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푸틴 ‘反美’ 한목소리
북러, 바이든 외교실패 부각
美대선 ‘트럼프 베팅’ 움직임
빅터차 “한국전後 최대 위협”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
우주협력 MOU체결 가능성
자동군사개입 명문화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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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하는 북한 김정은(좌) [사진 = 연합뉴스] |
북한과 러시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에 맞춰 18일 한 목소리로 ‘반미(反美)’를 외쳤다. 푸틴 대통령이 24년에 평양을 찾아간 배경을 스스로 설명해주는 장면이었다.
이날 북·러는 푸틴 대통령의 평양 도착에 앞서 북한 노동신문 사설과 특별 기고문을 통해 서방의 압박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외교적으로 고립된 푸틴 대통령은 평양에서 동병상련 처지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세계를 향해 주먹을 흔들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선에 보낸 포탄과 무기에 대한 대가를 푸틴 대통령의 방북으로 받아낸 모양새다. 미지근한 중국에 견제구를 던지는 한편 북한 내부적으로 자신의 외교적 위상을 강화하려는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북·러 양국이 이날 노동신문에 각각 게재한 글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미국’이다.
북한은 푸틴 대통령 환영 사설에서 “로씨야(러시아) 정부와 인민은 우리 공화국 정부와 인민의 위업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가)우리 국가를 정조준하고 감행하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발광적인 전쟁도발 책동에 가공할 핵 억제력으로 맞서나가고 있는 우리 인민의 투쟁에 확고한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러시아가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푸틴 대통령은 특별기고문에서 “미국은 본질에 있어서 ‘2중 기준’에 기초한 세계적인 신식민주의 독재 외에는 그 무엇도 아닌 이른바 ‘규정(규칙)에 기초한 질서’를 세계에 강요하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며 미국과 국제사회를 싸잡아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북은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행보로도 읽힌다. 북·러 밀착을 통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실패’를 부각시키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권가도에 힘을 싣는 효과를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 북·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자신들에게 외교적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공통적 기대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측면 때문에 미국 조야에서는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에 대한 강한 경고음이 나왔다.
간담회 하는 빅터 차 석좌 [사진 = 연합뉴스] |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17일(현지시간) “북러 정상회담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 국가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북러 간 무기거래 차단에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석좌는 북한이 무기 거래의 반대급부로 러시아에 첨단 군사기술을 요구할 개연성을 우려하며 주요 7개국(G7)과 중국을 통한 전방위 압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북·러는 이번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킬 것이 확실시된다. 또 과거 양국이 맺었던 1961년 ‘조·소 우호 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과 2000년 ‘북·러 우호·선린·협조 조약’을 대체할 새로운 조약을 체결해 전방위 협력을 강화할 전망이다. 푸틴 대통령이 기고문에서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상호 결제체계’를 언급하며 북한에게 금융거래의 뒷문을 열어주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양측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관심 사항인 우주발사체 협력 방안도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방북 대표단에 유리 보리소프 로스코스모스(연방우주공사) 사장을 포함시켜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우주개발과 관련한 별도의 양해각서(MOU)가 체결될 개연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러시아로서는 지난해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던)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언급됐던 우주협력 분야와 관련해 중장기적으로 협력을 확대한다는 식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북한에 서비스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절실하게 원하는 ‘핵보유국 인정’이나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 등이 새 조약에 담길지는 미지수다. 외교가와 학계에서는 러시아가 비확산 체제 자체를 부정하면서까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예상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평양에서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일정 부분 북핵을 용인하는 효과가 있어서 굳이 직접 거론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북한과 새 조약에 사실상 전면적인 군사동맹을 의미하는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넣을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홍민 연구위원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군사동맹에 준하는 약속까지 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무엇보다 중국이 자신들에게 경제의 90% 이상을 의존하는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한·러 관계 개선을 모색해 북·러 밀착을 견제하고 한반도 정세를 적극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방이 러시아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과 달리 한국과 러시아는 서로 레드라인을 넘지 않아온 점을 이제부터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한러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을 서방에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군사력 강화를 러시아가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한국이 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한국이 정부 차원에서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민간 외교트랙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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