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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문제 푸는 기술자' 길러내는 수능의 타락...의사와 소설가가 파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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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
한국일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가 배경인 드라마 '졸업'.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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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은 '불수능'을 넘어 '용암수능'으로 불렸다. 헤겔의 변증법 관련 문제를 비롯한 킬러문항(초고난도 문제)들이 출제됐기 때문이다. 예상을 깨고 헤겔 문항의 정답률은 46%나 됐다. 수험생들이 지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정답을 골라낼 수 있는 문제 풀기 '기술'을 갈고닦은 덕분이었다.

책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이 '수능과 입시판 왜곡'을 소개한 수능의 한 단면이다. 저자는 의사인 문호진과 소설가 단요. 사교육 시장에 발 담근 적 있는 두 저자는 1994년 도입된 수능이 얼마나 기괴하게 변질됐는가를 학생, 교사, 사교육 종사자 등의 증언을 통해 보여준다. '수능 해킹'은 수능 출제 패턴 파악에 몰두해 온 사교육의 실체를 빗댄 말이다.

문제 풀이를 위한 특별한 기술이 통하게 된 수능의 타락은 한국 사회 곳곳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 난이도 시비를 피하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보신주의로 문제 유형은 정형화됐고, 사교육 시장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문제 풀이 기술을 진화시켰다. 지역·경제적 학습 격차를 줄여주리라 기대됐던 인터넷 강의는 지역 학원가를 고사시켰다. 지방이 수능의 블랙홀이 된 것은 국가 경쟁력을 끌어내리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을 부채질했다.

수능 출제위원이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 입시 학원에 팔아온 사실이 지난해 적발된 이후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깨야 한다'는 것이 수능 개혁의 해법으로 거론됐다. 저자들은 수능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타락했는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단편적 접근이라고 일갈했다.

책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원론적이지만 '공교육의 부활'이다. 사교육이 공교육의 빈틈을 성장동력으로 삼아 괴물처럼 커진 만큼 그 틈부터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교육을 악마화하고 스타 강사를 비판하는 건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한국일보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문호진·단요 지음·창비 발행·504쪽·2만3,000원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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