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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19살에 제지공장서 눈 감은 노동자, '살빼기, 악기 공부, 여행'이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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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전북의 한 제지공장에서 설비 점검 중 숨진 채 발견된 19세 노동자가 외국어와 경제 공부를 인생 계획으로 삼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여행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라고 쓴 메모장이 공개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최근 유족 측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A씨의 메모장에는 회사 생활과 자기 계발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A씨는 자신의 인생 계획으로 '다른 언어 공부하기', '살 빼기',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편집 기술 및 카메라 배우기', '악기 공부하기', '경제 공부하기' 등을 세웠다. 그는 '다른 언어 공부'에 있어서는 일본어와 영어 공부책과 인강(인터넷 강의)를 찾아볼 것을,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항목에는 '여행하면서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라고 각각 적어 놨다. 이어진 '편집 기술 배우기' 계획 역시 여행 후 사진이나 영상 편집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또 '경제-통장 분리하기'라는 메모에서 월급과 생활비 등 돈을 쓰는 통장과 적금처럼 돈을 모으는 통장을 각각 다른 은행의 다른 계좌로 만들어 관리했다. 해당 메모에는 지난 4월 20일 기준 자산과 월급을 바탕으로 다음 달인 5월부터 향후 1년간의 수입 예상치가 적혀 있었다.

A씨는 2024년 목표로 '남에 대해 함부로 하지 않기' '하기 전에 겁먹지 말기' '기록하는 습관 들이기' '운동하기' '예체능 계열 손대보기'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1년 시간표 역시 '오전 근무일 경우'와 '심야 근무일 경우'로 나눠 시간대별로 일과 공부, 운동을 병행하는 계획을 짰다.

A씨의 또다른 메모로는 '조심히 예의(있게), 안전(하게) 일하겠음', '성장을 위해 물어보겠음', '파트에서 에이스 되겠음', '잘 부탁드립니다. 건배' 등이 있었다.

A씨의 메모를 접한 누리꾼들은 "꿈 많은 청년 한 명이 이렇게 또…"라며 애도를 표하는가 하면 "단 1분1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했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런가 하면 "누가 이 나 어린 노동자를 이렇게 치열하게 살도록 내몰았는가"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프레시안

▲ A씨의 메모장(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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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16일 오전 9시22분쯤 전주시 팔복동의 한 제지공장 3층 설비실에서 멈춘 지 엿새 정도된 기계를 점검하다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뒤 발견되기까지 최소 1시간 정도 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특성화고 현장 실급을 거쳐 정직원으로 채용됐으며, 사망 당시 입사 6개월여였다.

A씨의 유족은 지난 20일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과 함께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사 6개월 만에 만 19세 사회초년생 청년이 업무수행 중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지만 사측은 개인의 문제로만 간주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사측은 억울한 청년 노동자 죽음에 대해 진상규명하라"고 촉구했다.

다만 제지공장 측은 A씨가 사고 전 열흘 동안 하루 8시간만 근무했고 사고 후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했지만 검출되지 않았다며 과로사 및 사망 위험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A씨가 홀로 작업한 데 대해서는 2인1조가 필수인 업무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현재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조사 중이다. 사건을 조사 중인 전주덕진경찰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A씨의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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