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1000만 시대, 일본을 배우다]⑦
한국 노인들 여가시간엔 주로 TV 시청
부동산 깔고앉은 韓…하우스푸어 은퇴자 느나
버블경제 붕괴 경험한 日 노인, 실물→금융 자산이동
다양한 여가활동 즐기는 '액티브 시니어' 태동
TV보는 노인(자료사진) |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김준성씨(72)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TV와 함께한다. 김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TV를 틀어 뉴스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저녁에는 스포츠 경기나 드라마 등을 보다가 잠이 든다. 낮에 잠깐 산책하러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TV와 보낸다. 김씨는 "10여년 전에 직장에서 퇴직한 뒤 탁구나 배구 같은 여러 가지 취미생활에 도전해 봤지만 나이가 들수록 집에서 쉬면서 TV를 보는 게 가장 편해졌다"고 말했다.
한국 노인 96.6%는 TV 시청이 여가생활의 중심
보건복지부가 2020년 전국 65세 이상 노인 1만9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노인의 96.6%가 TV와 라디오를 여가생활의 중심에 놓고 있었다. 노인들의 1일 평균 TV 시청 시간은 4.2시간으로 하루 5시간 이상 TV를 시청하는 이들도 39%나 됐다. 노인들이 희망하는 여가활동도 TV시청이 38.3%로 가장 많았으며 산책이 31.9%, 관광활동 12.7% 등의 순이었다.
한국의 노인들이 여가문화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재정상황과도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노인들 중에 수입을 목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비중은 36.9%에 달했다. 일하고 있는 노인들 중에서 73.9%는 생계비 마련이 목적이었다. 그만큼 경제상황이 어려운 노인들이 많다는 뜻이다.
2020년 기준 한국 노인의 연간 개인소득은 평균 1557만6000원인데 이 중에서 공적이전소득이 27.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공적이전소득은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 등을 의미하는데 대부분 주거와 식사 등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2022년 기준 한국 노인의 빈곤율은 38.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일본의 노인들은 어떨까. OECD에 따르면 일본의 노인빈곤율은 2022년 기준 20.2%로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일본 내각부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의 70%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노후연금 상황이 훨씬 나은 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노인들의 공적연금 월평균 수급액은 개인 가구 67만원, 부부가구 119만원으로 조사됐다. 반면 일본은 공적연금 월평균 수급액이 개인 135만원, 부부 227만원으로 한국의 약 2배 수준이었다.
한국은 사적연금 시스템 역시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한국의 사적연금 월평균 수급액은 개인가구 16만원, 부부가구 20만원으로 개인이 29만원, 부부가 46만원을 수령하는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일본은 고령화가 심화됐던 2000년대 초반 연금개혁을 통해 더 내고 더 받는 공적연금 체계를 구축한 덕에 은퇴한 노인들이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
덕분에 일본의 노인들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취미생활도 다양하다. 일본 노인들은 TV시청 뿐 아니라 여행과 스포츠활동, 봉사활동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긴다. 안정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소비에 나서는 노인들도 많다.
부동산 깔고 앉은 한국 노인, 지갑 못 열 수밖에
우리나라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소비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그간 벌어놓은 돈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것도 한몫한다. 은퇴 후 들어오는 소득은 줄었는데, 그나마 갖고 있는 자산이 현금화가 어려운 부동산에 편중돼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요국을 비교한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2022년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주요국의 가계자산 중 비금융자산 비중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64.4%, 일본은 37%로 한국은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 비중이 높은 편이었다. 금융자산 비중은 주요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은 더 심하다.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가 보유한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82.4%에 달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전반적으로 꺾였다. 가계자산이 실물에서 금융 중심으로 꾸준히 이동했던 이유다. 당시 트라우마 때문에 일본 고령층 사이에서는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을 기피하는 성향이 강했고, 그 결과 금융자산의 예·적금 비율이 60%에 달하던 시기도 있었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는 "노인이 가진 금융자산을 어떻게 다른 세대로 이전하거나 주식·채권시장으로 흘릴 수 있을지 정부 차원에서 고민을 많이 했고, 그 결과 최근 신NISA(소액투자 비과세제도) 정책 수립 등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일본 고령층은 유동성이 높은 예·적금을 들었고, 연금 제도도 오래된 데다 배우자에게 주는 '주부 연금'까지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연금 제도 자체를 시행한 지 얼마 안 돼 노인들이 받을 수 있는 연금이 많지 않을뿐더러 은퇴자가 늘어날수록, 현금 흐름은 없는데 부동산만 깔고 앉아 있는 '하우스푸어'가 더 많아질 공산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고령층은 부동산 불패의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집을 판다는 것 자체에 대해 '곧 상승장이 올 텐데 너무 빨리 파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상당히 큰 데다, 자식에게 물려주기에는 상속세 문제도 있어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보다 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에서는 액티브 시니어 대거 등장
일본에서는 은퇴 후 안정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활발한 소비활동을 하는 노인들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한다. 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인 단카이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한 2007년을 전후로 액티브 시니어라는 말이 유행했다. 앞선 세대보다 경제력을 갖춘 단카이세대가 은퇴하고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소비구조도 많이 바뀌었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일본에서 60세 이상 시니어 가구의 소비지출 규모는 전세대 소비의 절반 정도에 이를 정도로 일본 경제에 큰 영향력을 가진다. 또한 60세 이상 시니어 가구의 저축 비중은 전체의 3분의 2에 달할 정도로 재산 규모도 크다.
파크골프를 즐기는 노인들(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나미선 대신증권 책임연구원은 "액티브 시니어를 대표하는 단카이세대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사회가 격동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새로운 문물이나 서비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징을 가진다"며 "일본에서는 2007년부터 단카이세대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들이 받게 될 퇴직일시금에 주목했고 이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일본과 한국의 시니어 세대를 연구해온 사사키 노리코 전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도 "일본은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본격적으로 액티브 시니어 산업이 발전했다"며 "한국도 2020년 이후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관련 산업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