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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이주노동자 산재사망 속헹씨 유족이 정부 상대 소송 계속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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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산재 예방은 대한민국 정부의 역할”

2022년 9월 첫 손해배상 소송 제기, 다섯 차례 변론

노동부, 이주노동자 확대하면서 산업안전 대책 부족

경향신문

2022년 2월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한 공장 컨테이너에서 불이 나 이곳에 살던 인도 출신의 이주노동자가 숨졌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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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시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다 목숨을 잃은 캄보디아 출신 산업재해 피해자 속헹씨의 유족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하고 있다. 어느덧 소송이 진행된지 1년 반이 넘었다. 개인의 권리 구제만 목표로 했다면 벌써 포기했을지도 모르지만 유족 측은 “한국 행정기관 역할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또다른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서게 됐다”고 했다.

속헹씨의 사망은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됐다. 속헹씨는 2020년 12월20일 한파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난방조차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다 사망했다. 정확한 사인은 간경화 합병증이었다. 일하다 질병을 얻게 됐는데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다 열악한 숙소에서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숨졌다. 그는 2022년 5월 산재로 인한 사망을 인정받았다. 4개월 뒤인 그해 9월 유족은 시민단체 도움을 받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같은 해 12월 첫 변론을 시작으로 총 다섯 차례 변론이 진행됐다. 유족 측은 “대한민국은 불법으로 기숙사를 제공하는 사업장에 산재 피해 이주노동자가 일하도록 알선해 고용허가를 해줬고, 기숙사에 대한 점검 의무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며 “기숙사 관리 소홀은 산재 피해 이주노동자의 주거권, 건강권을 침해한 것으로 대한민국이 배상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 측은 “단순히 고용허가제의 구조적 부실이나 고용허가제 담당 공무원이 운용 차원에서 사업장을 충분히 지휘 감독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로써 구체적 위법성, 불법성, 인과관계의 직접성을 모두 인정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속헹씨 사건에서 표면적으로 불거진 건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이지만, 이면에는 건강·노동권이 있다. 무허가 시설에서 먹고 자고,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업무를 한 건 총체적으로 산재 사각지대에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경기 화성시 화성시청에 마련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분향소 앞에서 지난달 30일 유가족협의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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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헹씨 유족 측이 1년 넘게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사이 이번엔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공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다. 해당 사건은 사업장에서 산재 예방이 제대로 이뤄졌는지와 더불어 불법파견이 만연한 사업장에 대한 고용노동부 감독이 제대로 작동했는지가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고용노동부는 인력난 해소 방안으로 이주노동자를 적극 수용해왔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51일간 파업을 종료한 이후 조선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력(E-9·비전문 취업비자) 신속도입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부터는 중국 동포나 고려인 등 방문 취업 동포(H-2 비자)를 고용할 수 있는 업종도 확대했다. 전체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늘리면서 이주노동자는 2022년 84만3000명에서 지난해 92만3000명으로 늘었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사각지대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는 계속 제기됐다. 무작정 인력만 늘리면서 그에 따른 권리 개선이나 지원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민간위탁 외국인 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은 정부 보조금 71억원이 전액 삭감됐다. 노동부는 파견규제 완화 방침도 고수하고 있다.

유족을 대리하는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속헹씨 사건이나 이번 화재 참사나 결국 국가가 이주노동자 사업장에 대한 정상적인 관리·감독을 했는가가 핵심”이라며 “이주노동자 사건에선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도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영섭 이주노조 활동가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는 보호하지 않은 채 무작정 인원을 확대하면서 희생이 반복되고 있다”며 “다국어로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산업안전 대책 부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그간 부처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16개 언어로 번역해 교육하고, 주거권 개선 등에 대해서도 노력해왔는데 충분한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며 “인력난을 이유로 이주노동자 유입은 늘어났는데 산업안전 대책에 대해선 별도로 다루지 않고 있어 대책 마련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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