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 기회이자 위협이다.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AI 가속기가 확산할 수록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만드는 고대역폭메모리(HBM) 판매가 늘어난다. 글로벌 반도체 경기 침체 속 한 줄기 빛이 됐던 HBM은 이제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고 있다. 전체 D램 시장의 10~20% 정도에 그칠 것이란 HBM 전망은 30% 이상으로 바뀌었다. 우리 경제를 견인할 기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스템 반도체 부재와 파운드리 부족으로 메모리 외에는 소외돼 있어서다.
엔비디아 GPU는 TSMC에서 만든다. TSMC는 엔비디아가 설계한 GPU를 실제 칩으로 구현해 낸다. 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가 만든 HBM을 GPU와 이어 붙이는 일까지 맡고 있다. 엔비디아 뿐인가. AMD, 퀄컴 등 내노라하는 시스템 반도체 기업이 TSMC에 반도체 제작을 의뢰한다. 굴지의 AI 반도체 기업이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AI 반도체를 설계, 시장을 선도하는 시스템 반도체 기업도 국내 거의 볼 수가 없다. 삼성전자가 홀로 분전하지만 지난 10년 넘게 3%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일(현지 시각)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사진 가운데 아래 검은 옷)가 대만 컴퓨텍스 포럼에 참석해 현지 미디어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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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HBM이 있어 괜찮다고 위안 삼아야 할까. 너무 한가한 인식이다. D램 시장 만년 3위인 줄로만 알았던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HBM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회사는 현재 4%인 HBM 점유율을 내년 30%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마이크론이 무서운 점은 기술 때문이 아니라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는 미국 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켜온 D램 위상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2027년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하고, 2047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제시했다. 꼭 그렇게 되길 바라고 응원한다. 그러나 지금은 원대한 꿈이나 비전보다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싸울 수 있는 무기와 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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