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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르포]'업무 명령' 못하니...'꼼수 파업' 레미콘 차주들, 곳곳서 勢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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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무기한 휴업...레미콘 공장 '셧다운' 몰아
사실상 파업...노조 지위 공식 부정에 꼼수
곳곳서 세력 과시...정상적 운반 막아 경찰 출동도
2년 전 화물연대 파업은 '업무개시 명령' 했는데...건설기계법은 근거 없어

머니투데이

레미콘트럭 차주들이 집단적 휴업을 시작한 1일 경기도 안양의 한 레미콘 공장에 트럭 한대들이 정차해 있다. /사진=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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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중천인데 레미콘 트럭들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1일에 찾아간 경기도 모처의 한 레미콘 공장은 줄지은 레미콘 트럭 60여대가 전부 멈춰 있었다. 5000여평 공장 그 어느 곳에서도 운전자들을 찾을 수 없었다. 공교롭게 트럭 운전자 60여명은 불과 일주일 전에 전부 이날 '휴업한다'고 통보했다. 돌아올 날은 특정하지 않았다. 이들이 근로자 신분이 아니라 휴업이라 표현한 것이지, 실질적으론 무기한 파업이었다.

이날 수도권의 일부 레미콘 트럭 차주들은 '운송단가 단체협상'을 요구하며 집단 휴업에 돌입했다. 아무도 근무시간에 출근하지 않았다. 대신 수도권 곳곳에 예정됐던 동시다발적인 집회에 참가했다. 오전 9시에 인천과 경기도 안양, 남양주 등의 시청 앞에 약 2000여 차주들이 빨간 띠를 두르고 운집해 운송단가 협상을 요구했다. 경기도 부천과 김포, 화성, 수원은 800여명이 아예 공장 앞에서 시위를 했다. 무기한 휴업이라 집회도 한달치가 경찰에 미리 신고된 상황이다.

이들은 전부 한국노총 산하 레미콘운송노동조합에 속해 있다. 단체 이름에 노조가 들어가지만, 해당 단체는 최근 고용노동부의 중앙노동위원회가 회원인 차주들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노조 지위를 공식적으로 부정당한 상황이다(관련 기사 : [단독]중앙노동위도 레미콘노조 지위 부정...파업 근거 상실). 이날 파업을 '단체 휴업'이라 바꿔 부르는 이유다. 이들은 2년 치 운송단가 인상률을 한번에 정한 2022년을 제외하고 매년 레미콘 제조사들과 운송단가 단체협상을 했다. 올해는 제조사들이 '노조가 아니므로 단체협상을 요구할 지위가 없다'고 맞서 휴업으로 '단체협상에 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수도권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상견례도 하기 전에 차주들이 단체 휴업에 돌입했다"며 "법에 따르면 레미콘 회사마다 속한 차주들과 개별협상을 해야하는데, 그들 요구에 백번 양보해 권역별 협상을 하자고 했는데도 수도권 단체협상을 하자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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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수도권 레미콘 운송단가/그래픽=윤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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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지위를 부정당했지만 레미콘 운송노조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수도권 레미콘 운송 기사 9645명의 83.7%(8074명)가 여전히 이 단체 소속이다. 이들의 83%는 사전투표에서 이번 휴업에 찬성했다. 노조는 지난달 각 지부에 레미콘 제조사와 운송단가를 개별협상하지 말고 휴업에 협조하라는 공문을 보낸 상황이다.

이들의 협상력은 정부가 레미콘 트럭 증차를 규제하는 탓에 2년 전보다 강한 상황이다. 레미콘 제조사들은 상당수가 영세해 트럭을 직접 보유하지 못하고, 개인사업자 자격의 차주들이 가진 '지입제' 차량에 레미콘 운송을 위탁한다. 전국 레미콘 트럭의 85%가 지입제 차량이다. 국토교통부가 지입제 차량은 수량을 통제해, 지입제 차량들이 단체 행동을 하면 공장들은 셧다운 위기를 맞는다.

어느 한 공장과 계약을 맺지 않고, 여러 공장을 옮겨다니는 '용차'들에 임시로 운반을 위탁할 수 있지만, 지입제 차주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이날도 부천의 한 공장 앞에 용차 석대를 계약해 레미콘을 운반하는 앞길을 차주 400여명이 가로막으려 해 경찰 기동대 250여명(4개 중대)이 길을 터주기도 했다.

1일 경기도 부천의 한 레미콘 공장 앞에 용차들이 레미콘 운반을 위탁받아 운송 나가는 길을 지입제 차주 400여명이 가로막으려 해 경찰이 출동한 일이 있었다./사진=독자 제공.레미콘은 공사 성수기인 여름철에 영업을 못한다고 가을과 겨울에 만회할 수 없다. 추워지면 레미콘 타설 자체를 안하기 때문이다. 이날 방문한 공장은 여름 기준으로 하루에 아파트 약 10채를 지을 레미콘 약 2000루베(㎥)를 일대 공사장 20~30곳에 운반해야 하는데 못 했다. 레미콘 1루베당 가격을 감안하면 약 2억원 손해를 봤다. 공장 임원은 "정말 죽을 지경"이라며 "원하는 걸 힘의 논리로, 매년 상습적으로 요구하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나마 올해 단체행동은 민주노총에 속한 차주들과 일부 한국노총 차주들도 불참하며 참여율이 예상보다는 덜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인천, 부천, 용인, 안산 등에는 가동을 멈춘 공장이 수두룩하다. 레미콘 운반이 막히면 건물 공사 기간도 부득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레미콘 운송단가는 2019년 1회 운송당 4만7000원에서 지난해 6만9700원으로 5년만에 48.3% 올랐다. 그럼에도 차주들은 최근 건설업 침체로 레미콘 운송 횟수가 줄어 생계에 위협을 겪는다며 운송단가 추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제조사들은 유류비도 회사가 지원하는 마당에 운송단가의 현 수준이 낮지 않다고 호소한다. 특히 올해 레미콘 판매가에 주요 원재료인 시멘트와 골재 가격 인상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추가적인 운송단가 인상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년 전 화물연대가 단체 운송거부를 할 때는 정부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상 '업무 개시 명령'을 했다. 하지만 레미콘 트럭은 건설기계관리법에 업무 개시 명령 근거가 없어 정부가 개입하기 어렵다. 레미콘 제조사 관계자는 "22대 국회는 반드시 법을 개선해야 한다"며 "이번 휴업이 길어지면 차주들에 손해배상 청구도 검토할 것"이라 밝혔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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