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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경제 실정에…‘만델라 후광’ 남아공 집권당 30년 단독집권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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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29일 시작…ANC, 쉽지 않은 ‘과반 득표’

경향신문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수도 요하네스버그의 한 유세장에서 총선 전 마지막 연설을 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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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집권 속 부정부패·실업·빈곤…여당 지지율 하락
주마 전 대통령 주도 신생정당 돌풍…첫 연정 가능성도

오는 29일(현지시간) 시작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총선은 전에 없던 긴장감 속에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1994년 흑인 참정권을 보장한 최초의 민주선거를 실시한 이래 줄곧 다수당 자리를 지켜온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사상 처음으로 과반 득표에 실패할 위기에 처해 있어서다. 이 경우 남아공 최초의 연립정부가 탄생할 수 있어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달아오른 정치권 분위기와 달리 실업과 빈곤에 지친 민심은 싸늘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ANC는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을 철폐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이다. 남아공은 인구의 80% 이상이 흑인이다. 만델라 정권에서 상하수도 설치, 전기 공급 등 생활환경 개선을 경험한 유권자들은 매번 ANC를 택했다. 다만 지지율은 꾸준히 줄었다. 20년 전만 해도 득표율이 70%에 달했던 ANC는 5년 전 총선에서 57%를 득표했다. 장기 집권 과정에서 잇따른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30%에 육박하는 실업률, 세계 최악 수준의 빈부격차로 유권자들의 실망감이 커진 탓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40%대에 머물고 있다.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 ANC는 사상 처음으로 연정을 꾸릴 가능성이 크다. 남아공은 총선 득표율에 따라 의회 의석을 배분하고, 의회가 대통령을 뽑는다. 사실상 다수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기 때문에 ANC가 집권을 이어가려면 연정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주요 야당이 집권당과 대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 후 정국 혼란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요 야당도 유권자들에게 적절한 대안이 돼주지 못하고 있다. 외신들은 야당이 집권당을 향한 공세에 치중하느라 눈에 띄는 정책을 내놓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제1야당인 민주동맹(DA)은 국영기업 민영화와 경제성장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친기업적 성향으로 ‘백인 기득권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집권당보다 급진 좌파 노선을 취하는 제2야당 경제자유전사(EFF)도 지지율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창당한 움콘도 위시즈웨(MK)의 약진은 최대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당대표인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은 각종 부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MK를 창당하며 정계에 복귀했다. 주마 전 대통령은 “지금의 ANC는 더 이상 64년 전 내가 합류했던 ANC가 아니다”라며 정권심판론을 내세우고 지지층을 끌어모았다. 최근에는 MK의 지지율이 10%를 넘어서면서 EFF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지난 20일 헌법재판소는 그의 범죄 혐의를 이유로 출마 자격을 박탈했지만, 이 역시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는 요소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져 MK가 ANC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표심을 더 많이 흡수한다면 야권에 더욱 유리한 선거판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도 시민들에게는 또 한 번의 ‘비호감 선거’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에 태어난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정치 혐오와 무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만델라 전 대통령이 자신의 삶을 바꿔놓았다는 인식이 적고, ANC의 부패와 무능에 불만이 큰 세대다. 남아공 15~34세 청년 실업률이 45.5%에 달한다는 점도 청년 세대의 정치 무관심을 키우고 있다.

시민들의 정치 혐오가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아프로바로미터의 지난해 설문 결과 ‘선출되지 않은 정부가 일자리와 안전 등을 제공해준다면 투표권을 포기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72%에 달했으며, 70%가 자국 민주주의 작동 방식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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