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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제약·바이오주' HLB의 추락, 섣부른 낙관이 부른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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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기자]

승승장구하던 제약·바이오기업 HLB의 주가가 한순간에 폭락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이 HLB가 개발 중인 간암 신약의 승인을 보류하면서다. 승인을 장담했던 회사의 말만 믿고 투자에 나섰던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떠안을 위기에 몰렸다. 회사는 재승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회사의 주장대로 재승인이 이뤄지더라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FDA 승인을 기대했던 투자자에게 남은 건 인고의 시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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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B가 개발 중인 간암 1차 치료제가 미 식품의약국(FDA)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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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달아올랐던 제약·바이오기업 HLB의 주가가 이틀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지난 16일 9만5800원이었던 주가는 20일 4만7000원으로 50.9% 하락하며 반토막이 났다. 17일부터 20일까지 2거래일 동안 사라진 HLB의 시가총액 6조2269억원에 달했다. 코스닥 시장 시총 순위 5위에 해당하는 기업이 2일 만에 사라진 셈이다. 주가가 12만원대를 웃돌았던 3월 말과 비교하면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HLB의 주가는 올해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올해 초 5만700원이었던 주가는 2월 7만원대를 넘었고, 3월 26일 12만8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21일 HLB의 주가가 4만8500원을 기록했다는 걸 감안하면 5개월 동안 올려놓은 주가 상승분이 2일 만에 사라진 것이다.

HLB의 주가만 하락한 것도 아니다. 첫 하한가를 기록한 지난 17일에는 HLB를 비롯해 HLB생명과학, HLB제약, HLB테라퓨틱스, HLB이노베이션, HLB글로벌, HLB바이오스텝, HLB파나진 등 HLB그룹 8개 종목이 일제히 폭락했다. 이날 HLB그룹주에서 증발한 시총은 4조9600억원에 달했다.

■ FDA 승인 불발 = HLB그룹주의 주가가 줄줄이 하한가를 기록한 건 미 식품의약국(FDA)이 HLB가 개발 중인 간암 1차 치료제(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 신약의 승인을 보류했기 때문이다. HLB는 17일 미 FDA로부터 간암 신약 승인과 관련해 '보완요구서한(CRL·Complete Response Letter)'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실상 간암 신약이 FDA의 문턱을 넘는 데 실패한 것이다.

HLB에 따르면 FDA가 CRL을 통해 지적한 사항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신약에 사용한 항서제약의 약품 캄렐리주맙에서 일부 미비한 점을 발견했다. 둘째, 여행 제한으로 BIMO(바이오리서치모니터링) 실사를 완료하지 못했다.

무슨 의미일까. 진양곤 HLB 회장은 유튜브를 통해 CRL 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캄렐리주맙을 생산하는 중국 항서제약이 FDA로부터 화학·제조·품질관리(CMC) 관련 문제로 지적을 받았다"며 "항서제약의 답변이 FDA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FDA는 BIMO 실사를 여행 제한 문제로 마무리 짓지 못했다"며 "문제가 된 지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HLB는 FDA의 CRL 지적 사항을 해결하고 재승인 절차를 밟겠다는 계획이다. HLB는 "리보세라닙(표적항암제)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지적한 사항은 없었다"며 "항서제약과 협력해 조속한 시일 내 재승인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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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DA 지적 사항 몰랐나 = HBL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투자자들은 불만을 성토하고 있다. HLB가 발표 두달 전까지만 해도 FDA의 승인을 자신했기 때문이다. HLB는 3월 26일 "FDA가 파이널 리뷰 미팅에서 신약 허가에 영향을 미칠 만한 특별한 이슈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밝히며 투자자의 기대감을 키웠다. 이날 HLB의 주가가 사상 최고치인 12만800원을 기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또다른 CRL 지적 사항인 BIMO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HLB가 이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진 회장은 지난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파이널리뷰 미팅에서 BIMO 실사를 종료하지 못해 승인 날짜를 넘길 수도 있다는 문구가 있었다"며 "FDA가 관례상 연기할 수 있다고 언급한 문구라고 생각해 아무 문제 없이 파이널 리뷰 미팅을 마쳤다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HLB의 섣부른 낙관론은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 FDA 승인 불발에 주가가 폭락하면서 HLB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떠안았다. 개인투자자들은 FDA의 발표를 앞둔 5월 1일~16일 40만8533주를 순매수했다. 이 기간 HLB의 평균 주가는 10만1656원이었다. 지난 21일 HLB의 주가가 4만8500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217억1598만원(주당 5만3156원)의 손실이 발생한 셈이다.

HLB는 "승인 실패가 아닌 연기"라고 주장하지만 시장의 비판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전망이다. HLB의 섣부른 낙관론이 투자자를 흔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서다. 2019년 HLB는 6월 리보세라닙의 임상 결과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FDA 허가 신청이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뒤인 9월 임상 3상에 성공했다고 깜짝 발표했다. HLB는 그해 3분기 분기보고서에도 글로벌 3상 임상 시험을 완료했고, FDA의 신약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연히 시장에선 불공정거래 논란이 일었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은 HLB가 자의적인 해석을 내린 허위공시로 판단했고, 2021년 9월 불공정거래 혐의로 검찰통보를 결정했다. 다행히 검찰이 '혐의 없음(2022년 3월)' 처분을 내리면서 허위공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시장의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신약 개발 과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신중하지 못한 결과 발표가 투자자에 혼란을 일으켰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런 일이 반복하는 것은 제약·바이오업계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며 "FDA가 리보세라닙의 승인 실패가 아닌 승인 보류 결정에 주가가 크게 흔들린 것도 투자자의 신뢰가 훼손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FDA 재승인 이뤄질까 = 언급했듯 HLB는 FDA의 지적 사항을 보완해 재승인 절차를 밟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FDA의 재승인 가능성이 낮은 것도 아니다. CRL을 받은 이후에도 FDA 승인에 성공한 신약은 적지 않다.

한미약품은 2021년 8월 CRL 이슈가 발생해 호중구감소증 치료제(롤론티스) 승인이 2022년 9월로 늦춰졌다. 2016년과 2017년 각각 두차례 CRL을 받았던 한미약품의 혈액제제 '알리글로'도 지난해 12월 FDA의 승인을 받는 데 성공했다.

HLB의 간암 1차 치료제의 유효성 평가지수인 전체 생존기간(OS)과 무진행생존기간(PFS)이 다른 대조군과 비교해 의미 있는 효과를 입증한 만큼 CRL 이슈만 잘 넘기면 재승인이 가능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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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A는 중국 항서제약의 화학·제조·품질관리(CMC) 관련 문제를 지적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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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넘어야 할 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항서제약의 CMC 문제는 해결하더라도 BIMO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HLB의 예상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슈가 발목을 잡았다면 이를 해결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HLB는 BIMO 논란을 회사가 FDA의 문제라고 밝혔지만 신약 승인에 걸림돌이 되는 건 사실이다. BIMO가 가능할 때까지 승인을 연기할 수 있어서다.

시장에선 HLB의 간암 신약이 FDA의 재승인을 받는 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CRL 수령 후 FDA에 보완서류를 제출하기까지 평균적으로 7개월가량이 걸리고, 재승인 신청 후 결과 발표까지 6개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는 짧지 않은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 할 수도 있다. 투자자의 신뢰를 잃고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한 HLB의 주가는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을까.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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