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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알파벳(구글)·아마존.
전 세계 시가총액 5위 기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빅테크(Big Tech) 기업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요 주주가 바로 미국 대표 자산운용사(뱅가드, 피델리티, 스테이트스트리트, 블랙록 등)라는 것이죠.
일례로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은 올해 3월 말 기준 뱅가드(8.60%) 블랙록(6.79%) 버크셔해서 웨이(5.15%) 스테이트스트리트(3.84%) 등이 주요 주주로 있습니다. 미국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미국 국민기업을 '과점 소유'하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기관투자자가 애플 주식 중 차지하는 비중은 57.56%에 달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73.64%), 구글(61.76%), 엔비디아(67.47%) 등도 기관투자자 보유 비중이 높습니다. 미국 자산운용사 1위인 블랙록과 2위인 뱅가드는 각각 10조달러, 8조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 자금의 출처는 바로 미국인의 투자자금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미국인의 은퇴자금입니다. 미국 자산운용협회(ICI)에 따르면 미국 가계자산의 약 32%가 은퇴자산(지난해 말 기준 38조4000억달러)입니다. 우리로 치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그리고 개인연금이 합쳐진 개념입니다. 미국은 고령화 시대 노후 대비를 위해 정책적으로 연금 투자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고 있죠.
대표적인 예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의 한 종류인 401K입니다. 401K는 올해 기준 연간 2만3000달러(약 3050만원) 한도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줍니다. 고연봉자일수록 401K를 통한 절세 효과를 더욱 누릴 수 있죠.
그 덕분에 401K는 미국인 전체 은퇴자산 중 19%(7조4000억달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401K가 주로 운영되는 방식인 TDF(타깃데이트펀드·은퇴 시점을 정하고 주식과 채권 투자 비율을 조정하는 것) 자금의 약 70%가 미국 주식에 투자되고 있습니다. 미국 주요 자산운용사인 프랭클린템플턴, TD코웬,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미국의 연금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꺼리지 않으면서 연평균 주식시장에 유입되는 연금자산은 4000억달러(약 531조6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죠.
한 전직 외국계 투자은행(IB) 임원은 "주가가 오르려면 수급과 펀더멘털 두 가지 요인이 중요한데, 미국의 경우 은퇴자산(퇴직연금, 개인연금)이 끊임없이 주식시장으로 들어오면서 수급 문제를 원활히 풀어간 사례"라며 "이 상황에서 빅테크가 세계화에 성공하면서 막대한 매출과 영업이익 성장(펀더멘털 개선)을 이뤘고, 덕분에 미국 주식시장 우상향을 창출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인들의 은퇴자산이 끊임없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면서 하방 지지선을 만들고, 투자자금이 넘쳐났던 미국 빅테크가 엄청난 실적을 창출하면서 나스닥·S&P500 지수 우상향 곡선을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바꿔 말하면 미국인들은 퇴직연금·개인연금 그리고 주식 투자 등을 통해 자국 대표 기업에 '간접투자'하면서 노후자산을 두둑이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인 중 연금 백만장자(100만달러·약 13억원) 수는 68만8000명에 달하죠.
반면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가계자산의 63%가 부동산(2022년 한국은행 대차대조표 기준)에 몰려 있습니다. 국내 가계의 연간 저축액이 200조원대인데 상당수 자금이 매년 부동산으로 재투자됩니다. 그 덕분에 부동산 우상향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과 저출생 등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지금도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은 상황에서, 수도권마저 2040년을 기점으로 가구 수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일본의 선례를 봤을 때 서울 강남 등 핵심지 가격은 유지 혹은 상승하겠으나, 수도권 외곽지역은 실질 가격 기준으로는 큰 상승을 보이기 힘들 전망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과거처럼 부동산 시장을 붐업해 성장률을 제고하는 것이 어려운 환경이 됐다"며 "(주가 부양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단순한 일회성이 아니라 국가의 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일관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죠.
'부동산 몰빵' 자산 구조에서 증시 쪽으로 자금을 옮겨야 한다는 총론은 많은 국내 엘리트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밝혔듯이 코스피 우상향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수급(지속적인 자금 유입)과 펀더멘털(기업 실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수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선 투자자를 보호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두고 강성부 KCGI 대표는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오너 경영 체제' 중심의 지배구조에서 주주자본주의 지배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국내 상장사 중 약 65%가 현재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이하입니다. 기업가치가 실제 장부가치보다도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일부 오너 일가가 승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업가치를 낮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가치가 낮아지면 내야 할 상속세가 낮아집니다. 강 대표는 '상속세 꼼수 절세'를 막기 위해서 상속세율을 현행 최대 60%에서 30%대로 낮추되, PBR 1배 이하인 기업들은 장부가를 기준으로 상속세율 30%를 적용하자고 말합니다. 만일 오너 일가가 지분 50%를 들고 있는 장부가 1조원·시가 4000억원(PBR 0.4배)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만약 창업주가 죽고 2세가 현행 상속세율(최대 60%) 기준으로 내야 할 상속세는 1200억원입니다.
하지만 상속세율을 30%로 낮추되 PBR 1배 이하인 기업은 장부가 기준으로 상속세율을 매긴다면 어떨까요? 2세가 내야 할 상속세는 1500억원으로 되레 늘어납니다. 강 대표는 "주가를 낮추면 세금을 덜 내는 희한한 상속·증여세가 현재 우리의 세금 체계"라며 "저성과자에게 상을 주는 꼴이어서 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더해 강 대표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에 더해서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실제로 자금을 주식시장에 흐르게 하는 겁니다.
이 지점에서 미국의 401K와 같이 우리도 '연금자산'을 주식시장에 넣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합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적립액은 2022년 기준 약 336조원으로 전년 대비 13.6% 증가했습니다. 고령화로 갈수록 지출 규모가 줄어드는 국민연금과 다르게, 근로자 연봉의 약 8%(DC형 기준)를 계속 적립하게 되는 퇴직연금은 적립액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현재 퇴직연금의 약 87%가 예·적금 및 보험 상품에 투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은행·보험사는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다 보니 퇴직연금 연간 수익률이 2021년 2.05%(자본시장연구원 추정)에 불과했습니다.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미국의 401K와 같이 우리도 퇴직연금과 국내 주식시장을 연계하면서 국내 증시의 수급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연금 고갈 이슈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주식시장 밸류업과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연계할 수만 있다면, 은퇴 이후 소득대체율을 올리면서 동시에 주식시장에 자금이 흐르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국내 은행에서 사모펀드 인수금융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국내 금융지주는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등 규제로 인해 공격적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은행지주 범위 밖에서 적극적으로 퇴직연금 수익률을 제고시킬 운용사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더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펀더멘털', 즉 기업 실적 개선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이 살아나면서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데, 향후 지속적인 증시 우상향을 위해선 이 같은 기업들의 약진이 필요합니다. 한 국내 주요 증권사 IB부문 대표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주가 부양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중장기적인 주가 부양을 위해선 반도체·플랫폼 등 국내 정보기술(IT) 기업의 추가적인 실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선 수출시장을 더욱 공략하게끔 각종 보조금 및 규제 완화 정책이 필요합니다. 특히 중국이 기술력 있는 가성비 제품을 통해 저가 제품(알리·테무)부터 전기차·배터리 등 신산업까지 빠르게 세계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이를 이겨내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력의 효율적 배치를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 인건비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과도한 임금 상승 억제, 각종 신산업과 관련된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자본과 노동 두 가지 섹터를 봤을 때, 중국이 거대 자본과 가성비 제품 등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노동보다는 자본 쪽에 더욱 힘을 줘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특히 자본 중에서도 기존 오너 자본이 아니라 투자자 중심의 자본을 정착시키고, 여기에 국민의 퇴직연금 등을 연계해서 신자본 육성이 골고루 국민들에게 배분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골자입니다. 마치 미국 주요 자산운용사(뱅가드·블랙록 등)가 미국인의 퇴직연금 등을 재원으로 미국 주요 빅테크(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업을 소유하고 미국 빅테크가 실적을 내면서 미국인의 은퇴자금을 더 늘려주는 선순환을 이뤘듯이 우리도 1000조원까지 불어날 퇴직연금을 운용해줄 좋은 자산운용사를 발굴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를 사고 이들 주가를 밸류업하면서 국민의 노후자금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성장·고령화로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답은 데이터입니다. 이종 데이터를 모아 시대의 화두를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해 드립니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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