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 희생자 하루 31명... 피해 계속 늘어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이스라엘에 '라파 공격 중단'을 명령한 24일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인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라파=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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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최고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라파 공격 중단' 명령에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역으로 공격을 확대했다. 이스라엘 측은 ICJ의 명령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침공을 합리화하고 나섰다. 미국은 침묵함으로써 동조하는 모습이다. 국제 여론과 엇나가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ICJ 명령 다음날에도 라파 공습 계속
ICJ가 긴급 명령을 내린 다음 날인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부터 북부 최대도시 가자시티와 자발리야 난민촌, 베이트하눈, 중부 데이르 알발라 등에 공습과 포격을 가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팔레스타인 와파통신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군의 주거용 건물 공격으로 라파에서 6명이 숨졌다. 피란처인 자발리야 외곽에 있는 학교도 이스라엘군의 드론(무인기) 공격을 받아 최소 10명이 사망했다고 미국 CNN방송은 전했다. 전날 로이터통신은 "이스라엘군 탱크가 자발리야 지역 깊숙이 진입해 수십 채의 주택과 상점, 도로 등을 파괴했다"며 하루 동안 총 31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유엔 최고법원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관들이 24일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공격을 멈추라고 명령했다. 헤이그=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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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아전인수 "라파 공격의 여지 준다"
이스라엘군의 공세는 ICJ의 명령을 무시한 처사다. 나아가 이행을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는 ICJ의 명령을 멋대로 오독하고 나섰다. "ICJ의 명령이 라파 공격을 계속할 여지를 준다"는 게 이스라엘 측 해석이다. 앞서 ICJ는 24일 이스라엘에 "군사 공격 및 다른 모든 행위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차치 하네그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은 25일 이스라엘 채널 12 인터뷰에서 "ICJ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라파에서 대량학살을 저지르지 말라는 것"이라며 "우리는 대량학살을 저지르지 않았고, 앞으로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ICJ가 군사 작전 중단을 명령했는데 대량학살 금지로 논점을 흐린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 관리는 "라파에서의 군사 공격과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인의 생활 여건 전체 혹은 일부에 물리적 파괴를 초래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는 ICJ 명령이 모든 군사 행동을 배제한 게 아니라고 로이터를 통해 주장했다. "우리는 가자지구 민간인의 생활 여건을 악화시키는 군사 행동을 한 적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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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침묵만… "국제 무대서 고립 중"
이스라엘의 막가파식 행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미국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ICJ의 명령 이후 어떠한 성명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의 "라파에 대한 우리 입장을 명확하고 일관되게 밝혀왔다"는 짤막한 구두 입장만 내놓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022년 ICJ가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공격 중단을 명령했을 때와 극명히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당시 미국은 즉각 환영 성명을 내고, 러시아에 이행을 촉구한 바 있다.
이스라엘이 라파 공격을 이어갈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ICJ 명령 무시 문제를 다룰 수는 있으나,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격렬히 저항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자발리야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을 붙잡았다고 26일 주장했다. 하마스 군사 조직 알카삼 여단 대원들이 "이스라엘군을 터널 안으로 유인한 뒤 매복 공격으로 일부를 사살하고 일부를 포로로 잡았다"(알카삼 여단의 아부 우베이다 대변인)는 것이다.
반면 이스라엘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다음 주 휴전·인질 석방 협상 재개를 점치는 외신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하마스의 심리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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