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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단독]崔·盧이혼소송 맡았던 故 강상욱 판사 ‘순직’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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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누구보다 판사 업무를 소중하게 생각”

조선일보

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지난 1월 갑자기 사망한 고(故) 강상욱 서울고법 판사에 대해 인사혁신처에서 업무 수행 중의 사망을 인정하는 순직(殉職)판정을 내렸다.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24일 강 판사 유족이 신청한 순직유족급여 청구를 승인했다.

강 판사는 1월 11일 저녁 식사 후 대법원 구내 운동장에서 탁구를 하다 저녁 7시 30분쯤 갑자기 쓰러져 심정지 상태가 됐다. 현장 및 이송된 서울성모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결국 숨졌다. 그는 평소 운동을 한 후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야근을 했고, 이날도 서울고법 사무실의 컴퓨터는 켜진 상태였다. 유족은 그의 사망이 업무 수행 중 사망이라며 순직 신청을 했다.

강 판사 유족은 그가 일에 몰두해 온 수만 쪽의 자료를 제출했다. 특히 2011~2016 서산지원에서 근무하면서 다뤘던 기름유출로 인한 어민들의 손해배상 사건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2007년 충남 태안반도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허베이 스트리트호에서 유출된 약 1만톤의 원유가 375km에 이르는 서해안 지역을 덮쳐 피해액만 4조 2000억원에 달했다. 당시 서산지원은 6개 전담 재판부에서 12년에 걸쳐 재판을 했고 강 판사는 5만 5000여건의 사건을 배당받아 피해 어민들을 일일이 만나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한다.

제출된 서류 중에는 그가 사망 전 소속됐던 서울고법 가사 2부 재판장인 김시철 부장판사의 의견서도 있었다. 김 부장판사는 의견서에서 “강 판사님은 그전부터 기록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이를 분석한 다음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며 “지난 2년 동안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탁구 동호회 활동 등을 통해 건강관리를 했으면 좋겠다. 업무에는 전혀 소홀함이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고 밝혔다. 강 판사는 그에 따라 업무를 정리하면서 개인 운동을 병행했고 자신이 주심인 사건의 판결문뿐 아니라 재판장 및 다른 판사의 주심 사건에 대한 검토도 소홀함이 없었다고 한다.

강 판사는 업무에 몰두하다 새벽에 결재를 올리는 일도 잦았다. 김 부장판사는 의견서에서 “2023년 12월 한 달 동안 업무시간 외에 결재 요청을 한 건수가 13건인데 그중 새벽에 결재 요청을 한 건수가 다섯 차례”라고 밝혔다. 그는 “사망 당일에도 강 판사님은 늘 하던 대로 ‘운동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안타까운 비보를 접하고 밤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그 다음날 출근 후 사무실 컴퓨터를 켜 보니 강 판사님이 사고 당일 17:56 한 이혼 사건에 대한 석명준비명령의 결재 요청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업무에 최선을 다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결재를 했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강 판사님은 누구보다 판사의 업무를 소중히 생각하고 자신의 엄격한 기준에 따라 업무를 처리했다”며 “이로 인한 과중한 업무 부담이 결국 불행한 결과를 야기했지만 그 과정에서 강 판사님의 끊임없는 열정과 노력은 저희 법관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속했던 서울고법 가사 2부는 최근 SK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에서 사상 최대 액수인 1조 3808억원의 재산분할 판결을 내려 주목을 받았다. 강 판사는 이 사건의 주심은 아니었지만 사건의 중요도를 감안해 재판부 모두가 사건을 검토했었다고 한다. 강 판사 사망 후 이 재판부는 김시철 부장판사와 이동현 고법 판사, 새로 부임한 김옥곤 고법 판사로 재편됐고 지난달 판결을 선고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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