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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젖은 실을 책에 끼우며…그는 완전범죄를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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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 책 '책 사냥꾼의 도서관'은 흥미롭고 진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책의 적(敵)은 누구인가'를 묻기 때문이다.

책의 '적'이라니? 종이와 잉크의 합인 책에도 적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중세 수집가의 장서에 가장 흔했던 적은 습기였다. 지금이야 책이 헌책방에서 1000원에도 잘 안 팔리는 시대이지만, 과거엔 한 권의 책이 귀중했다. 습기 먹은 책은 곰팡이로 훼손된다. 습기를 방지하려면 서가 앞쪽이 막혀 있지 않아야 했다. 책장의 등을 벽에 바짝 붙이는 배치도 곤란했다.

다음 적은 먼지였다. 먼지는 책을 더럽히는데, 먼지가 쌓이면 벌레부터 꼬였기 때문이다. 값나가는 고서에 구멍이 뚫리는 일차적 원인은 먼지였다. 저자는 책에서 한 문법학자의 시를 인용해 '책 정복자'인 벌레를 꾸짖는다. "이 뮤즈의 해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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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다음 적은, 책의 여백을 함부로 사용하는 자들이었다. 여백에 낙서를 갈겨쓰거나, 빈 부분을 쭉 찢어 파이프에 불을 붙이는 이들도 애서가를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더 큰 죄악은 바로 책을 빌리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빌리고 다시 돌려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적이었다.

다만 한 가지 난제. 책을 아예 훔치는 사람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책 도둑은 책의 주인이 거의 버렸다 싶을 정도로 방치한 책의 가치를 알아본 수집광일 수 있다. 돈 때문에 되팔지만 않는다면 책 도둑의 행동을 비난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어쨌든 책도둑도 책의 적이긴 하다고 저자는 쓴다.

책 도둑보다도 고강도 죄악을 저지르는 자들을 이 책은 '책 아귀(book ghoul)'로 은유한다. 책 아귀란 대여나 도둑질을 넘어, 훔친 책을 조각조각 잘라내는 무뢰한들을 뜻한다. 귀중한 장서의 속표지, 삽화, 장서표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책 아귀 중에는 도서관을 기웃거리다가 젖은 실을 책 안에 끼워 넣는 계획범죄도 만연했다.

젖은 실이 종이를 약화시키면 그들은 결코 들키는 일 없이 책의 소중한 한 페이지를 강탈하는 완전범죄를 저질렀다. 저자는 그들을 두고 "역겨운 취향"이라고 비난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저자가 선정한 최악의 '책의 적'은 바로 자신이 생각하는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책을 펜이나 잉크로 죽죽 그어 못 읽게 만드는 자들이었다. 최악의 경우엔 지운 부분 옆에 본인의 생각을 덧대는 자들도 있었다.

책의 모든 페이지는 타자의 세계를 바라보는 맑은 유리창이 아니었던가. 책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은 '책 사냥꾼'이지만 누군가는 그 유리창을 검게 칠했다. 그들은 세상이 아닌 자신만 쳐다본 사람들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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