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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어머니와 3년간 접촉 단 한 번”… 미얀마 수치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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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아들, "올 1월 편지 받은 게 전부"
"군정, 어머니 인간 방패로 이용 우려"
한국일보

미얀마 민주화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왼쪽) 국가고문이 2010년 12월 미얀마 양곤 국제공항에서 막내아들 킴 아리스를 배웅하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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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교도소 독방에 감금돼 왔던 ‘미얀마 민주화 상징’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의 행방이 묘연하다. 수치 고문의 친아들조차 수감된 3년간 단 한 차례, 서면으로만 연락이 닿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 고문이 교도소를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종적을 알 수 없는 탓에 군부가 그를 앞세워 모종의 거래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수치 고문의 막내아들 킴 아리스는 16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현지 매체 라 리퍼블리카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투옥된 이후 거의 접촉이 없었다”며 “가족들은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아리스는 수치 고문이 작고한 남편 마이클 아리스와의 사이에서 얻은 2남 중 둘째다. 영국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 국적을 얻었고 현재 이탈리아·미얀마 우호협회 회의차 이탈리아를 방문 중이다.

미얀마 군부는 2020년 11월 수치 고문이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자 이를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이듬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수치 고문은 체포돼 부패 혐의 등으로 27년형을 선고받았고 수도 네피도 교도소 독방에 수감됐다. 가족은 물론 변호인 등 외부 접촉이 모두 금지됐다.

그간 모자에게 허락된 것은 편지 단 한 통이 전부였다. 아리스는 “(지난해) 어머니가 심각한 치통으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고 구토와 현기증 증세를 보인다는 소식을 알게 돼 약 한 꾸러미를 (교도소로) 보냈다”면서 “놀랍게도 올해 1월 서명이 담긴 자필 감사 편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형제가 교도소로 또다시 약을 보냈지만 소식이 끊겼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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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쿠데타 3주년을 맞은 지난 2월 1일 태국 방콕 유엔사무소 밖에서 시위대가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방콕=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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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부터는 행방도 알 수 없다. 군부는 지난 4월 수치 고문과 윈민 전 미얀마 대통령을 교도소에서 옮겨 가택연금에 처했다고 발표했다. “기온이 섭씨 40도를 웃돌며 매우 덥기 때문에 고령 수감자를 열사병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게 군부 주장이었다. 하지만 군정은 이들을 어디로 이송했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아리스는 수치 고문이 재수감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는 “군부는 어머니를 양곤 자택으로 옮기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한, 여전히 감옥에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 독립언론 이라와디 역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수치 고문이 다른 사동으로 옮겨졌을 뿐 여전히 네피도 교도소에 머물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리스는 반군과의 전투에서 밀리고 있는 군정이 향후 수치 고문을 ‘인간 방패’로 삼으려 억류했을 가능성도 거론했다. 그는 “현재 저항군이 미얀마 국토 60% 이상을 장악했고 군정 거점인 수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군부는 야당 지도자(수치 고문)가 어디 있는지 감추는 게 자신들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보는 것 같다”면서 “언젠가는 이들이 어머니를 협상 카드로 사용해 향후 입지를 확보하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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