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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우크라 평화회의에 소환된 뮌헨… “유화정책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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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총리, 연설에서 뮌헨협정 비판

“유화정책, 침략자 더욱 대담하게 만들어”

젤렌스키, 국제사회 공동의 노력 거듭 촉구

“저는 이번 기회에 우리가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1938년의 뮌헨협정을 끄집어내 눈길을 끈다. 뮌헨협정 체결을 ‘과거의 실수’로 규정한 칼라스 총리는 국제사회를 향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15일(현지시간) 에스토니아 정부에 따르면 칼라스 총리는 이날 스위스 뷔르겐슈톡에서 개막한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 우크라이나와 스위스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회의는 우크라이나의 지속적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들을 논의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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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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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책, 침략자 더욱 대담하게 만들어”

칼라스 총리는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 전쟁은 1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며 “하지만 세계는 이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름반도를 강탈해 자국 땅으로 편입했을 때 국제사회가 사실상 방관한 점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일부는 침략국에 대한 영토의 양보가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희망한다”고 꼬집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에 나선 러시아는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국토의 상당 부분을 점령한 상태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가 이 땅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고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는 게 칼라스 총리의 견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평화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이런 논리는 1930년대의 유화정책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하지만 뮌헨협정은 평화를 확보하기는커녕 오히려 히틀러를 더욱 대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더 많은 침략으로 이어졌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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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직후인 2022년 3월 북마케도니아 시민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치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 두 얼굴을 합성한 사진 등을 든 채 반전(反戰) 시위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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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이웃나라 체코에 주데텐란트 할양을 요구했다. 주데텐란트는 체코 국토의 일부이나 독일계 주민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 히틀러가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협박하자 영국 등 다른 강대국들이 개입했다. 그해 9월 독일 뮌헨에서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 4국 정상이 모여 회의를 연 끝에 ‘체코는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인도하고, 독일은 더는 영토 확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협정을 맺었다. 체코는 눈물을 머금고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겨야 했다.

하지만 ‘더는 영토 확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히틀러의 약속은 거짓말이었다. 독일은 이듬해인 1939년 3월 체코의 남은 국토까지 전부 병합한 데 이어 폴란드에도 영토 할양을 요구했다. 폴란드가 이를 거절하자 1939년 9월 독일군이 폴란드를 공격하며 2차대전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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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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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국제사회 공동의 노력 거듭 촉구

결국 칼라스 총리의 얘기는 우크라이나가 국토 일부를 러시아에 넘긴다고 해도 러시아는 전쟁을 멈추기는커녕 우크라이나의 남은 영토까지 다 차지하려 할 것이란 뜻이다. 히틀러가 체코에 이어 폴란드를 침략한 것처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외에 다른 인접국까지 침략해 땅을 빼앗으려 할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칼라스 총리는 “역사는 평화를 위해 영토를 포기하는 일이 되레 더 큰 침략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식민지 지배 정책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불행한 역사의 반복에 가슴이 아프다”며 “우리는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로 연설을 끝맺었다. 뮌헨협정 당시 서방이 취했던 유화정책의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경고인 셈이다.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주요국 정상들이 대거 참석했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회의에 파견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개회사에서 “우리가 함께 노력하면 전쟁을 멈추고 정의로운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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