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자말 보먼(뉴욕) 연방 하원의원./로이터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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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쿼드(The squad)’가 첫 선거 패배를 경험했다. 엄청난 일이다.”
26일 미국 진보언론 MSNBC는 전날 열린 민주당 뉴욕주 16선거구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서 현역 의원인 자말 보먼 의원이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행정관인 조지 라티머에게 패배했다며 이 같이 전했다. 라티머는 득표율 58.4%를 얻어 41.6%를 받은 보먼을 상대로 승리했다(개표율 88% 기준). 이번 선거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싸움도 아니고 오는 11월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나설 민주당 후보를 결정하는 집안 싸움이었다. 그런데 미(美) 좌파 정치의 상징 격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이번 선거는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 주목할 정도로 세간의관심이 쏠렸다.
◇민주당 내 급진 세력 ‘스쿼드’의 핵심
보먼은 민주당 내 급진 세력인 ‘스쿼드’의 핵심 일원이다. 스쿼드는 2018년 중간선거에서 중도 우파 현역의원들을 이기고 연방하원에 당선된 히스패닉계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뉴욕), 팔레스타인계 라시다 틀라입(미시간), 흑인 여성 아이야나 프레슬리(매사추세츠), 소말리아계 일한 오마르(미네소타) 등 4명을 의미한다. 이들은 스스로 ‘민주 사회주의자 (Democratic socialist)’로 칭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가 ‘사회주의의 기회비용’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사회주의가 미국의 정치적 담론으로 다시 돌아오고(comeback) 있다’고 지적할 정도로 급진 성향의 이들이 당선된 것은 미 정계에 충격을 줬다. 이들의 뒤를 이은 사람이 보먼이다. 보먼은 2020년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의 측근인 엘리엇 엥겔을 당내 경선에서 누르고 결국 하원의원이 됐다. 당시 보먼을 지지한 의원이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다. 보먼은 당선 즉시 스쿼드에 합류했고, 주류 정치 세력에서는 더 이상 스쿼드를 일시적 현상이 아닌 하나의 정치 흐름으로 바라보게 됐다.
◇끊임 없는 돌발행동과 거친 언행
보먼 등 스쿼드가 미 의회에 진출하면서 ‘약방의 감초’처럼 활약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잠시 있었지만 이들은 민주당 내 온건파들에게조차 외면을 받을 정도로 급진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예컨대 보먼은 지난해 10월 연방정부 ‘셧다운’을 피하기 위해 미국 의회가 임시예산안을 표결하는 상황에서 화재경보기를 울려 모두를 대피하게 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실수”라고 했지만 “투표를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짙다”는 비판을 받았고 후에 경범죄 혐의로 유죄가 인정됐다. 이로 인해 그는 1000달러의 벌금을 내고 3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보먼의 비판자들은 의회에서의 그의 행동이 스스로 의석을 잃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그는 종종 연설에서 욕설이 섞인 말을 쓰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동료 의원들조차 “의원으로 품위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23일 뉴욕 브롱크스에서 열린 유세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가운데)이 자말 보먼 의원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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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親)이스라엘, 거금 쏟아부으며 보먼에 집중포화
현지에서는 보먼이 경선에서 패배한 주요 이유로 지난해 10월 7일 무장세력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그가 보인 이스라엘에 대한 언행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줄곧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원조에 반대하고,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에 대해 “대량학살”이라며 비판했다. 또 이스라엘 전쟁에서 “성폭행은 없었다”고 발언을 했다가 나중에 하마스의 만행이 사실로 밝혀진 뒤 이에 대해 사과를 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이스라엘 전쟁에 대한 보먼의 대응은 미국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사는 그의 지역구에서 비판과 우려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보먼의 지역구는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남부와 브롱크스의 일부를 포함하며 인종적, 경제적으로 다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유대인 등 친(親)이스라엘 진영에서 대대적인 보먼 낙선운동에 나섰다. NYT에 따르면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관련 슈퍼팩(Super PAC·정치자금 모금 단체) 등은 보먼의 낙선을 위해 1600만 달러(약 222억원) 이상을 지출했다. NYT는 “하원 선거에 투입된 외부 단체 자금 중 가장 많은 금액”이라고 했다. CNN은 “라티머를 위한 지출은 보먼을 위한 지출보다 7배 이상 많았다”고 했다.
◇민주당 급진 세력, 쇠퇴 신호인가
이번 선거 결과는 보먼 개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선택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그린 뉴딜’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 등 스쿼드 멤버들이 추진했던 정책이 더 이상 ‘높은 인플레이션’ ‘뉴욕의 이민자 위기’ ‘기록적인 범죄율’ 등 현실적 이슈보다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보먼 등 좌파 진영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를 ‘사회를 바꾸려는 진보 세력’과 ‘자본력을 소유한 기득권’ 사이의 대결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 22일 유세 현장에서 버니 샌더스가 “이번 선거는 억만장자 계급과 과두 정치인이 미국 정부를 통제할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선거”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먼은 선거에 패배한 뒤 연설에서 “이번 선거는 결코 나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선거구의 문제도 아니다”라면서 “우리의 상대가 이번 라운드에서 승리했을 수도 있지만 남은 생애 동안 우리의 인간성과 정의를 위해 싸우겠다”고 했다. NYT는 “보먼이 올해 ‘스쿼드’에서 의석을 잃게 되는 마지막 의원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오는 8월 미주리주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스쿼드의 일원인 코리 부시가 ‘제2의 보먼’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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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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