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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정치 실종이 부른 ‘권위의 충돌’…시민들 “의료현장 돌아오라”[뉴스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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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의협 회관에 비치한 ‘의대 증원 반대’ 손팻말 대한의사협회가 오는 18일 집단휴진을 선언한 가운데 10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 의대 증원 반대 손팻말이 놓여 있다. 정부는 이날 의협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의 법적 검토에 착수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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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령 ‘철회’ 6일 만에
“정부 꼼수” 집단 행동 예고

증원 강행 ‘포용’ 않는 정부
대화는 뒷전 ‘강경책’ 일변
의료계 “증원 철회” 주장만

“논리 넘어 정치 싸움” 비판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오는 18일 집단휴진을 예고하자, 정부가 이에 진료명령·휴진신고명령 등 행정명령으로 대응하며 각을 세우고 있다. 정부가 전공의 행정명령 철회라는 퇴로를 제시한 뒤에도,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자 정부도 다시 강경책을 꺼내든 모습이다. 양측이 정치적 합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서로 권위를 앞세워 충돌하며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의협이 집단휴진 계획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인 10일 개원의들에게 진료명령과 휴진신고명령을 발령하기로 했다.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제1통제관)은 “수십년간 쌓아온 국민과 의료계 간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정이자 국민과 환자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단체행동을 주도하고 있는 의협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행정명령은 과거 의·정 갈등으로 집단휴진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정부가 폈던 강경책이다. 2020년 8~9월 의료계가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벌였을 때도 정부는 행정명령 카드로 응수했다. 당시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진료유지·업무개시 명령을 내렸고,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전임의 10명에 대해서는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까지 했다. 당시 의협은 3차에 걸쳐 개원의 집단휴진 방식의 총파업을 주도했다. 정부는 의료법 59조를 근거로 지자체에 휴진 비율이 30% 이상일 경우 진료개시명령을 발동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또 최대집 의협 회장 등 당시 지도부를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내린 진료유지·업무개시 명령 등을 철회한다고 발표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행정명령이라는 강경책을 다시 들고나온 것은, 의료계가 정부의 행정명령 철회를 ‘양보’가 아닌 ‘꼼수’로 해석하면서 집단휴진 예고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전공의들에게 내려진 행정명령이 ‘취소’가 아니라 ‘철회’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복귀 후에 다시 단체행동을 할 경우 효력을 되살려 면허정지 처분 등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는 행정명령을 취소해달라는 의료계의 요구에 선을 그으며 “복귀 전공의에게는 불이익이 없게 하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하지만 취소냐, 철회냐를 둘러싼 논쟁은 법적으로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의료전문 신현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해울)는 “행정처분을 취소하든, 철회하든 나중에 전공의들이 다시 단체행동을 해서 정부가 처벌하려고 하면 과거의 불법행위까지도 근거로 가져와서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은 같다”며 “철회냐, 취소냐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지금 양측의 싸움은 논리 싸움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싸움”이라며 “정치가 실종되면서 양측의 권위가 충돌하는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교수는 “양측 다 국민들을 생각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의대 증원이 확정된 상황에서 의료계에 더 큰 포용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정부의 문제를 지적했다.

의료계가 내년도 의대 증원 계획 철회라는 강수만 고집하는 것을 내려두고, 일단 의료현장으로 돌아와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높다.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금 의사들은 집단휴진이 아니라, 전공의들의 복귀를 독려하고 환자 곁으로 돌아와 환자와 국민의 편에 서서 올바른 의료개혁 방안 마련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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