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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이윤 위한 '낭비' 의료 멈추고 환경친화적 병원 만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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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건강연구소 ]
지난 17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은 연구·개발(R&D) 분야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전면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해 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후폭풍으로 여론이 크게 악화된 것을 만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러한 파격적 방침을 놓고 건전재정 기조와 어긋난다는 비판과 함께 무분별한 사업 추진으로 국가 재정이 낭비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결정의 타당성 여부보다 '예타 면제'의 정치 이면에 있는 이념적 편향성에 주목하고 싶다. 왜 어떤 사업은 예타가 면제되고, 어떤 사업은 예타의 벽에 막혀 좌절되는 것일까.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처럼 GDP 성장을 견인하거나, 과학기술개발과 같이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믿는' 사업일수록 예타 면제가 더 쉽게 사회적으로 정당화되는 듯 하다.

반면 사회복지와 보건의료 분야의 공공사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엄격한 비용편익 논리를 갖다 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경제성장 중심주의'와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지배 이념은 더 큰 경제적 가치를 안겨줄 것이라는 '환상적' 기대가 투영되는 사업들에만 경제성 평가를 건너뛸 더 큰 여지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건강과 안전, 삶의 질과 같은 비경제적 가치를 우선하는 사업일수록 예타의 벽을 넘기 힘들다. 이 문제는 최근 공공병원 신·증축 사업의 예타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는 지난 팬데믹 위기를 겪으며 공공병원의 소중함을 절감하지 않았던가. 그 맥락에서 2021년에 대전과 서부산의료원, 경남 진주 공공병원 설립에 대한 예타 면제 결정도 이뤄질 수 있었다.

한데 지난해 광주의료원과 울산의료원 설립 모두 예타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두 지역 모두 지방의료원이 없다는 점에서 앞서 면제 적용을 받은 도시들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혹자는 '공정'하게 예타를 통과하면 되지 않냐고 힐문할 테지만, 예타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예타는 경제성 분석 외에도 정책성 분석과 지역균형발전 분석의 결과를 포함한 종합평가로 이뤄진다. 그런데 과거 공공병원 설립의 예타 결과를 보면 비용편익비(B/C)가 기준치 1을 넘는지가 사실상 통과를 결정짓는 기준이 되어왔다. 총사업비 추정이야 큰 이견이 없지만, 문제는 편익 추정의 모호성이다. 무엇을 편익으로 인정할 것인지, 또 그 크기를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매우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편익 추정이 예타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오늘날 경제에 편향된 가치 지형과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공공병원 편익의 범위와 크기를 축소하는 방향의 벡터로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광주의료원 예타 건만 보더라도, 여러 사유를 들어 광주시가 제시한 18개 편익 항목 중 5개만 평가에 포함하였다.(☞ 바로 가기 : KDI 공공투자관리센터 '광주광역시의료원 설립사업')

이동시간·교통비 절감, 응급환자사망감소, 감염병관리, 자살사망감소, 간병비 절감. 이 다섯가지 항목으로 공공병원 설립의 편익이 환원될 수 있을까. 게다가 28개 중증응급질환이 아닌 3대 주요 응급질환으로만 응급사망자 수를 한정한다는 지적이 있듯이 편익이 과소추정되는 문제도 있다. 생산성 손실을 기준으로 통계적 생명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의 비윤리성 문제는 굳이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실 예타가 가진 더 근본적인 문제는 화폐로 계량화될 수 있는 가치만이 분석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건강 보호·증진이라는 '실재적' 가치를 화폐화된 몇몇 지표들로 등치시켜 버리는 인식론적 오류가 예타 전반에 짙게 깔려 있다. 인권, 참여, 존중, 평등과 같이 측정이 어려운 사회적 가치들은 애시당초 사업의 목표로 고려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여기까지가 예타의 일반론적 한계라면, 공공병원 예타는 또 다른 핵심 문제를 가지고 있다. 바로 공공병원 역할을 민간 영역을 '보완'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감염병 치료관리나 저소득층, 장애인 등 취약집단 진료와 같이 기존 민간 병원들이 꺼려하거나 불충분하게 제공하고 있는 영역만을 그 고유한 역할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니 주변 병원들과 경쟁하는 일반 진료기능이 편익으로 잡힐리 없다.

공공병원이 민간 영역의 잔여적 역할만 수행해야 한다는 규범은 의료 시장주의적 관점의 산물일 뿐이다. 2012년 공공보건의료법 개정을 통해 공공보건의료 개념이 '소유'에서 '기능' 관점으로 전환되면서 민간 병원도 공공의료 주체로 호명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공공병원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게 되었다. 기존 공공병원도 적자로 골치아픈 마당에 새로 짓겠다는 건 경제 관료의 눈에 비합리적 계획으로 비춰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사병원들에게 공공의료를 맡긴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또 평소 문제삼았던 공공병원의 '비효율성'이 '효율성'으로 전환되는 상황을 몸소 경험하지 않았는가. 나아가 지금의 필수·지역의료 위기는 그동안 이어져 온 '기능' 중심의 공공의료 정책기조가 실패했음을 나타내는 정책 실험의 결과로 평가되어야 한다. 사회적 통제가 어려운 의사 집단 행동 문제도 마찬가지일 터. 그동안 공공병원 비중을 꾸준히 늘려왔다면 적어도 현재의 의료사태에서 환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늘 따라붙는, 사람들이 낙후된 공공병원을 원하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반론은 문제의 결과를 문제의 원인으로 치환하는 '의도된 오해'라고 본다. 60~70년대 국내 최고 병원으로 명성을 날렸던 국립중앙의료원이 지금의 처지가 된 이유는 오직 하나. 정책수단으로서의 공공적 역할에 대하여 정부의 재정 투입이 따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적 경과가 어떠하였든 오늘날 공공병원의 신설과 기능 강화에 상당한 공적 재원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다수 시민의 공감과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결국 공공병원 설립은 단지 예타 지침을 개편하거나 면제를 법제화하는 문제로 국한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왜 더 많은 공공병원이 필요한지, 그리고 어떤 역할을 기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근본에서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의료마저 경제 성장과 자본 축적의 도구로 삼으려는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의 압력에 맞서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어떻게 강화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

때마침 지난 24일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가 출범식을 가졌다. '좋은'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까닭은 기존보다 더 발전된 공공병원 모델을 구상하자는 의미일테다. 출범 선언문에서 밝혔듯, 시장 중심 의료체계에 저항하는 가운데 오늘날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기후·생태 위기 앞에서 "이윤을 위한 낭비 의료를 멈추고 환경친화적 병원이 되도록 계획하고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그 일례로 볼 수 있겠다.

이제 시작인 만큼 앞으로 더 다양한 시민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운동의 목표와 전략을 구체화해 갈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에는 '지방소멸'의 대안으로 압축도시·메가시티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소도시 지역 주민을 위한 공공병원 설립·운영이 어떻게 사회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 공공병원이 보건의료와 요양, 복지를 연계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체계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나아가 탈시장적 보건의료체계를 실험하는 '테스트 베드'로 활용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고민과 모색도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의료개혁이 의사증원으로 환원될 수 없듯이, '좋은공공병원만들기' 운동 역시 병원 설립으로 그칠 수 없다. 설립 이후 목표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외부의 퇴행적 압력으로부터 병원의 민주적 거버넌스를 지켜내는 실천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끊임없는 정치적 투쟁의 과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한 이 운동에 많은 시민 주체들이 참여하고 연대할 수 있기를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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