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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채텀하우스 좌담]인구 소멸 위기 韓…양질의 노동력 수혈할 이민 정책 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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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가능인구 2050년 최대 1250만명 부족

인재풀 부족으로 국제 무대 경쟁력 상실 우려

좋은 이민자 유입 위한 인프라 구축 준비해야

부 단위 전담 기관 출범으로 이민 정책 일원화

편집자주저출산 위기가 대한민국의 ‘장밋빛 미래’마저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한반도미래연구원은 앞으로 20년 후면 국내 생산가능인구가 최대 1250만명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인구 순위가 29위에 불과한 한국이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반도체, IT 등 특정 고부가가치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이에 특화된 인재를 키워낸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훗날에는 인재의 절대적 풀이 부족해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는 경고음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절대적인 인구가 창출하는 규모의 경제를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에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일손 부족분을 채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시민사회에서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이민 정책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고 이민 목적, 방법 등을 두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도 못했다. 이민이라는 거대 담론을 관장할 이민관리청의 입법은 여야 이해관계에 따라 차일피일 미뤄지는 모양새다. 아시아경제는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국가 과제인 저출산 문제의 대응책으로 이민의 필요성을 전문가들과 공유하고 방안을 논의하는 ‘채텀하우스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는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본부 본부장,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 정기선 법무부 이민정책이민정책위원회 위원 등 3명이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민이 통합 비용을 발생시키는 만큼 반드시 국익에 부합해야 하고 선별체계를 정교화해 좋은 인재를 수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담회는 참석자 명단을 공개하되 각 토론자의 발언은 익명 처리하는 채텀하우스 룰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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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텀하우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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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나라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위기 대응을 위해 이민은 필요한가.
A: 한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은 앞으로 인력 부족이 가시화된 만큼 필요할 것이다. 인구 감소가 현실화하며 생산가능인구가 점차 줄어드는 탓이다. 다만 이민 개념을 외국인이 단기로 근로한 뒤 출국하는 것과 영주권을 취득하고 지역사회에 완전히 정착하는 것 두 가지로 구분 지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논의되는 대부분은 인구 감소 측면에서 인력을 적재적소에 단기 공급한다는 전자에 가깝다. 향후에는 외국 인력이 숙련 기능직이 되고 우리나라에서 충분한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으며 문화 및 가치 통합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확실해졌을 때 영주권을 준다는 개념으로 확장돼야 한다. 이 같은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잘 전달될 필요가 있다.

B: 동의한다. 영주권 개념으로서 이민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국민 평균소득에 근접한 일자리가 제공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또 당장 ‘인구 소멸’ 지역에 있는 저임금 일자리에 이민자들을 보내봐야 그들도 서울 등 수도권 이동을 희망하는 반작용이 생길 것이다.

C: 아직 정주 여건으로서의 이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아직 유휴 인력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그런 이민 정책을 도입하면 생산가능인구 감소 위기가 본격화하는 시점에 이민자들도 함께 고령화돼 실효성을 잃게 될 것이다.

B: 그런데도 우리나라가 이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생산가능인구가 만드는 규모의 경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IT 등 일부 고부가가치 산업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키워 왔다. 문제는 생산가능인구가 2050년까지 적게는 760만명, 많게는 1250만명 부족해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현실화한다면 한국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업종의 수가 크게 줄어든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완전히 잃게 될까 봐 심히 우려된다. 따라서 이민 대상을 정하고, 선별체계를 정교화하며 국민들에게 신뢰를 준 뒤 이민을 속히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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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하고 선별체계는 어떻게 정하나.
C: 이민 정책은 철저히 선별적일 필요가 있다. 소득 수준, 언어 능력 등을 판단 지표로 삼는 것이 고려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이민 체계를 미뤄 짐작하건대 국내 노동 시장에서 필요로 사람들이 들어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지금은 좋은 이민자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때다.

B: 이민 정책에서 가장 우선시돼야 할 것은 경제적 관점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외국 인력을 받아들였을 때 그 한 사람의 사회 및 문화 등 모든 휴먼 빙(human being, 총칭적 인간)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통합 비용이 필수적으로 발생한다는 말이다. 산업 부문별로 세세한 기준점을 마련해 이 같은 비용을 줄일 필요가 있다.

C: 우리나라는 화이트칼라 시장보다 블루칼라 시장에서 필요 인력이 부족한 게 특징이다. 국내 기술력은 제조업·건설업 등의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지만, 문제는 생산 현장이 너무 고령화된 동시에 신규 노동력 공급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5년 내지 10년 내 숙련 기능직 시장에 대한 노동력 공급이 이뤄져야 산업 침체를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 외국인 비자 정책은 이 시장을 커버하지 못한다. 이 분야에 한정해 작업반장 또는 기능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외국 인력들은 정주 자격을 주고 나아가 영주권까지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A: 어떤 직종에 어느 기술 수준 인력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외국 인력을 잘 훈련하는 프로그램도 정책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인력 수급을 전망하는 데 있어 산업과 기술 변화 등의 요소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이민 체계가 얼마나 짜임새 있는지에 따라 정책 효과가 판이하게 차이가 날 것이다.

C: 인력이 필요한 분야를 정해두고 외국인이 들어오게 했을 때 장점은 여럿이다. 첫째, 한국 사회에 외국인이 들어오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홍보 효과가 있다. 둘째, 잠재적 외국 인력이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필요한 자격 요건을 스스로 준비하도록 하는 효과도 따라오게 된다.
Q: 이민의 적정한 규모는 어떻게 될까.
C: 먼저 인력 수급 전망이 필요하다. 이민자가 일자리를 못 구했을 경우 그에 따른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무조건 수요에 부합한 이민자가 들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산업 및 기술 변화가 급변하게 돌아가는 만큼 5년 내지 10년 단위의 분절적인 수급 추계가 필요하다.

A: 이민은 절대적 관점에서 국내 인구 부족분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것이 아니다. 젊은 외국 인력이 들어와 노동하고 나이가 들면 본국으로 떠나는 것을 기본 모델로 적정 규모를 추산해야 한다. 이는 F-4(재외동포) 비자를 통해 얻은 시사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외국인 중 대부분은 F-4 비자를 통해 입국한 중국 동포가 차지한다. F-4 비자의 핵심은 반복 갱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들도 한국과 함께 고령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이민 도입 목적인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C: 그렇다. 우리나라의 정주형 이민 정책의 바로미터가 1999년 재외동포법 제정을 계기로 급물살을 탄 동포 정책이다. 두 가지 면에서 실패한 정책이라고 본다. 먼저 비전문 인력 중심의 동포 인력을 생산 현장 노동력으로 공급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인적 자원에 투자한 것이 아닌 ‘그림자 노동’에 강요되다 보니 이들이 고령화된 지금 상당수는 취약 계층이 됐다. 또 건설업의 경우 지나치게 동포 인력에만 의존해온 탓에 만성적인 인력난이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가 최근에는 가사, 간병 등 돌봄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
Q: K-팝 등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유학생들을 유인하는 건 어떤가.
B: 노동 시장에서 미스 매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대졸 유학생들은 어느 정도 전문화된 인력으로 묶일 텐데 대체로 우리나라에 오는 유학생들은 한국보다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미국, 일본으로 가는 유학생보다 퀄리티가 낮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마저도 대개 한국 대학교 학위를 취득한 뒤 본국으로 가 취업하려고 한다. 나머지 유학생들은 각 기업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A: 이민 정책과 글로벌 인재 유치 개념은 결이 다르다. 이 같은 인재 입장으로 볼 때 한국이 사실 정주하기 매력적인 나라라고 할 수 없다.

C: 유학생들 상당수는 인문계열 쪽인데다 대부분 졸업 후 고국으로 가려고 한다. 언어, 문화 등 여러 장벽에 부딪혀 대기업 취업은 사실상 어렵고 중소기업으로 선택지를 돌려야 할 텐데, 이 경우 차라리 본국에서 해외 대학 타이틀로 살아가는 게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Q: 이민청 등 이민 정책 전담부서 설립은 필요한가.
A: 전담 부서 설립은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다부처의 협업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인력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고, 적재적소에 맞는 인력을 데려오고 훈련한 후 분배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해서다.

B: 법무부, 산업통상자원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총리실 등 각 부처에서 산발적으로 진행 중인 이민 정책을 일원화해 독립된 전담 부서에서 통합 추진하도록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C: 정부조직법상 청 단위는 법안 발의를 하지 못한다. 이민과 관련된 여러 이슈 중 출입국 행정을 제외한 사회통합, 지역 간 협력 등을 청 단위 조직에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 따라서 ‘저출산대응기획부(가칭)’처럼 부 단위의 중앙행정기관이 출범해야 할 필요가 있다.
Q: 우리가 벤치마킹할 나라는 있을까.
A·B·C: 주의해야 할 점은 한국과 같은 수준의 저출산·고령화 현상에 직면한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벤치마킹할 나라를 꼽는 건 어렵고, 독자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다만 일부 해외 정책을 참고해 필요한 건 받아들이는 식으로는 논의할 수 있다.

B: 이런 맥락에서 외국인 유입 정책 패러다임을 바꾼 일본의 특정기능제도(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특정 분야에 일본 정부가 5년 단위로 수용 인원을 정한 제도)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특정 산업에서 전문성을 갖춘 외국 인력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는 전문성과 관계없이 한국인이 꺼리는 3D 업종 위주로 정부가 할당하는 ‘고용허가제’를 시행하면서 불법 체류자가 양산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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