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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만물상] ‘남아 선호’가 부른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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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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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생식 가능한 개체의 암수 성비(性比)는 장기적으로 1대1로 수렴한다고 한다. 진화생물학에선 이를 ‘피셔(Fisher)의 원리’라고 부른다. 사람의 자연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4~107명 범위다. 남아를 만드는 Y염색체 정자가 여아를 만드는 X염색체 정자보다 가볍고 빨라 수정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 평균 사망률이 여아보다 좀 높아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점차 1대1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조선일보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그런데 우리나라 신생아 성비가 이런 진화의 규칙에서 30년 가까이 벗어난 적이 있었다. 1970년대부터 2006년까지 자연 성비보다 남아가 훨씬 많이 출생했다. 남아 선호에다 출산 전 성별을 알 수 있는 초음파 검사 탓이다. 1990년 성비가 116.5까지 치솟았다. 특히 셋째 아이 이상 성비는 1994년 206.9를 기록하기도 했다. 기괴한 현상이었다.

▶한 자녀 정책을 오래 지속한 중국은 우리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중국의 신생아 성비는 2010년 즈음 120 가까이로 치솟았다. 그 여파로 미혼 또는 애인이 없는 남자가 넘쳐나면서 이들을 가리키는 ‘광군(光棍)’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광(光)’은 없다, ‘군(棍)’은 작대기를 뜻하는데 잎이나 다른 가지 없이 앙상한 가지, 작대기 하나만 있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와 함께 세계 최대 쇼핑행사로 자리 잡은 ‘광군제’에 들어 있다.

▶우리 사회에선 남아 선호가 거의 없어졌다. 2007년 이후 자연 성비를 회복했다. 남아 선호가 심해 부모에게 태아 성별을 알리지 못하도록 한 법 규정도 필요 없어졌다. 더 이상 산부인과 의사들이 초음파 검사를 한 다음 “파란 옷 사세요” “아기가 엄마를 닮았네요”라는 식으로 넌지시 태아 성별을 알려주던 모습도 없어졌다.

▶그런데 과거 심각했던 출생 성비 불균형이 이제 사회에 ‘보복’을 시작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과거 남아 선호 영향으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미혼 남성이 미혼 여성보다 무려 20%가량 많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인구 구조상 남성 여섯 명 중 한 명은 결혼을 못한다는 뜻이다. 20~30년 전 잘못된 사회 풍습이 지금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니 새삼 놀랍다. 보고서는 “이 불균형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결혼 실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출생 성비 불균형의 보복은 이제 시작됐는데 지금의 저출생 사태는 앞으로 20~30년 후 어떤 보복을 해올지 걱정이다. 전문가들은 나라와 사회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한다.

[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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