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7 (목)

이슈 증시와 세계경제

한국 증시는 왜 저평가 딱지를 떼지 못할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6>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빠진 이유
주식 공급 물량 증가에 매력도 하락
주주환원 쥐꼬리...배당수익률 1% 남짓
산업군 변동성도 커..."홈 바이어스 탈피"

편집자주

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3주에 1회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장을 마감한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0년 주식시장을 돌이켜보면, 박스피라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코스피 지수는 10년 동안 단 35.9% 상승하고, 코스닥 지수는 55.1% 오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연 환산 복리 수익률 기준으로 살펴보면, 코스피는 연 3.1% 코스닥은 연 4.5% 오른 셈이다.

물론 이 수익률에 만족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지난 10년간 찾아온 세 차례의 폭락장을 견뎌낸 끝에 얻어낸 수익치고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참고로 세 차례의 폭락장은 2018년 말의 미중 무역분쟁(이하 코스피 월평균 주가 기준, –17.9%), 2020년의 코로나 사태(-18.9%),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35.9%)을 뜻한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대체 왜 한국 증시는 오를 때는 찔끔하고, 빠질 때는 시원한 것일까.

한국 증시가 장기 침체, 저평가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주식 공급 물량의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1984년을 기준으로 측정하면, 코스피 지수는 19배 남짓 상승한 반면 코스피 시가총액은 413배 늘어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시가총액이란, 주식 수에 주가를 곱한 것으로 기업의 시장 가치로 볼 수 있다. 즉 상장 기업의 가치는 413배 늘어난 반면, 주가는 19배 상승했으니 주식 수가 2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주식시장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좌우한다. 2020년처럼 막대한 시중 자금이 주식시장에 몰려들면 주가가 급등하고, 2021년처럼 막대한 주식 공급 물량이 출현하면 주가가 오를 수 없다. 예를 들어, 2022년 초 LG에너지솔루션 상장 당시 약 1경5,000조 원의 자금이 몰려든 바 있다. 2022년 국민순자산이 2경 원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얼마나 큰돈인지 짐작될 것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 같은 대기업의 신규 상장은 수급 불균형 뿐만 아니라, 시장의 밸류에이션 매력을 떨어뜨린다. 상장 당시 LG에너지솔루션 시가총액은 70조 원이었는데 2021년 이익 기준으로 주가수익배율(PER)이 127배에 달했다. PER은 기업의 주가와 이익을 비교한 것으로, 이 숫자가 높을수록 고평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21년 코스피 평균 PER이 12.7배였음을 감안하면 얼마나 비싼 값에 상장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평균을 크게 뛰어넘는 가격에 상장된 주식이 시가총액 2위 자리에 올라감에 따라, 코스피 지수의 PER도 덩달아 올라가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되었다고 말하기 힘들지 않을까.

한국일보

그래픽=김대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가가 오르기만 하면 주식 공급이 쏟아지는 것뿐 아니라, 쥐꼬리 배당을 지급하는 것도 한국증시의 부진을 유발한 요인이다. 상장해서 좋은 실적을 내고, 주주들에게 배당도 척척 해주면 참 좋을 텐데, 한국은 이 순환이 끊어져 있다.

2000년 이후 한국 코스피 배당수익률과 회사채금리의 관계를 살펴보면, 금리가 오르거나 내리거나 상관없이 배당수익률이 1% 내외에서 움직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배당수익률은 주가 대비 지급된 배당금을 측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1만 원에 거래되는 기업이 주당 100원의 배당금을 지급하면 배당수익률은 1%가 된다.

2000년대 초반처럼, 기업이 시장에서 빌리는 이자가 높을 때에는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는 게 어느 정도 이해되는 면이 있다. 고금리로 돈을 빌리는 것보다, 주주들로부터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게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 장기 저금리 환경이 출현했음에도 한국 기업의 배당수익률은 높아지지 않았다.

기업이 돈을 벌어도 주주에게 돌아가는 게 없으니, 투자자들의 태도도 바뀌었다. 예를 들어, 2020년 이른바 ‘코로나 장세’ 때 개인투자자의 연간 거래회전율은 1,600%를 상회했다. 평균적으로 연간 16번 정도 주식을 사고 팔았다는 이야기이니, 기업들 입장에서도 개인투자자들을 박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껏해야 3주 정도 회사 주식을 보유했다 떠나가는 이들에게 큰 신경을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그래픽=김대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만성적인 공급과잉과 쥐꼬리 배당이 합쳐진 결과 한국 증시는 지난 10년간 변변찮은 수익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영자 및 최대주주를 마냥 비판하기에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바로 1997년 이후 한국 경제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며, 대우부터 동양증권 그리고 한진해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업이 파산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분식 사건을 들 수 있다. 조선은 대표적인 사이클 업종으로, 1886년 이후 평균 30~35년 주기로 격렬한 경기를 탄다. 해운사와 조선사가 배를 만들기로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약 1년간의 설계과정을 거쳐 선박 건조가 시작된다. 큰 문제만 없으면, 계약에서부터 선박이 완성돼 인도되는 데까지 대략 3년이 걸린다.

2015년은 조선 사이클에서 가장 바닥에 근접한 시점이었다. 3년 전에 들어온 신규 주문에 맞춰 배를 만들었지만, 인도하려는 해운선사들이 줄줄이 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소한 흠을 잡아서 인도를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또 해양플랜트 같은 경우는 아예 사업 자체가 주저앉아버렸다. 2014년부터 시작된 국제유가 폭락 사태로 인해 드릴십(해양시추선) 혹은 부유식 원유생산 저장 하역 설비(FPSO)를 수주했던 각국의 유전개발 업체들이 도산하거나 어려움에 처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회계조작 사건의 배후에는 격렬한 조선업 경기 변동이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대규모 주문이 들어올 때, 오히려 몸조심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언제 경기가 나빠질지 모르니 미리 현금을 챙겨두고, 또 주문도 괜찮은 해운선사 위주로 골라서 받으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모든 산업이 조선업처럼 움직이지는 않는다. 대신 철강이나 화학, 반도체 같은 산업의 주기는 조선보다 훨씬 짧지만 호황과 불황의 진폭이 어쩌면 조선업을 넘어설 정도로 격렬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전자의 주가가 지난 6년 사이에 '3만 전자'에서 '10만 전자'로 요동친 것을 기억하면 손쉬울 것 같다.

이상의 설명을 듣노라면, 한국 주식시장의 체질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금방 이해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는 외국인 및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지분율이 높은 기업을 최우선 대상으로 고르는 것이다. 2003년의 SK 경영권 분쟁, 2015년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에서 보듯,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기업은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에 취약성을 드러낸다. 행동주의 펀드는 어떤 회사의 주가가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데에는 대주주의 전횡 혹은 잘못된 자본분배가 자리 잡고 있기에, 이를 바로잡음으로써 주가는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한다. 이들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부상하는 만큼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기업들의 경영자들이 개인투자자를 홀대하기 어렵다.

두 번째 선택지는 홈 바이어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홈 바이어스는 각국의 투자자가 자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세계 주식시장 시가총액에서 한국은 2%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많은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에만 투자하는 게 현실이다. 해외에는 한국에 상장된 기업보다 더 경쟁력이 뛰어나고 주주중시 경영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일보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