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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홍제 말했는데 홍대서 내려줘"…택시기사 절반이 6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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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울 중구 서울역 앞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들이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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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김성열(41)씨는 최근 회사 동료와 외근을 나가면서 택시를 탔다가 멀미를 심하게 했다. 서울 강남 신논현역 인근 사무실에서 경기도 판교까지 이동하는 약 30분 동안 택시 기사가 브레이크 페달을 수십 번씩 밟으며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마저 든 김씨는 항의하려 했지만 백발의 기사와 다투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씨는 “이후 택시 호출 앱(애플리케이션)을 쓸 땐 배정된 기사님 사진을 보고 나이가 너무 많아 보이면 취소하고 다시 호출한다”고 털어놨다.

고령의 택시 기사가 급증하고 있다. 23일 한국교통안전공단·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택시기사 23만 5976명 중 만 65세 이상의 비율은 45%(10만 7371명)에 달했다. 지난 2019년(8만 2978명)과 비교하면 29% 넘게 증가했다. 최고령은 개인택시 92세, 법인택시 87세로 조사됐다. 백발 택시기사가 크게 늘어난 건, 2021년부터 무사고 5년 경력에 택시 양수교육만 받으면 돼 은퇴한 시니어들 진입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퇴직금으로 개인택시 면허를 사서 현금 소득을 올리다가 면허증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도 노후 대책의 한 종류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개인택시 면허 가격은 9000만원대에 형성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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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문제는 불안을 호소하는 승객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운전자는 지난해 기준 운전면허소지자 비율(12%)에 비해 사고를 낼 확률(20%)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교통공단의 ‘2022년 연령층별 교통사고’ 현황에서도 65세 이상 사고(3만4652건)는 50대(4만4581건) 다음으로 많았다. 사망사고(735건) 는 고령운전자가 유발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 1월에는 70대 택시 기사가 승객을 태우고 운전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일부 젊은 승객들은 불안·불편함을 이유로 고령 택시기사를 거부하기도 한다. 주부 김모(34)씨는 “차량 네비게이션 조작이 익숙지 않은 기사가 목적지를 입력하는 데 한참 걸린 적이 있다”며 “뒤차가 경적을 울리니 마음이 조급해져 다신 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무원 이모(42)씨도 “보청기를 낀 기사님께 ‘(서울) 홍제로 가달라’고 했는데 ‘홍대’에 잘못 내려줘 황당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42)씨는 “안전 문제 때문에 고령의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고령 운전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연령이 높다고 무조건 안전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라는 이유다. 40년째 택시를 모는 방모(70)씨는 “주말마다 등산하면서 체력관리도 하고 무리해서 운행하지도 않는다”며 “요즘 같은 백세 시대 70세의 인지·신체 능력은 과거 50~60대 수준 같은데 택시 운행을 하지 말라는 건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이모(67)씨도 “젊은 기사 중 제한된 근무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승객을 받으려다가 사고를 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며 “나이 들었다고 밥줄 끊는 건 잔인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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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인력난을 겪는 택시업계에서는 고령운전자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말 기준 택시기사 수는 3만 527명이었지만, 지난 3월엔 2만 77명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법인택시 가동률은 30%대에 불과했다. 이양덕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무는 “고령 운전자들 마저 없으면 택시 업계 인력난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고령 운전자에겐 파트타임 운행을 허가하는 등의 대안마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화물차·버스 등 다른 사업용 차량업계의 고령운전자 의존도 역시 커지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65세 이상 화물 운수종사자(용달·일반·개별)는 2019년 3만 4630명에서 지난해 5만 7215명으로 5년 만에 65% 증가했다. 학원 등 어린이 통학 버스의 경우 화물운수자격증과 차량만 있으면 운수회사 소속으로 학원과 계약을 맺는 지입차 형태로 일할 수 있어 접근이 쉽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화물차의 경우 휴식·임금 등 보상이 충분하지 않아 젊은 층에선 기피업종으로 분류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자격유지검사 기준을 높이는 등 영업용 차량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정부는 택시 기사 등 여객자동차운수사업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운전적성 정밀검사를 한다. 65세 이상은 3년, 70세 이상부터는 1년마다 시각·청각·공간판단력 등을 검사한다. 하지만 2019년부터 의료기관 적성검사로도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변별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연령대별로 실질적인 운전 능력 평가할 방안과 함께 영업용 차량의 안전장치 필수화 등 안전 시스템 고도화도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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