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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협력" 63번 외쳤지만…"한반도 완전한 비핵화"는 못 넣었다 [3국 정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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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은 63차례 등장했지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은 들어가지 않았다. 27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선언 이야기다. 애초에 '완전한 비핵화'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는 용어에 대한 북한의 반발을 고려해 수위를 낮춘 표현임을 고려하면, 3국 간에 이런 원론적 수준의 문안에도 합의하지 못한 것은 북핵 위협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한국으로선 아쉬운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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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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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납치자 입장 각각 재강조"





이날 발표한 '9차 한·일·중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는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 12월 열렸던 8차 정상회의 공동선언에 포함된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장보다 후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보다 앞선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에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다"(2018년 5월),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다"(2015년 11월)는 문구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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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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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언 발표에 앞서 이날 오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리 총리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각기 다른 입장을 밝혔는데, 공동선언 상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는 데 따른 입장 표명으로 보인다.

실제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한·일과 중국 간 인식 차이는 컸다. 윤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언급하며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안정이 공동의 이익"이라고 말했다. 두 정상 모두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며, 북한의 위성 도발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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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리창 총리가 27일 오전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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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정치적 해결 추진"



하지만 리 총리는 "중국은 시종일관 한반도의 평화, 안정과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인 해결을 추진한다"며 "관련 측은 자제를 유지하고, 사태가 더 악화하고 복잡해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측의 자제'는 중국이 유지해온 전형적인 양비론적 태도다. 리 총리는 북한의 위성 도발 우려는 물론 '비핵화'라는 단어도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일본 언론은 공동선언 초안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공통의 목표"라는 문구가 담겼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가속화를 염두에 두고"라는 표현도 있다면서다.

해당 보도와 리 총리의 입장으로 미뤄 공동선언 최종 문안 조율 과정에서 중국 측이 이견을 보여 후퇴한 문안으로 합의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의장국인 한국 입장에서는 현실적 한계를 고려하고, 협력에 방점을 찍기 위해 어느 정도의 타협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동선언에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노력을 지속하기로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는데, '정치적 해결'은 리 총리가 직접 언급한 중국의 기존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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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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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중국과 합의 쉽지 않았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핵 문제 관련 문구가 과거에 비해 다소 약화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면서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목이 포함된 건 오랜 협상의 성과"라고 설명했다.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최근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과거와 같은 합의를 끌어내긴 어렵다"며 "중국이 지난해부터 대외적으로 쓰지 않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공동성명에 포함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도 "'한반도 비핵화'를 중국이 인정하고 대외적으로 공표한 셈"이라며 "(비핵화) 목표에 대해선 중국도 한국과 뜻을 같이한다고 명확히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대통령실은 공동선언문 발표와 동시에 윤 대통령과 리 총리 간 '별도 환담'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리 총리에게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글로벌 핵 비확산 체제 유지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하고, 이와 함께 탈북민 문제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란 목표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는 중국의 심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기 때문에 3국 정상회의의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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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국 우려 해소'는 빠져



중국의 양보를 끌어낸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있다. 2019년 공동선언 때 포함됐던 "당사국들의 우려의 포괄적인 해소"라는 표현은 이번에는 빠졌다. 중국 측은 북한이 도발해도 오히려 한·미를 탓하며 "북한의 정당한 우려를 해소하라"고 주장하곤 했다. 중국이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며 관용어처럼 쓰던 표현이 이번에는 빠진 셈이다.

이런 가운데 "3국이 유엔 안보리 이사국으로 (올해) 함께 활동한다"고 공동선언에 상기한 점은 주목된다. "3국 협력 체제 내에서 뿐만 아니라 유엔 안보리 등 다자 간 협력 체제에서도 긴밀히 소통할 것임을 재확인한다"고도 했다. 그간 한·미·일이 유엔 안보리에서 올해 동시에 활동한다는 측면은 꾸준히 강조됐지만, 한·중·일 협력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이번 공동선언 문구를 통해 한·일이 안보리 차원의 대북 공조에 중국을 포섭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정상회의의 중단 없는 정례화 등에 합의하며 '협력의 제도화'에 3국이 공감한 게 큰 성과다. "3국 간 인적 교류를 4000만 명까지 증가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공동선언에 구체적인 목표를 명시하는 등 상대적으로 합의가 쉬운 분야에서는 상호 의지를 확인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기본적으로 한·일·중 3국 협력은 정치적·외교적으로 무거운 이슈보다는 실질적인 협력에 초점을 뒀다"며 "이번에도 경제·민생 측면에서 구체적인 사업을 잡아내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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