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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독려할 땐 언제고···민간 사전청약 ‘취소 사태’에 손 놓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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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민간 사전청약을 진행했던 아파트의 사업 취소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당장 ‘내 집 마련’ 계획이 틀어진 당첨자들은 비상이 걸렸는데, 정부는 달리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민간으로 사전청약을 확대했던 정부의 설익은 정책이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향신문

경기 파주시 GTX 운정역 인근의 신축 공사 현장.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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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건설업계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따르면, 경기도 파주 운정3지구 주상복합 3·4블록 사업시행자 DS네트웍스는 최근 LH에서 토지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계약금 납부 후 6개월 이상 중도금을 연체했기 때문이다. 급등한 공사비에 시공사를 구하지 못했던 DS네트웍스는 결국 계약금(455억원)을 날리고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LH에 연체한 토지비용과 금융이자만 1400억원에 달했다.

이 단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옆 주상복합 1·2·5·6블록 사업시행자인 A사 역시 계약금만 낸 상태로 중도금은 미납 중이다. 계약금보다 연체액이 커지게 되는 내년쯤엔 LH로부터 토지계약 해지통보를 받을 수 있다. 이를 피하려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일으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PF 위기가 진행형인 요즘 금융권에서 신규 사업 자금을 조달하긴 쉽지 않다.

경향신문이 청약홈에서 2021~2022년 사전청약한 민간분양 아파트 45곳(취소 3곳 포함)을 분석한 결과 본청약을 진행한 곳은 16곳 뿐이었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짧게는 2개월, 길게는 16개월씩 지연된 뒤에야 본청약에 나섰다. 아직 예상 본청약 기간이 도래하지 않은 사업장은 8곳, 예상 본청약 기간을 넘긴 채 사업을 연기한 곳도 18곳이나 된다. 사업 취소 위험 사업장이 더 남아있다는 뜻이다.

사전청약을 진행했던 한 민간 건설사 임원은 “내년에 금리가 인하되고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면 그간 밀린 이자를 납부할 정도의 분양 수익은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다”면서도 “애초 입지가 썩 좋지 않은 사업장인데다 원자잿값과 인건비 등 공사비가 너무 올라 사업 취소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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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청약 제도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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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사전청약이 도입된 것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8월이다. 처음에는 3기 신도시에 지어지는 공공분양 아파트에 대해서만 사전청약을 했는데, 당시 정부는 이 정도 물량으로는 청약 수요를 잠재우기 어렵다고 보고 민간분양으로 확대했다. 사전청약을 6개월 내 진행한다는 조건으로 공공택지를 싸게 분양한 것이다.

문제는 민간 분양의 경우 사업 취소나 변경 위험으로부터 당첨자를 보호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현재 사전청약이 취소된 당첨자들이 받게 될 구제조치는 당첨자 명단에서 삭제되고 청약 통장이 부활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미 청약 통장을 해지하거나 소득·신혼부부·다자녀 등 청약 조건이 달라지게 된 이들이 적지 않다.

정부는 지난 5월 공공분양 사전청약 제도를 폐지하며 사업이 6개월 이상 장기 지연될 경우 계약금을 10%에서 5%로 조정해주는 구제책은 내놨지만, 이 역시 민간 사전청약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공공의 경우에는 사업성이 악화되더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지만 민간에까지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애초 사전청약을 민간으로 확대한 정부 조치가 문제였다고 비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전청약은 계약의 효력이 없어 책임 소재가 명확치 않다. 공공이어야 가능한 정책을 민간에까지 확대한 것은 정부가 선을 넘은것”이라고 말했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도 “사전청약은 분양가부터 입주 시기까지 모든것이 미정인데 이를 민간 분양에 확대한 것은 무리수였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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