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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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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만 비겁한 ‘5층’은 우리의 모습…‘더 에이트 쇼’ 원작 웹툰과 어떻게 달라졌나[선넘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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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참가자 ‘5층’(문정희)는 고구마 같은 피스 메이커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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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얼른 일어나요. 이 쇼 다 끝났어요.”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작은 방. 쇼 참가자 ‘5층’(문정희)은 바깥 다른 참가자들의 부름을 받고 눈을 뜬다. 문을 열고 공용 공간으로 나가자 모두가 웃고 있다. 참가자들은 회전목마를 타고, 파란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있다. 전광판엔 ‘해피 엔드’라는 문구가 흐르고 있다. 이제 서로를 의심하고 경쟁하는 이 지긋지긋하고 잔인한 쇼가 끝날 걸까.

5층은 감격에 차 눈물을 흘린다. 해 맑게 웃으며 너무 믿기지 않는다며 핫도그를 먹고 맥주를 마시며 하하 호호 웃는다. 천천히 열리는 출구를 향해 걸어가다가 다른 이들에게 묻는다. “‘2층’(이주영)님은?”

그 순간 허공에서 2층의 몸이 날아온다. 얼굴은 피범벅이다. 5층이 뒤를 바라보니 참가자들이 서로를 폭행하고 고문하고 있다. 쇼든 현실이든 세계가 평화로울 리 없다. 순진한 중재자인 ‘피스메이커’ 5층의 상상은 산산조각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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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참가자 ‘5층’(오른쪽)이 오열하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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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 “언제든 발 뺀다”

지난달 17일 공개된 뒤 넷플릭스 한국 TV 시리즈 부문 1위에 오른 드라마 ‘더 에이트 쇼’에는 원작 웹툰 ‘머니 게임’과 그 속편인 ‘파이 게임’에는 없는 새 캐릭터 5층이 추가됐다. 드라마는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쇼에 참가하는 이야기다. 7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파이 게임’과 달리 극중 인물은 8명으로 늘었다.

5층은 모두가 갈등 없이 잘 지내기를 바라며 참가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화를 중재하는 인물이다. 쇼를 평화롭게 진행하려 하는 5층 역을 만들어내 선함과 비겁함 사이의 인간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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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웹툰 ‘파이 게임’은 드라마보다 잔혹하다. 네이버웹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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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평소에 누구든 잘 챙기고 5층의 심성은 쇼를 오히려 파국으로 몰고 간다. 마음이 약해진 5층이 포박된 ‘6층’(박해준)을 풀어주자 결국 6층이 다른 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 능력 없는 중재자의 행동은 결국 잘못된 결과를 불러온다는 현실의 잔인함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진다. 한재림 감독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구마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굉장히 황당한 착각에 빠지는 인물”이라고 했다.

특히 5층의 역할은 나쁜 인간이 되고 싶진 않은 평범한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배우 문정희는 지난달 30일 기자들과 만나 “(모두가) 착해 보이지만 언제나 발 뺄 준비를 하고 있지 않나. 겉으로 친절한데 결정적 순간에는 움직이지 않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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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더 에이트 쇼’는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한 공용공간을 선보인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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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한 공용공간

새파란 물이 가득한 수영장, 먹음직스럽게 생긴 핫도그, 평화롭게 돌아가는 회전목마, 명품으로 가득한 옷가게, 두툼한 치즈와 페퍼로니가 올려진 피자, 형형색색 소프트 아이스크림….

드라마에서 참가자들은 ‘더 에이트 쇼’의 공용공간을 마주하고 깜짝 놀란다. 모두가 진짜처럼 생긴 가짜지만 이 알록달록한 색채는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마치 이곳을 행복의 공간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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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흰 배경에 빨간 계단으로 색채 대비가 두드러진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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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칙칙한 시멘트 건물 내부로 구성한 원작과 다른 점이다. 원작은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참가자들이 심리 싸움에 열중하지만 드라마는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참가자들의 욕망을 증폭시키는 것. 이는 가질 수 없으나 가지고 싶은 욕망을 증폭시키려는 연출적 의도다.

한 감독은 22일 기자들과 만나 “돈을 열심히 벌어서 수영장에 놀러 가고 싶지만 이곳의 수영장은 다 가짜다. 인물들이 끝없이 욕망만 하고 이루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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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원작 웹툰은 흑백 계단으로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네이버웹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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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계급 구조에 대해 천착했다면 드라마는 창작자로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7층(박정민)의 직업은 영화감독. 지적인 인물로 상황 판단이 빠르며 다른 참가자들을 이끈다. 제목에 ‘게임’ 대신 ‘쇼’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도 비슷한 이유다. 1층(배성우)의 모습에선 영국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 찰리 채플린(1889~1977)이 엿보이고, 드라마에선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1936년)의 음악이 흐른다.

한 감독은 “창작자로서의 제 고민을 담은 것 같다”며 “지금은 도파민의 시대이고 재미있는 것이 중요한 시대”라고 했다. 한 감독은 또 “유튜브와 숏폼에 익숙해져서 극장에서 힘들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시네마’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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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에이트 쇼’엔 찰리 채플린으로 대표되는 ‘시네마’에 대한 동경이 담겼다. 동아일보DB


● 참가자 8명 성별, 4 대 4로

다른 인물들도 조금씩 설정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 괴팍하고 폭력적인 6층은 적당히 머리를 굴리며 다른 참가자들을 수탈하는 앞잡이 역할을 한다. 이는 체격은 건장하나 정신연령이 낮은 캐릭터로 묘사된 ‘파이 게임’과 다른 점이다.

다른 참가자들 사이에서 편을 오가며 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박쥐형 인간인 ‘4층’(이열음)은 원작에선 남성이었으나 드라마에선 여성으로 바뀌었다. 그 덕에 남녀 성비가 5 대 2였던 ‘파이 게임’과 달리 드라마 참가자 8명의 성별은 4 대 4로 동등해져 현실과 유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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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참가자 8명의 성별은 4 대 4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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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원작 드라마와 영화가 쏟아지고 있지만 두 개의 웹툰을 한 작품으로 각색한 점은 흔치 않은 방식이라는 점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원래 한 감독이 ‘머니게임’ 연출을 제안받고 작품을 기획 중인데 ‘오징어 게임’이 나왔다. ‘누군가가 죽어야 내가 돈을 번다’라는 구조가 유사했기에 고민했다. ‘파이 게임’을 합쳐서 아무도 안 죽는 게임, 시간을 벌어서 시간으로 상금을 버는 이야기로 바꾸며 벌어진 일이다.

결말도 다르다. ‘파이 게임’은 주인공이 쇼를 나서는 장면에서 거의 마무리되지만 ‘더 에이트 쇼’엔 1층의 장례식장 장면까지 추가됐다. 원작은 파멸로 끝이 나는데 드라마는 1층의 죽음 외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원작에 있는 몇몇 지나치게 잔혹한 설정을 그대로 담지 않고 비교적 드라마에 담길 수 있는 수준으로 각색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지만 드라마에선 배진수라는 점이 밝혀진다. 배진수는 원작 작가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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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머니 게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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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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