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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승진 회식 은행원 4명, 야근길 시청 공무원… 귀가 못한 아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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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 같지 않은… 역주행 참사

2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병원 장례식장엔 전날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모여들었다. 이곳엔 사망자 9명 중 6명이 임시 안치돼 있었다. 자다가 날벼락 같은 참사 소식을 들은 듯 대부분 잠옷이나 반바지 차림이었고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오전 1시 50분쯤 장례식장 앞에 도착한 20대 여성은 “아빠 아니라고 해, 싫어, 아빠 아니라고 하라고!”라며 주저앉았다. 희생자의 아내는 쓰러진 딸을 부축해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구급대원에게 가족의 인적 사항을 말하는 한 남성은 ‘제발 아니었으면’ 하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사망자가 맞다”는 대답에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참변을 당한 희생자 9명은 모두 사고 현장 인근 서울시청이나 시중은행 등에서 일하는 30~50대 남성 직장인이었다. 은행원 이모(52)씨는 세 자녀의 아버지였다. 두 딸은 성인이지만 막내아들은 고등학생이다. 비보를 듣고 강원 춘천에서 왔다는 이씨의 작은아버지 A씨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은행에 떡하니 합격했다고 해서 얼싸안고 좋아했었다”며 “야근이 잦아도 안부 전화를 자주 걸고 고향도 부지런히 찾던 효자였다”고 했다. A씨는 “부모를 일찍 여읜 조카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선일보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 희생자 6명이 안치됐던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병원장례식장 입구에 2일 취재진이 몰려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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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세 이씨의 은행 동료였던 박모(42)씨, 54세 이모씨와 또 다른 52세 이모씨도 함께 변을 당했다. 박씨 빈소에선 상복을 입은 아내가 딸을 말없이 껴안고 있었다. 딸은 아직 평상복 차림이었다. 54세 이씨의 빈소에서 노모(老母)는 “자식이 죽었는데 어미는 약을 먹는다”며 “내가 먼저 가야지, 거기가 어디라고 네가 거길 먼저 가느냐”며 통곡했다. 노모는 손주들을 바라보며 “네 새끼들 어떡하라고”라고도 했다.

해당 은행 측은 “어제 정기 인사가 있었고 희생자 한 명이 승진했다”며 “사고 장소는 먹자골목이 있어 자주 식사하던 곳”이었다. 승진 회식을 한 뒤 잇따른 황망한 소식에 동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은행원 네 명은 식사를 마치고 인도에 잠시 머물렀는데 날아오듯 덮치는 차량을 피하지 못했다.

7남매 중 막내아들이었다는 서울시 공무원 김인병(52)씨는 영정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김씨가 소속된 팀이 서울시에서 ‘이달의 우수팀’ ‘동행 매력 협업상’을 받은 당일 변을 당했다. 김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뺑소니 사고를 당해 눈과 팔에 장애를 입었지만, 9급 공무원으로 입직해 4급까지 승진했다. 김씨의 큰형은 “매일 밤 11~12시가 넘어서 퇴근하더니 어제도 근처에서 밥 먹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려다 사고가 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두 딸의 아빠다.

야근을 하고 김씨와 함께 저녁을 먹고 귀가하려던 서울시 세무 공무원 윤모(30)씨도 희생됐다. 2020년 7급 공무원에 임용된 윤씨는 미혼이었다. 승진 시기를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 20대 후배는 “선배가 밥도 사주고 힘든 업무도 알려주고 많이 챙겨줬다”고 했다.

현대 C&R 소속으로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주차 관리 요원으로 근무하던 박모(38)·김모(30)·양모(30)씨도 사고를 당했다. 이들의 빈소도 시중은행 희생자들과 같은 서울대병원에 차려졌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쓸쓸했다. 김씨 어머니는 “영정도 못 보겠는데 염을 어떻게 하라고…”라고 했다. 양씨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을 쓰다듬다가 쓰러져 작은아들 품에 안겼다. 그는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우리 아들이 왜 죽어야 하나요”라고 했다.

[김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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