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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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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주노동자 사망사건 판결 전수분석···중대재해법 50인미만 사업장 확대로 급증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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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1심 판결문 전수분석

전체 임금노동자의 3%인 이주노동자, 중대재해 사건에선 ‘11%’ 기록

경향신문

경기 화성시 서신면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난지 나흘째인 지난 27일 현장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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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근로자인 피해자가 위험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사고를 당하게 됐다. 회사 대표·총괄이사는 전반적인 안전문제를 방치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울산지법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자동차부품 제조회사 대표에게 징역 2년, 총괄이사에게 금고 1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이같이 판시했다. 2022년 7월14일 경남 양산시의 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서 네팔 국적의 노동자 A씨(41)가 부품 기계 내부를 청소하던 중 머리가 끼여 숨진 사건이었다.

30일 경향신문이 중대재해법 시행(2022년1월27일) 이후 첫 선고가 나온 지난해 4월6일부터 올해 6월28일까지 중대재해법이 적용돼 기소된 형사사건 1심 판결문 17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이 중 2건(11.76%)이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으로 확인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임금 노동자(2841만6000명)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92만3000명)는 3.24%에 불과했으나 중대재해 사건에선 이보다 비중이 높았던 셈이다.

지난해 9월16일엔 인천 중구 을왕동의 한 근린신축건설 현장에서 중국 국적의 노동자 B씨(42)가 거푸집(가설구조물) 동바리(지지대) 높이 조정 작업을 하던 중 거푸집이 무너지면서 그 하중을 지지하던 철제 파이프에 머리를 부딪쳐 숨졌다. B씨는 원청회사의 하청업체 소속 정도가 아닌 재하청의 재재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인천지법은 “사업주는 크레인 등 인양장비에 거푸집을 매달지 않은 채 근로자에게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고, 거푸집 조립도를 작성하지도 않고 임의로 작업을 수행하도록 방치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유족과 원만히 합의한 점 등을 고려해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원청회상의 현장소장과 재재하청업체 대표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일자리를 찾아 국내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일에 투입되면서도 회사로부터 산업재해 예방 조치는커녕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목숨을 잃고 있다. 지난 24일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 23명 중 18명도 이주노동자였다. 이들은 대피로 등과 관련한 안전교육도 받지 않은 탓에 화재 발생 시 대피가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통계는 급증할 전망이다. 중대재해법이 올해 초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되면서다. 위험한 안전사고가 빈번한 50인 미만의 중소업체 이주노동자들의 사고가 통계로 잡힐 경우 이른바 ‘위험의 이주화’ 현상은 고스란히 통계수치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3년 이민자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이주노동자 92만3000명 중 78.98%(72만9000명)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중 5인 미만 사업장에선 전체 이주노동자의 21.88%(20만2000명)가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번 화재 사고 현장인 아리셀 공장도 ‘상시근로자’ 48명이 근무하던 곳이라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다. 고용노동부는 아리셀 측 2명, 불법파견 의혹을 받는 인력공급업체 메이셀 측 1명을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산업안전법 위반 1심 판결문도 보니,
한 달 걸러 이주노동자 1명씩 숨져
주로 3040 젊은 노동자 사망자 많아


경향신문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26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리튬전지 아리셀 공장 화재 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위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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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지난 1년간(2023년6월26일~2024년6월26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치상 등 혐의로 기소돼 1심 선고가 나온 161건도 분석했다. 이 중 9건(5.59%)의 사건에서 총 10명의 이주노동자가 일하다 숨졌다. 한 달에 1명꼴로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셈이다.

이들의 국적을 보면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태국, 필리핀), 중앙아시아(튀르키예, 몽골, 우즈베키스탄), 동아시아(중국), 남아시아(네팔) 등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는 30대가 4명으로 가장 많았고, 40대 3명, 50대 2명, 20대 1명 등이었다. 노동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3년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에서 60대 이상이 38.96%(233명), 50대 18.06%(108명) 등인 것과 비교하면 이주노동자 사망은 주로 젊은층에 분포돼 있었다.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건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제조업에서 4명이 기계 등에 끼여 숨졌고, 건설업에서 2명이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대부분 원청회사의 대표이사는 징역형의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양형기준도 징역 1년의 집행유예 2년이 최고형이다.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있는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는 “재판이 진행 중이고 신고를 하지 못한 사례까지 확대하면 이주노동자들의 사망 재해율은 더 높을 것”이라며 “위험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이주노동자들을 몰아넣는 ‘위험의 외주화, 고통의 이주화’는 계속되는데 처벌은 너무 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값도 싸게 취급하면서 목숨값도 더 쪼개려는 것 아니겠냐”며 “정부가 인력난 등을 이유로 이주노동자를 적극 수용하겠다면 이들의 노동 가치도 제대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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