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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문해력 키워야 한다는데···어휘력 향상이 문해력의 전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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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해력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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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상에서 쓰이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모르는 학생들을 조명하는 일이 잦아졌다. 코로나19 이후 기초학력 부진 문제와 함께 문해력 저하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며 교육현장에 ‘문해력 열풍’이 불고 있다. 학교 안에서 국어 교육과 독서를 강화하고, 문해력과 관련한 사교육 시장도 성장세다. 전문가들은 문해력 교육을 어휘력 확대·독해력 향상으로만 국한해서는 맥락을 이해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30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교육부는 문해력 강화를 위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초등학교 1·2학년 국어 시수를 34시간 늘렸다. 고등학교엔 ‘주제 탐구 독서’와 ‘독서 토론과 글쓰기’ 과목을 신설했다.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고등학교까지 ‘한 학기에 한 권 깊이 읽기’ 수업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한진희씨는 “학년별로 권장도서가 있고 학교에서 상을 수여하니까 아이들이 책을 읽긴 하는것 같다”면서도 “쉬운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하지, 학년에 맞는 책을 깊이 있게 읽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어린이 논술학원을 보내는 등 사교육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학부모들도 있다.

최근 불거진 문해력 저하는 초등학교 저학년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고등학교 교사들도 수업 시간에 수입·수출처럼 기본 교과지식 어휘를 모르는 학생들을 마주하고 당황스러워하기 일쑤다. “어휘 뜻을 물어보는 학생들이 많아 수업 진도 나가기가 힘들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술형 쓰기를 어려워하는 대학생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문해력이 떨어진 원인으로 크게 세 가지 요인을 꼽는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오래 진행된 점, 영유아 시기부터 디지털 기기로 영상을 접하는 점, 이주배경 학생들이 늘어난 점 등이다. 활자를 익히는 데 중점을 둔 언어 교육 체계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아이가 문장의 뜻을 이해했는지보다 단어를 제대로 발음해서 읽는지, 맞춤법을 틀리지 않고 적는지에만 초점을 맞춰 가르친다”며 “읽기·받아쓰기 교육을 떼면 (중간 과정 없이) 독서 토론으로 바로 들어가버리지 않나”라고 말했다.

교사들과 학계는 국어 교과 중심, 어휘력 중심으로 문해력 교육담론이 흘러가는 것을 경계한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쓰며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의미를 좀더 확장하면 비판적으로 읽고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 전반이다. 챗GPT, 알고리즘 등 AI(인공지능) 시대에 맞춰 텍스트를 그대로 이해하는 능력보다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최인영 전국국어교사모임 연구정책위원장은 “국어 수업뿐 아니라 다른 수업에서도 많이 읽고 쓰고 말하고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문해력이 발달하는 것이지 문해력만 딱 떼어내서 가르칠 순 없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교육대학 교수는 “문해력에서 어휘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지나치게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한다’는 결핍 모델로만 접근하는 것 같다”며 “문해력을 독해력 중심으로 보는 것도 잘못됐다. 쉽게 쓰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안연규 경북 구미 선산고등학교 교사는 지난해 ‘교실 속 MZ(Media Literacy Zero) 세대를 위한 문해력 스타트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안 교사는 학생들이 스마트폰에 의존하지만 정보를 여과 없이 수용한다는 점에서 ‘미디어 문해력이 제로’라고 했다. 그는 교과서 어휘 사전 만들기부터 시작해 문학 작품 질문하며 읽기, 교과서 지문 외에 본인 진로나 관심사와 관련된 글 읽기, 뉴스 비판적 읽기 등까지 단계적으로 가르쳤다.

안 교사는 2023년도 수업혁신사례연구대회 보고서에서 “문해력은 국어과뿐 아니라 모든 교과의 학습을 위해 필요한 능력”이라며 “타 교과와의 연계, 융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한다면 그 효과가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문해력 어휘 테스트’ 문제집 등 사교육 시장이 문해력을 문제풀이로 변질시키는 현상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문해력의 본질을 벗어나 입시에 필요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문해력은 입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면서 필요한 것인데 (문해력 교육이) 입시 위주로 흐르게 되면 아이들 입장에선 글 읽는 게 더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병영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지난 26일 서울시교육청 문해력·수리력 진단검사 설명회에서 “정답을 찾아내는 정도의 기능적 문해력으로는 살아가기 어렵다”며 “다양한 각도로 질문할 수 있는 문해력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섭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은 “소득 수준이 있으면 사교육으로 커버하니 문해력도, 기초학습 역량도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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