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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통일부 장관의 ‘북 붕괴 강연’, 극우 유튜버 본능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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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24일 아주대학교에서 김영호 통일부 장관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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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금 밑으로부터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점진적인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추진해 온 정책들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죠.”



“한국 드라마가 북한으로 유입돼 널리 알려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생각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북한 전제독재체제의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오는 부분은 드라마죠. 케이(K)드라마, 케이팝이라는 걸 우리만 좋아합니까? 북한 사람들도 좋아합니다. 북한 문제를 접근할 때 군사-경제적인 방식도 중요하지만 문화적인 접근 방식도 중요합니다.”



지난 6월24일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아주대학교에서 한 ‘북한정권의 실패’ 특강에서 한 말들입니다. ‘북한이 붕괴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의 정책은 틀리지 않았다’는 게 이날 김 장관 강의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아주대 통일동아리 회원 등 학생 10여명과 중장년 층으로 20여명 등 40여명 정도의 청중들이 방문한 가운데, 김 장관은 약 한 시간가량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저도 아주대 강연장에 들어가 강연을 들어봤는데요.



김 장관의 강연은 북한 정권과 사회가 얼마나 실패했는지를 따져보는 데 방점이 찍혀있었는데요. 김 장관은 ‘북한정권의 실패’라는 제목의 챕터를 시작으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90년대 동구권이 붕괴되기 이전에도 그 사회의 부패가 굉장히 구조화되어 있었다”며 북한의 사회를 90년대 초 동유럽과 비교하는가하면, “배급제가 완전히 붕괴됐다. 북한의 사회주의경제 시스템이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며 북한 경제체제의 붕괴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이 통일부로부터 받은 강의 자료에도 그대로 담겨있었습니다.



김 장관은 북한 젊은 층이 한국의 드라마와 노래를 좋아하는 만큼 “문화적 접근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자칫, 통일부 장관이 한국의 드라마나 노래들을 북한에 유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인데요. 탈북민 단체들은 최근에도 대형 풍선에 한국 드라마 영상 등이 저장된 이동식 저장장치(USB) 등을 대형 풍선에 담아 북한으로 날려 보낸 만큼 이를 부추기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여지도 있어 보입니다.



김 장관은 지난해 7월 취임한 후 대학교와 공공기관 등을 수시로 찾아 강연하고 있습니다. 이날 김 장관은 “장관에 취임하고 대학교를 자주 찾았는데 아주대가 10번째”라고 말했습니다. 김 장관은 개인 일정으로 잡은 대학교 강의를 제외하고도 ‘찾아가는 북(北)스토리 토크콘서트’라는 이름의 사업을 만들어 공공기관과 기업, 학교 등을 오가며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올 상반기만 13곳을 방문해 토크콘서트를 했다고 합니다.



한겨레

지난달 24일 아주대 강연에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사용한 강의 자료의 목차.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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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관은 왜 ‘북한 알리기 토크콘서트’에 힘을 쏟는 걸까요.



김 장관은 장관이 되기 전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면서 보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했습니다. 이 채널은 약 24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했었는데요. 김 장관은 유튜브를 통해서도 적대적인 대북관을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북방한계선을 포기한 남북군사합의서를 폐기해야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펜앤드마이크 기고에서는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북한 전체주의체제의 파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김 장관의 이런 행보는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김 장관은 취임 이후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알리는 유튜브 채널인 ‘케이(K)의 공식’을 신설했습니다. 이 채널에는 고영환 국립통일교육원장이 출연하는데, 탈북 외교관 출신인 그는 김 장관이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의 고정 패널이었습니다.



유튜브와 오프라인을 오가며 토크콘서트를 열고 있는 김 장관의 모습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나옵니다.



한반도와 주변 국제 정세가 엄중한 상황에서 남북관계 주무 장관인 통일부 장관이 토크콘서트에 집중하는 게 과연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냐는 것입니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19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어느 한쪽이 침공당할 경우 군사 원조를 하는 내용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와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남쪽의 대북 확성기 방송 대응,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 장관의 이런 행보를 두고 통일부 장관의 본분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장관의 북한 실상 알리기 강연을 보면 김 장관이 통일부 수장인지 극우성향 탈북민단체 수장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라며 “통일부가 극우성향 탈북민 단체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 굉장히 안타까운 심정이며, 국민들께서 의문을 갖는 통일 교육을 자화자찬하며 국민 불안, 안보 불안만 야기하는 김 장관의 우려스러운 행태는 당장 중단돼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앞서 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도 과거 극우 발언 논란, 자료 제출 불성실 등을 문제 삼는 야당의 반대로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바 있습니다.



이런 우려에도 김 장관의 토크콘서트 ‘사랑’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통일부는 올해 북한 실상 알리기 사업을 위해 ‘기획 태스크포스(TF)팀’까지 부내에 신설했습니다. 더불어 올해 통일 인식과 북한 이해 제고 사업에 총 12억2600만원을 책정했는데 이 중 토크콘서트에 3억6000만원이 배정됐습니다. 김 장관은 하반기에 비수도권 지역거점 대학을 중심으로 토크콘서트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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