했다면 임기 말에 결코 모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 언론이 바로 섰을 때 나의 이러한 고민과 결단을 다시 헤아려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적었다.



김 대통령이 2002년 12월23일 노무현 당선자에게 국정 인수인계를 할 때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급한 이유도 여기 있을 터이다. 세무조사 와중인 2001년 6월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전국언론노조 초청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의 조세권은 정당하게 행사되는 것이고, 언론은 자신의 약점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보도의 자유를 행사하게 될 것입니다. 각기 정도로 가는 것입니다. 과거 권력과 언론이 결탁·유착했던 비정상적 상태가 정상적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놓고 언론 장악이니 떠드는 것은 의도적인 모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대통령이 국내 현안으론 유일하게 언론사 세무조사에 관한 메모를 노 당선자에게 넘긴 배경을 이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다.





**7월10일은 여름휴가로 ‘박찬수의 DJ 국정노트’ 연재를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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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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